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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 29일 야곱의 우물- 마태 16, 13-19/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29 조회수460 추천수4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 16,13-­19)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은(13절) 헤로데 대왕이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위해 신전을 지어 바친 곳입니다. 이곳 지명을 굳이 명시한 것은 로마 황제의 영향력과 권력을 암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몸담고 있는 종교와 문화 전통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여정을 시작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한참 떨어진 이곳에서 당신의 신분에 관한 대중의 견해를 물으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13절) 자신의 정체성을 이 낯선 곳에서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바로 이 도시에서 세상의 권세와 구별되는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십니다.
군중은 아직 예수님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여 오락가락합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14ㄱ절) 세례자 요한이라 한 것은 예수님이 베푸시는 기적 때문입니다. 기적을 일으킬 만한 능력은 죽은 자가 부활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은 의인이 억울하게 죽으면 다시 살아나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14ㄴ절) 아직 예수님의 메시아성은 알아보지 못하고 메시아의 선구자 정도로 봅니다. 엘리야가 아닐까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유다인들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승천한 엘리야가 재림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말라 3,23; 집회 48,9-­10). 군중은 예수님을 그동안 왔다 간 예언자와 같은 한 예언자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보고서 그 신비로움에 그저 감탄만 했을 뿐 신뢰나 신앙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정해진 사고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정체에 관한 군중의 여론과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예수님과 제자 사이에 대화 형식으로 오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질문하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호기심에서도 아니고 떠도는 풍문이 궁금해서도 아닙니다. 이제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다짐받고자 하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5절) ‘그러면’이라는 말에는 제자들한테서 다른 대답을 듣고 싶다는 예수님의 소망이 숨어 있습니다.
마침내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의 신원이 밝혀집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절) 베드로의 고백은 백 점짜리였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의 신앙고백일 수 있습니다. 그분과 함께 머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말로 고백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계시입니다. 예수님의 신적 기원이자(1,18-­25), 하느님에게서 예수님께 넘어간 메시아적 권한입니다(3,13). 예수님의 이 비밀은 오직 하느님 자신께만 열려 있었습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17절) 살과 피가 아닌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이 베드로에게 하느님의 아들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아버지께 속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께 순종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이제 고난의 길이라는 일상 속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그 길은 사람의 아들이 가야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고난과 순교를 각오하지 않은 하느님의 아들 고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전형적인 제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태오복음에서 다른 제자들보다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베드로의 체험은 제자들이 겪는 체험과 상황을 대변합니다. 그는 스승이신 예수님께 묻고 가르침을 받는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상반되는 여러 모습을 보이기는 합니다. 예수님께 맹세해 놓고 한편으로 부인하며 후회합니다(26,69-­75). 믿음이 흔들려 물에 빠질 뻔하기도 합니다(14,28-­31). 예수님의 아들을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지만 고난을 두려워하여 반석과 사탄 사이를 오갑니다(16,23). 그래서 베드로는 전형적인 제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제자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부름을 받은 자로서(4,18-­20; 10,2) 예수님과 처음부터 함께 있었습니다. 그는 부활 이후 교회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주요 지도자인 야고보나 바오로와는 또 다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에서 마태오복음에서는 처음으로 ‘교회’라는 낱말이 등장합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18절) 여기서 이스라엘에서 탄생한 제자 공동체가 어떠한지 드러납니다. ‘내 교회’, 이는 옛 교회인 이스라엘과는 구별됩니다. 16,21­-23에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고난의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여 사탄으로 위축되고 말지만, 예수께서는 그를 ‘반석’이라 부르십니다. 일찍이 이사야는 “보라, 내가 시온에 돌을 놓는다. 품질이 입증된 돌, 튼튼한 기초로 쓰일 값진 모퉁잇돌이다.”(28,16)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교회를 상징하는 성전의 기초라 부르십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특별한 속성이나 다른 인물보다 뛰어난 존재라서 반석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의 첫째 제자이고 교회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제자이기에 반석이 된 것입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19절) 14,33에서 모든 제자가 했듯이 베드로도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13,16 이하에서 예수님이 모든 제자를 축복하셨듯이 베드로를 축복하십니다. 베드로에게 매고 푸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권한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옛 제자들은 그렇다 치고, 그러면 너희에게 나는 무엇이더냐?’ 베드로 사도처럼 반석과 사탄 사이를 오가기만 해도 다행입니다. 불현듯 한 번씩 예수님은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치열한 삶이 그분이야말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심을 절절히 깨우쳐 줄 것입니다.
강지숙(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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