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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 1일 연중 제9주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31 조회수908 추천수16 반대(0) 신고
 

6월 1일 연중 제9주일 - 마태오. 7,21-27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산다는 것은 어제의 일들과 결별하는 일>


   오늘 복음은 참으로 제 가슴을 치게 만드는군요. 다급할 때만 ‘주님, 주님’하고 외쳐 불렀지, 상황이 조금만 완화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원상복귀하고 마는 제 지난 삶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매일 말씀에 귀 기울이고, 말씀을 선포하고, 말씀을 나름대로 연구하지만, 거기까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눈만 떴다하면 버려라, 낮아져라, 내려가라, 포기하라, 크게 마음먹어라...별의 별 말을 다 떠들어대지만, 제가 선포하는 그 말씀의 내용, 그 어느 것 하나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부끄럽기만 합니다.


   말로는 뭐든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말로는 뭐든 다 이루어낼 것 같습니다. 말도 자꾸 하다 보니 슬슬 늘고, 그에 따라 실속 없는 말, 거짓말, 속보이는 말도 점점 늘어만 갑니다.


   고백성사 보기도 점점 부담스럽고 창피스럽습니다. 신자 여러분들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10년 전에 가슴 치며, 부끄러움에 치를 떨며 고백했던 똑같은 유형의 죄를 아직도 그대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이제 더 이상 똑같은 악습을 없다, 수천 번도 다짐하지만, 몸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부끄럽게, 지지부진하게, 진보 없이 살아갈 것인가 두렵기도 합니다. 아마도 우리는 한 평생 후회하며, 가슴 치며 그렇게 살아가겠지요.


   사도 바오로께서 체험하셨던 것처럼 한 순간의 급격한 변화, 어제와의 확연한 단절을 원하지만, 우리 인간의 본성상 그런 변화나 단절을 힘든가봅니다.


   아마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우리는 비참함에서 약간 덜 비참함, 하느님 앞에서 아주 부족함에서 약간 덜 부족함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다 이 세상을 하직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인생인가 봅니다.


   언젠가 존경하는 소설가 신경숙씨가 한 신문에 기고한 글을 오려두었는데, 그 글이 오늘 유난히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산다는 일은 바로 어제의 일들과 헤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과 헤어지고는 그것을 잃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을 도리 없이 견디고 도리 없이 지나오는 동안 견고해진 얼굴은 때로 징그럽다.


   이런 봄날에 산에서 노란 산수유 꽃이나 분홍 진달래 속에서 문득 무릎이 꿇어지려고 하는 것은 이 봄날의 찬란한 아름다움 속에 소멸이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움이 한 순간이라는 것을, 이 순간이 곧 지나가리라는 것을, 곧 이 아름다움을 잃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비록 우리가 매일 스스로의 나약함으로 인해 악습을 거듭하고 수시로 죄에 떨어진다 하더라고, 그래서 정말 괴롭다하더라도 희망까지 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은 비록 캄캄해 보이지만, 지금은 비록 한심스러워 보이지만, 주님과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고 살아간다면, 세월이 흐르고 흐른 그 어느 날, 나이 어렸기 때문에, 부족했기 때문에,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던 지난날을 흐뭇한 미소와 함께 회상을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226번 / 하느님 자비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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