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그냥 날 좀 내버려 두세요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02 조회수571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냥 날 좀 내버려 두세요> ... 윤경재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마침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가라.” 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마태 8,28-32)


  현대인들은 많은 정신 질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심각한 정신분열증에 이르지는 않아도 가벼운 건강염려증이나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등을 앓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신병이라고 하면 우선 창피하게 생각하고 무슨 큰 죄나 지은 양 쉬쉬하고 감추기에 급급해서 초기에 치료할 시기를 놓쳐 버립니다. 대부분 정신질환이 오래되면 사회성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그래서 집안에 박혀 숨어 지내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남과 접촉하는 것을 꺼리게 되고 간섭받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지내기를 좋아하게 마련입니다.

  특히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부를 정도로 흔한 질병이 되었습니다. 우울증이 무서운 것은 환자들이 타인과의 대화와 사회 접촉을 꺼리게 만들어, 그러다 보니 막다른 골목에 처한 자신의 처지가 더 두드러지게 느껴져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면 자신을 귀찮게 한다고 여기고 더 숨고 가식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래서 마치 병이 없거나 다 치료된 것으로 오인하게 됩니다. 실제로는 더 심각하게 진행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환자들은 자기를 구해달라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 신호를 의사나 보호자들이 빨리 알아채고 미리 조치를 취해서 최악의 사태를 막아야 하겠습니다.

  환자들이 남과 접촉을 꺼리는 이유는 자신의 거짓이 들통 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본의이건 아니건 간에 거의가 자신의 참 모습을 감추고 삽니다. 두 모습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스스로 우울한 정도가 심해집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이 차이를 좁히려고 노력하거나 갈등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풀려 합니다. 취미 활동이나 레크리에이션이 이 갈등을 푸는 좋은 방법입니다. 마음의 병은 역으로 육체적 활동을 통해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우울증 환자들에게 햇볕을 쬐는 야외 활동을 적극 권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귀 들린 두 사람도 자신을 사회에서 소외시킵니다.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무덤 근처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접근해오는 것을 무력으로 막아서 사람들이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마귀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이 말은 귀찮으니 그냥 내버려 두고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뜻입니다. 과연 무엇이 두렵고 괴롭다는 것인가요? 바로 자신의 정체가 낱낱이 드러나는 게 두렵다는 말입니다. 괴리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감추고 살아왔는데, 당신이 나타나서 그 괴리된 모습을 드러내니 자신이 괴롭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자주 이런 경험을 합니다. 신앙생활에 충실히 하다보면 왠지 사회생활에서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또 외교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잘만 사는데 하면서 자신도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은 우리를 억압하고 제한하는 것만 같습니다. 제 멋대로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합니다. 신앙에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갈등과 번민을 느낍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이 말씀은 예수님께로 다가설 때 느끼는 심정을 나타낸 것입니다. 마귀뿐만 아니라 우리도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자신이 예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마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 말씀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내게 이익을 주고 편리한대로 살 것인지 갈등하게 됩니다.


  이때 마귀는 우리더러 이렇게 말하라고 꼬드깁니다. “나랑 무슨 상관이 있어. 왜 귀찮게 하는 거야. 제발 나하고 싶은 대로 나둬!” 그러고는 마귀는 돼지와 같이 무가치 한 것으로 들어가길 원하게 합니다. 자신을 예수님에게서 더욱 멀어지게 하고 소외하도록 꼬드깁니다.


  이런 마귀의 행동은 결국 여러 가지로 피해를 남깁니다. 복음서에서 보면 공연히 죄 없는 돼지만 물에 빠져죽게 되었고 돼지 치는 농부들에게 큰 손해를 끼쳤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유혹에 넘어가게 하였습니다.


  신앙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보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아는 것과 예수님을 따르는 실천은 다릅니다. 마귀도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한 아드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예수님을 귀찮아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귀찮아할 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스스로 소외하지 않아야 합니다. 햇볕으로 나가 자신을 빛에 쪼이는 것입니다. 신앙의 길로 나가 공동체에 더욱 열심히 참여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숨기거나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묵묵히 빛의 세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안에서 기쁨을 찾는 것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