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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30 조회수1,065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Follow me,
and let the dead bury their dead.”
(Mt.8.22)
 
 
제1독서아모스 2,6-10.13-16
복음 마태오 8,18-22
 
 
어느 절에 덕망 높은 큰스님이 있었는데, 하루는 이 큰스님이 수행 중인 두 스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칼 두 자루를 건네주면서 칼이 잘 들도록 가는 사람을 상좌로 삼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날부터 두 스님은 칼이 잘 들도록 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스님이 칼을 갈다가 그만 손끝을 베고 말았어요. 순식간에 핏방울이 맺히더니 땅바닥에 뚝뚝 피가 떨어졌지요. 그 순간 스님은 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고 한동안 묵묵히 칼을 바라보았답니다.

그 무렵 다른 스님은 개울가에 앉아 칼을 더욱 날카롭게 갈고 있었습니다. 너무 날카로워서 칼에 닿는 모든 것이 두 동강 날 것만 같았지요. 며칠 뒤, 드디어 큰스님이 두 스님을 불러서 이렇게 묻습니다.

“칼을 얼마나 잘 갈았는지 내게 보여 주겠나?”

그런데 두 스님이 내놓은 칼은 무척 달랐습니다. 한 스님 것은 큰스님이 줄 때보다 칼이 더 무뎌져 있었고, 다른 스님 것은 칼날 위에 앉은 파리가 다칠 정도로 날카로웠지요. 칼날을 날카롭게 간 스님은 당연히 자기가 상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한껏 어깨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큰스님은 칼을 더욱 무디게 만든 스님에게 상좌 자리를 맡기는 것이었어요. 이 뜻밖의 결과에 모든 사람들이 당황스러워하고 있을 때, 큰스님이 말했습니다.

“한 스님은 모든 사물을 잘 벨 수 있도록 많은 정성을 기울여 칼을 갈았지요. 하지만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번 과제에서 중요한 건 칼을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칼을 가는 과정에서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닫고 칼날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물의 이면을 본 스님에게 상좌 자리를 맡긴 것입니다.”

사물의 이면을 본다는 것.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직접 보이는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들에게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깊은 의미를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라”라면서 제자로 부르시지요. 그런데 어떤 이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주 매정한 말씀을 하세요.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아버지의 장례까지도 포기하라는 것인데요. 이 말만 보면 불효막심한 사람이 되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의 진정한 뜻이 아니지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장례보다도 주님의 길이 더욱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눈에 보이는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쫓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의 길을 쫓는 것이야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자신은 과연 무엇을 쫓고 있었나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일을 쫓을 때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최선을 다합시다.




만남의 의미(‘좋은 글’ 중에서)

평생을 가도 첫인상을 남기는 사람이 있고
늘 마주해도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날 때 즐거우나
돌아서면 슬퍼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독할 때 웃어 줄 수 있는
편안한 사람도 있습니다

만남이란 언제나 그런 것 입니다
혼자라 생각해도 돌아서면
누군가 서 있게 마련이고
같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그들이 내 곁에 있으란 법도 없습니다

기쁘다 해서 애써 찾을 것도 없고
슬프다 해서 두려워 하며
피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면 오는대로
그저 편안하게 대하면 그 뿐입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처럼 보이다가도
조금만 알게 되면 운명으로 여겨지는
태고 적부터 기약된 약속일 수도 있고
삶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선물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대할까 걱정할 것도 없고
지난 일들에 매달릴 필요도 없습니다
종말은 기다리지 않아도 다가와서
이별이란 말만 뿌리고 갈것 이기에
만남의 의미가 하나의 부분 이듯이

다만 순간에 충실하면 그 뿐입니다
많은 사람에 기뻐하기보다
작고 소중한 만남에 족해야 하는 것입니다

돌아섰다 해서 따라갈 필요도 없고
결국 가야하는 사람은 혼자 뿐
이별은 만남에서 부터 시작 되었고
만남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아프기도 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아름답다면
보내주는 사람은 소중합니다
슬픈 만남에 고개 돌리지 않고
설령 가야 할 때라도
만남의 시간을 기억하면서
미소 지으며 보내주는 사람이 되자

만나고 헤어짐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과 같은 것
사랑과 행복을 위한 만남이면 좋겠습니다.
 
 
 
 
 
 
 
  
Chris Glassfield - Silhouettes
 
A Love Until The End Of Time - Placido Domi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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