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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과 죽음" - 2008.6.29 주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29 조회수507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6.29 주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사도12,1-11 2티모4,6-8.17-18 마태16,13-19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과 죽음"
 


저는 묘지에 가면 우선 찾아 읽어보는 것이 묘비명입니다.

사랑했던 친지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묘비명을 읽어보며
많은 감동을 받곤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죽음도 축제가 됩니다.
하여 우리는 성인들의 축일을 지낼 때
대부분 성인들의 돌아가신 날을 천상탄일이라 하여 축제로 지냅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것은 거룩한 죽음이요
이를 증거 하는 유언이나 묘비명입니다.

성인들의 삶과 죽음은,
특히 오늘 대축일을 지내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삶과 죽음은
언제 대해도 감동입니다.
 
아름다운 삶에 아름다운 죽음입니다.
 
 
 
 
성인들처럼 잘 살다, 잘 죽기위한 구체적 방법을 소개합니다.
 
 
진지한 마음으로 묘비명이나 유언을 작성하여 붙여놓고
좌우명처럼 늘 보며 사는 것입니다.

“평생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다가 하느님 품 안에 고요히 잠들다.”

이런 묘비명이면 어떻겠습니까?

성인들의 묘비명을 쓴다면 대개 이런 묘비명일 것입니다.

아마 창세기에 나오는 에녹의 묘비명이 있다면,
토머스 머튼이 서품상본에 택했다는 다음 성경구절일 것입니다.
저 역시 좋아하는 구절이라 영어와 함께 자주 음미하며 읽어보곤 합니다.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Enoch walked with God,
   and he was no longer here, for God took him)”(창세5,24)

유언으로 하면 오늘 임종을 앞둔 바오로의 고백은
또 얼마나 장엄하고 감동적입니까?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2티모4,7-8ㄴ).

아름답고 거룩한 삶 있어 아름답고 거룩한 죽음입니다.
아무렇게나 살다가 언젠가 갑자기 아름다운 죽음은 없습니다.
 
묘비명이나 유언을 만들어 놓고
삶을 자주 성찰하며 가다듬어보는 것도 참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열렬한 사랑입니다.

이래야 아름답고 거룩한 삶에 죽음입니다.
모든 성인들의 공통점입니다.

성격이나 기질, 건강 모두가 다 달랐어도
이 그리스도께 대한 열렬한 사랑에선 일치였습니다.
 
이 그리스도께 대한 열렬한 사랑이 성덕의, 성인의 잣대입니다.
 
성격이나 마음 좋아 성인되기로 하면
우직하고 경솔한 베드로나 다혈질의 흥분 잘하는 바오로는
불합격일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에 응답하여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구해내신 주님의 사랑에 감격한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사도12,11).

바오로 또한 그의 주님 사랑에 응답하여
그를 구출해 내신 주님의 사랑을 회고하면서 감동에 벅차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2티모4,17ㄱ)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2티모4,18ㄱ).
 

주님을 끊임없이 고백하는 삶입니다.

주님을 끊임없이 고백할 때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에 죽음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공동전례기도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고백입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고백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은 저절로 고백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사랑할수록 고백하게 되고, 고백할수록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과 고백과 더불어 주님께 대한 앎도 깊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여러 제자들 중
주님의 정체를 알아 본 제자는 베드로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단도직입적 물음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무엇입니까?
언젠가 어느 분이 저를 인터뷰 하면서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신부님에게 누구입니까?”

주저 없이 대답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전부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도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오늘 시몬 베드로의 고백이 참으로 멋집니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모두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에 감격한 주님은 기쁨에 벅차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16,17-18).

베드로뿐 아니라
진심으로 주님을 고백하는 우리들 역시 ‘베드로’입니다.

우리의 주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 고백의 반석위에
당신 교회를 세우시는 주님이십니다.
 
고백을 통해 주님과 더불어 나를 잘 알게 되어
나의 정체성도 또렷해집니다.
 
영혼 없는 삶이 되지 않기 위해,
정체성 잃지 않고 살기위해 끊임없이 주님을 고백함은 필수입니다.
 


함께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공동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함께 기도해야 거룩한 삶에 죽음입니다.
 
개인의 기도나 활동은 너무나 미약합니다.
늘 주님을 모신 제자들의 공동체와 함께 했던 베드로요,
늘 동료들과 선교 활동에 전념했던 바오로였습니다.
 
교회공동체 형제들의 기도와 사랑이 받쳐주었기에
위대한 사도가 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였습니다.
 
저 또한 요셉수도공동체의 형제들이 기도와 사랑으로 받쳐주기에
이 거룩한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1독서 사도행전에서 보다시피,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교회공동체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했다 하지 않습니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교회공동체의 간절한 기도에 주님은 즉각 응답하시어
천사를 보내어 질서정연하게 구출 작업을 수행하십니다.

“빨리 일어나라.”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어라.”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라.”

새삼 공동기도의 위력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실 때는
감방의 벽은 자유의 활짝 열린 문으로 변화됨을 봅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열렬한 사랑 있어,
주님을 끊임없이 고백하여,
함께 끊임없이 기도하여 아름답고 거룩한 삶에 죽음입니다.
 
한마음으로 바치는 이 거룩한 미사가
우리 모두를 자기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참으로 자유롭게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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