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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6-10 조회수1,095 추천수1 반대(0) 신고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바르나바 성인은 키프로스의 레위 지파 출신이다. ‘바르나바라는 이름은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본이름은 요셉이며(사도 4,36 참조) 마르코 성인의 사촌(콜로 4,10 참조)이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으로 칭송받는 바르나바 사도는 유다교에서 개종한 뒤 자신의 재산을 팔아 초대 교회 공동체에 바치고 다른 사도들과 함께 열성적으로 선교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성인은 60년 무렵 키프로스의 살라미스에서 순교하였다.

 

 

 

 

1독서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21-26; 13,1-3
그 무렵 21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2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3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21

주님의 손길은 칠십인역에서 하느님의 현존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주님께로 돌아온다라는 표현은 루카가 좋아하는 어구.

 

23

루카는 은총을 하느님이 어떤 사람에게 보여주시는 총애로 보았다. 안티오키아 공동체도 예루살렘 공동체처럼 주님께로부터 같은 메시아적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바르나바의 기뻐하는 반응은 지상에 나타난 하느님의 업적을 증언하는 표시다. 바르나바의 격려는 그가 받은 사도적 직책에 속한다(4.36). 어떤 윤리적 권고에 대하여 루카 3.18; 사도 2.40; 14.22; 15,32; 16.40; 20.1-2.

 

24

바르나바에 대한 묘사는 아리마태아 요셉에 아리마태아 요셉에 관한 묘사와 비슷하다. 루카는 이런 덕성을 지닌 바르나바를 새로운 공동체의 합당한 창설자로 내세운다.

 

25

사울로가 헬라인들과의 충돌이 있은 뒤 예루살렘 교회는 그를 그의 고향으로 보냈다. 사울로를 찾은 것은 바르나바는 두 번째로 그의 후견인 역할을 한다.

 

26

그리스도인은 크리스토스라는 칭호에서 비롯된다. 이 이름은 성도들이 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라 적대적인 외부인들이 붙여준 것이다. 메시아 광신자라는 의미를 띤 이 이름은 신약성서에 두 번 더 나온다(26.28; 1베드4.16).

 

131

사도행전에서는 교사라는 칭호가 여기만 나온다.

루카는 안티오키아 교회의 주요인물들을 바르나바와 사울로 사이에 언급함으로써 이 두 선교사가 그들 모두를 포용하여 함께 일하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유다의 이름 시므온에 붙여진 라틴어 별명 니게르는 검다는 뜻이고 각 아프리카 태생임을 가리킨다. “헤로데 영주와 함께 자라난이라는 표현은 양자로 채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손을 얹는 동작은 능력이나 권위를 나타낸다. 단식과 기도의 연결에 대해 루카 2.37; 5,33; 사도 14.23 참조, 단식과 기도의 병행은 유다교의 중요한 신심행위다.

 

 

 

 

 

 

 

 

 

복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7

제자들이 할 일들은 예수님이 해오신 일들과 같다. 하늘나라가 도래한 표시로 치유이적과 구마이적을 행한다. 제자들은 예수께로부터 치유능력과 구마능력을 거져 받았으니 거저주어 마땅하다.

 

9

여장규칙에서는 당시 여행하는 데에 꼭 필요한 돈, 자루(양식과 의복은 넣는 가방), 속옷 두 벌, 신발, 지팡이조차 금하신다. 마태오는 어록의 지극히 엄한 금령을 따랐다. 마르 6,8-9에 또 한가지 여장규칙이 있는데 여기서는 신발과 지팡이만은 허용한다. 지팡이는 강도나 야수나 독사 따위가 덤빌 때 필요한 도구다.

 

이를 포기하는 것은 소극적으로는 무방비를 자초하고 적극적으로는 평화태세를 드러내는 표지다. 이처럼 아무런 여장도 갖추지 않고 과연 전도여행을 할 수 있는가. 이천 년 전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특수 사회에서는 가능했다. 이미 예수 운동에 동조하는 이들이 각처에 있어 제자들을 영접했으니까.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흔연히 나그네를 환대하는 관습이 있었으니 고생은 되겠지만 굶고 얼어서 죽을 염려는 없었다.

 

100년경 서리아 지방의 유랑전도사들도 매우 업격한 여장규칙 아래 살았다. 13세기 아씨시의 해맑은 성인 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의 말슴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완전 무소유.무방비 상태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이미 성인 성서에 제자들조차 성인의 가르침을 저버리기 시작했다. 무소유. 무방비는 그철 어려운 것이다.

 

10

일꾼은 제 양식을 얻을 자격이 있습니다로 말하면 그 비슷한 변형태가 루카 10.7에도 있는 것으로 미루어 어록에서 옮긴 말씀이다. 사도 바오로도 같은 견해를 표명했다(1고린 9,9.14).

 

11

11-15절은 루카 10.5-12와 대채로 일치하므로 어록의 파견사에서 따온 것것이다. 16ㄱ절은 루카 10.3과 거의 같으므로 역시 어록에서 따왔고, 16ㄴ절만은 마태오에만 수록된 일종의 처세룰 속담으로 마태오의 가필이다.

11절의 병행문 루카 10.7에서는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그들의 음식을 먹고 마시시오...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가지 마시오다른 집에 가면 대접이 나올까 해서 옮겨다니지 말 것이다. 복음전도사는 거지가 아니다.

 

13

메사아의 평화를 전하는 것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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