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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 19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19 조회수565 추천수11 반대(0) 신고

7월 19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마태오복음 12,14-21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라.”


< 저는 오직 부족한 도구였을 뿐입니다 >


   저희 살레시오 회원들의 스승이자 아버지이신 돈보스코 성인(1815-1888)의 영성을 주제로 한 문헌을 영적독서로 읽으면서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비오 11세 교황님께서는 돈보스코의 삶을 이렇게 묘사하셨습니다.


   “돈보스코의 삶은 한 마디로 순교의 삶이었습니다. 옆에서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막중한 일에 둘러싸인 순교자로서의 삶이었습니다. 혼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지 의심이 갑니다. 그 많은 일을 동시에 해냈다는 것은 정말 믿기가 힘듭니다.”


   카빌리아 신부님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돈보스코 안에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돈보스코가 맡았던 직책이나 일들을 간단하게 요약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꽤 많습니다.


   사제, 교육자, 교육학자, 자선사업가, 초대형 보육원 원장, 수도회 창립자, 수녀회 창립자, 협력자회 창립자, 도움이신 마리아 신심의 전파자, 평신도 협회 창립자, 선교사업 창립자, 베스트셀러 작가, 저술가, 가톨릭 출판사 사장, 공장장,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의 아버지…


   이 모든 것이 돈보스코 한 사람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돈보스코는 이 모든 일을 충실히 해나가면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는 일이 없었습니다. ‘내가 이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요란스럽게 떠벌이지도 않았습니다. 그 어떤 야단스런 몸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스스로에 대해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이룩한 업적에 대해서 단 한 번도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끌여 들여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용한 어조로 그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했다면 그것은 모두 도움이신 성모님께서 친히 하신 것입니다. 저는 오직 부족한 도구였을 뿐입니다.”


   참된 복음 선포자는 많은 말을 떠벌이지 않습니다. 요란스럽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주 체험하는 바처럼 시끄럽고 말 많은 사람일수록 실속이 없습니다. 이런 저런 많은 말들로 상대방을 정신이 하나도 없게 만들지만 요란스럽기만 하지 전혀 도움도 안 됩니다. 내용도 부실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도 않습니다.


   반면,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는 내면이 안정되어 있고 평화롭습니다. 진중합니다. 겸손합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한 마디 한 마디 말이 깊이 있는 숙고의 결과이기에 통찰력이 있으며, 또한 말한 바를 그대로 실행에 옮깁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다투지도 아니하고 큰소리치지도 않습니다. 거리에서 그의 소리를 듣기가 힘듭니다.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고 나지막합니다.


   그러나 신중한 그의 말은 힘이 있습니다. 에너지가 넘칩니다.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줍니다. 결국 그가 선포하는 말은 정의의 말, 승리의 말, 구원의 말입니다.


   갈 곳 까지 간 사람들,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사람들, 완전히 ‘맛이 간’ 사람들, 별의 별 말을 다 써도 제대로 표현 못할 사람들을 어쩌다 만납니다.


   ‘귀신은 뭐하나 저런 사람 안 잡아가고’,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착하디, 착한 사람은 저리 빨리 데려가시고, 저런 인간들은 어찌 저리 두시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강조를 하시는군요.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라.”


   아무리 부족한 인생일지라도 하느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심을 오늘 다시 한 번 되새깁니다.


   판단이나 단죄, 선고는 하느님의 몫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몫은 이런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신다는 표시로 그들을 ‘꺾지 않으시고, 끄지 않으시니’ 우리도 열심히 그들을 용서하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는 표시로 새 삶을 주셨으니, 우리도 부지런히 그들을 새롭게 보는 일입니다.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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