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 바오로 사도 탄생 2000주년 특별 희년 '바오로의 해'
작성자최익곤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29 조회수625 추천수8 반대(0) 신고

성 바오로 사도 탄생 2000주년 특별 희년 '바오로의 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 로마 성바오로대성전 뜰에 세워진 사도 바오로상.  축일 6월 29일

 

 ▣ 왜 바오로의 해인가


구약 편에 모세가 있다면, 신약 편에는 바오로가 있다고 해도 될 만큼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인물이다. 어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사의 영봉(靈峯), 모세와 바오로 두 인물을 그 양 옆에 있는 준봉(峻峯)에 비유한다.

우리는 미사전례에서 그가 쓴 서간을 자주 접한다.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등 신약 27권 가운데 무려 13권을 그가 직접 쓰거나 그의 제자들이 기록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의 핵심개념이 그에게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교회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쉽게 이해하려면 2000여 년 전 예루살렘 유다인 사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아들' 운운하며 율법과 유다 전통을 흔드는 위험인물 나자렛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야 안심했다. 하지만 예수의 죽음으로 소란이 끝나는가했더니 예수 부활을 믿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유다인들은 다시 긴장했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옹호하는 스테파노를 성 밖으로 끌어내 돌로 쳐 죽였다. 그 광경에 놀란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유다교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나자렛 예수의 파당, 또는 유다교를 분열시키는 기존 파당들의 한 무리에 지나지 않았다.

사울(바오로의 이전 이름)은 이때 등장한다. 흠잡을 데 없는 바리사이 유다인이었던 그는 예수의 추종자들, 즉 이스라엘 이탈자들을 보고 격분했다. 그래서 그들을 붙잡아 들이느라 혈안이 돼 있었다.

 

▲ 바오로의 다마스쿠스 회심 사건을 묘사한 카라바조의 '성 바오로 회심'

(캔버스에 유화, 230x175㎝, 1601년 작,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성당).
강렬한 빛에 놀라 말에서 떨어진 바오로는 두 다리와 팔을 벌린 채 무기력한 상태다.

 바오로의 저 유명한 회심 사건은 바로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사도 9,2)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에 일어난다.

그는 다마스쿠스로 말을 달리던 중 번개 같은 '하늘의 빛'에 쐬어 말에서 떨어졌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라."

이 사건으로 그는 십자가 예수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를 분노케 했던 예수의 죽음과 부활 소문이 사실이었다. 그는 회심했다. 그리고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 180도 바뀌었다.

이때부터 그는 유다인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이방인들을 찾아다니며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했다. 세 차례에 걸쳐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열렬하게 복음을 선포했다.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유다인들에게 붙잡혀 돌팔매질을 당하고, 감옥살이도 하고, 예루살렘 사도회의(초기 그리스도교 지도자 모임)와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사도로서의 열정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때로는 감옥에서 쓴 눈물의 편지로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화합을 호소하기도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인류를 위해 선포된 기쁜소식이다. 하지만 바오로가 없었더라면 그 복음은 유다교의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있다 이내 소멸됐을지도 모른다. 바오로가 교회 역사에서 제일 위대한 별로 빛나는 사도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 어떻게 지내야 하나

그의 생애와 사상에는 두 맥(脈)이 관통한다. 하나는 이방인들 속으로 들어가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치와 화합을 다진 것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바오로의 해'를 선포하며서 특별히 두 가지를 당부했다. 신자들이 성 바오로와 그의 서간을 깊이 이해하고, 교파를 초월해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대화하며 일치를 모색하라는 것이다.

 교황은 "오늘도 그리스도께서는 바오로 성인처럼 스스로를 희생할 각오가 돼 있는 사도들을 바라십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성 바오로와 그의 서간들을 깊이 받아들이면 그처럼 '복음의 투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바오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목숨을 걸고 지중해 연안은 물론 로마 심장부까지 달려가 복음을 전했다.

바오로는 2000년 전 사도지만 21세기 인류 복음화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가 선포한 복음의 메시지는 지금도 강력한 힘과 생명력을 갖고 있다.

아울러 '하나의 세례와 한 분이신 주님'을 섬기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과 일치하는데 힘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버린 다음 하느님과 일치해야 하고, 교회와 일치해야 한다. 이어 '불고 싶은 대로 부시는'(요한 3,8) 성령의 발자취가 남겨진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열린 대화의 장으로 초대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찾아가고, 갈라진 형제들을 대화의 장으로 초대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1년 동안 그리스도교 박해자에서 열렬한 복음 선포자로 바뀌어 한 생을 살다 간 위대한 사도의 삶과 정신을 접할 것이다. 활활 타오로는 장작불보다 뜨겁고, 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바오로의 세계를 향해 닻을 올린다.

로마 성바오로대성전이 발표한 이 로고에는 6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바깥 9개 고리 쇠사슬은 바오로가 순교하기 전 로마 감옥에서 차고 있던 족쇄를 형상화한 것으로, 그의 수난과 순교를 의미한다. 가운데 연도와 날짜는 바오로의 해 기간을 나타낸다. 칼은 그가 선포한 메시지의 힘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침의 원천이 된 바오로 서간, 십자가는 주님의 무한한 사랑과 그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바오로의 영성을 상징한다. 불꽃은 바오로의 마음을 뜨겁게 타오르게 했던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뜻한다. 

▣ 바오로 해 - 한국 교회의 준비
 

(평화신문 2008-06-22) 각 교구의 바오로 해 계획
(가톨릭신문 2008-06-22) 바오로 해 전대사 어떻게 받나
(가톨릭신문 2008-06-15) 바오로 해 맞는 한국교회의 준비
 

 

교황청 내사원은 성령 강림 대축일 전야인 지난 5월 10일 교령을 발표하고 올 6월 28일∼내년 6월 29일까지 ‘바오로의 해’ 기간동안 전 세계 천주교 신자들이 특별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령에 따르면 전대사를 받고자 하는 신자들은 우선 ‘일반 조건’ 즉 모든 죄에 대한 애착을 끊어버리고 고해성사와 영성체, 그리고 교황의 뜻대로 기도해야 하는 조건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 전대사를 받기 위한 조건

첫째, 진심어린 회개를 통해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한다.
둘째,교황님의 뜻에 따라 주님의 기도·성모송·비신자를 위한 기도를 바친다.
셋째, 공적으로 성 바오로 사도를 공경하는 거룩한 예식이나 신심행사에 참여하도록 한다.

질병이나 다른 정당한 사유(봉쇄 수도자 등)로 집을 떠날 수 없는 신자의 경우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마음가짐과 전대사의 일반 조건들인 고해, 영성체, 교황님의 지향에 따른 기도를 이행하겠다는 의향이 있어야 한다. 또, 바오로 사도를 공경하는 예식에 영적으로 함께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해 하느님께 자신의 기도와 고통을 바친다.

 ▣ 전대사(全大赦, [라] indulgentia plenaria, [영] plenary indulgence)
 
대사(大赦, [라] indulgentia [영] indulgence)의 일종. 전대사는 대사 중에서도 죄에 따른 잠벌(暫罰)에서 전부 풀리는 ‘전면대사’를 말한다. 죄과에 대한 벌을 모두 면제받는 것을 전대사, 부분적으로 면제받는 것을 부분대사 또는 한대사라고 한다.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고백하면 죄는 사면된다 하더라도 그 죄에 따른 벌, 즉 잠벌(暫罰)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잠벌은 죄를 속죄하는 보속(補贖)을 통하여 사면될 수 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471∼3항). 이 보속을 현세에서 다 하지 못한 경우 죽어서 연옥(煉獄)에서 보속을 다 하여야 한다. 대사는 이렇게 해야 할 보속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전대사(大赦)는 죄와 벌을 모두 사해 주는 면죄(免罪)가 아니라, 죄의 결과인 잠벌을 모두 면제해주는 사면(赦免)이다.
 
가톨릭 신자는 대사를 얻게 되면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거나 또는 이미 죽은 이들을 위하여 이 대사를 양보할 수도 있다. 대사는 25년마다 교황에 의해 선포되는 ‘정기 성년’과 특별한 이유로 선포되는 ‘특별 성년’, 또는 특별한 행사나 기념을 맞아 교황청 내사원에서 발표한다.

 ▣ 전대사의 유래
 
전대사의 유래는 초기 교회 때부터 찾아볼 수 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신자가 죄를 지으면 그를 공동체에서 추방했다(코린토1서 5,2-13). 하지만 죄인이 속죄하면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공동체에 다시 참여할 수 있었다. 사도들 또한 교회 공동체가 죄인의 속죄를 위해 함께 용서를 간구할 것을 권유했다(야고보서 5, 16). 이후 죄를 짓고 회개하는 자는 교회가 정한 엄격한 보속을 실천했으며, 교회는 그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용서를 구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보속이 너무 엄격했다는데 있다. 초창기에는 보속이 엄하다보니 지키지 못하는 신자들이 많았다. 이처럼 보속을 잊거나, 미처 하지 못하고 죽은 경우 그 영혼들은 연옥에서 잠벌을 마저 갚아야 한다. 이렇게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을 위해 교회는 살아 있는 신자들이 대신 보속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신자들에게도 기도와 성지순례 등 신심행위 및 자선 행위가 보속의 한 방편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 전대사는 면죄부?
 
‘면죄부’는 올바른 용어가 아니다. 전대사는 죄와 벌을 모두 사해 주는 면죄가 아니라, 죄의 결과인 잠벌을 모두 변제해주는 사면이기 때문이다.
 
전대사와 관련한 외신 보도 중 ‘Plenary Indulgence’를 국내 언론에서 예전에 오역하여 사용하였던 ‘면죄부’라는 단어로 번역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대사’가 맞는 용어다.
 
‘면죄부’라는 오역은 어디에서 왔을까? 15세기 중엽, 전대사를 받기 위한 전제 중 하나인 이웃을 위한 선행이 현금 봉헌으로도 가능해 지면서, 한때 전대사를 줌으로써 교회의 수입을 늘리는 게 아니냐는 오해가 있었다.
 
그러나 대사는 단순히 봉헌금이나 몇 가지 선행에 의해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전제 조건(고해성사, 영성체, 기도 등)들이 필요하다. 전대사를 면죄부로 오해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전제조건들을 알지 못하는데 따른 것이다.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

 대사(大赦)는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은 후 그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일시적 벌을 하느님 앞에서 사해 주는 것이며 교회는 구원의 관리자로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공로의 보고를 나눠주며, 신자들은 이에 합당한 마음 자세와 규정된 조건을 채움으로써 교회의 도움으로 대사를 받게 된다.
 
대사와 대사의 수여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은총을 충실히 전달하고자 하는 교회의 사목적 실행이며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하느님 앞에 참회하는 사람에 대한 주님의 크신 자비이다.
 
대사는 개인적 신심이나 대사 본연의 의미 이외의 것으로 오인되거나 남용되어서는 안 되며 사목자  또한 대사 본연의 의미를 신자들에게 올바로 전달하고 교육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별히 대사가 사람들에게 기복적으로 이해되거나 구원을 위한 최고의 수단처럼 강조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성 베드로의 청동상
          
          이는 아르놀포 디 캄비오(1245-1302)의 작품으로, 작가는 현재 베드로 대성당 
          지하 무덤 출구 앞에 놓여 있는 성베드로의 오래된 대리석상(5세기경으로 추정)에서 
          영감을 얻어, 이와 비슷하게 청동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중세기 때부터 이곳을 찾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특히 이 청동상의 발에 입맞추며 
          기도를 바치는 전통 때문에, 현재 오른쪽 발가락은 거의 다 닳아서 그 원 모양이 
          없어지고, 이제는 발가락도 많이 닳은 상태이다. 
          이는 1857년 3월 15일, 교황 비오 9세가 특별한 회칙을 통해 이날부터 50일간을 
          임시 성년으로 반포하며, 베드로 대성당에 와서 이 동상의 발에 입맞춤 해야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유럽 전역의 많은 순례자들이 이 기간 동안 한꺼번에 몰려들어 
          사도의 오른쪽 발등에 입맞춤하는 바람에 발등이 심하게 닳았다고 한다

    Jesus, my Lord, to Thee I cry  / Deborah Mae

    노래 출처: 가난한 자입니다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