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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만남위에 세워진 성전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02 조회수556 추천수8 반대(0) 신고
 
예로부터 성전은 성인들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
그런 전통에 따라 성당제대에는 성인의 유해를 모시는 관습이 전해지고 있다.
이런 사실을 통해 또 다시 확인하는 사실은
죽음이 각 개인의 최종성적표라는 것이다.
죽음으로써 비로소 한 개인이 살아온 모든 날들이 종결되고 평가되어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비석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오로 베드로 두 성인은 교회의 두 기둥이다.
한 분은 신앙을 기초 세우고 한 분은 그 신앙을 온 세상에 전파하였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묻기를,
“너희는 무엇을 믿느냐? 무엇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느냐?”고 묻지 않으시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으신다.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교리지식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이라는 사실을 말씀해주시는 질문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신자와 비신자로 갈라진다.
본질적인 것은 교리지식이나 윤리가 아니라 신앙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님과의 만남이다.
그분을 만난 사람은 그분을 믿게 된다.
그래서 그분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신다.
그분은 예언자시고 백성들의 지도자시고 교사이시고 사제이시고 왕이시고,
심지어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우리에게 친구요 형제라고 그분 스스로 말씀하셨다.
그렇게 그분과 만난 경험을 통해서 신앙이 자라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은 좌충우돌식이다.
고기잡이하는 자기 배 위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
“나를 따르라” 했을 때, 모든 걸 버리고 따라 나섰다.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고 자기도 물위를 걷다가 물 속에 빠져 죽을 뻔했다.
예수님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실 때
그 뜻을 설명해 주십시오 했따가,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받았다.
예수님이 사람들 손에 잡혀 죽을 것이라고 예고했을 때,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예수님을 말리다가,
“사탄아 물러가라”는 엄청난 꾸중을 들어야 했고,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는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 떼어 예수님을 배신하였다.
하지만 이랬던 베드로가 동료들과 함께 고기 잡으로 나갔다가 허탕친 날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자 예수님을 보려고 맨 먼저 물속에 뛰어들어 헤엄쳐 나왔다.
그 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이나 물어도
실망하지 않고 자기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고백했다.
그리고 로마에 가서 용감하게 순교하였다.
바오로가 예수님은 만나는 과정은 기적적이다.
예수는 이미 2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었는데도
부활이니 성령강림이니 하는 괴소문(?)이 끊이지 않고,
예수쟁이들이 비밀집회를 열고 있었다.
유다 율법을 신봉하는 바리사이파 바오로는
나자렛 예수의 추종자들을 체포하려고 말을 달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대사제가 발행한 그리스도인 체포장이 들려 있었다.
그런데 하늘에서 갑자기 번개같은 빛이 쏟아지더니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말이 놀라서 앞발을 들고 날뛰는 바람에 바오로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태양같이 밝은 빛에 눈이 멀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잠시 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바오로는 그것이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라고 직감하고,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바오로에게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당신 자신이라고 알려주셨다.
바오로는 그렇게 예수님을 만났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을까?
베드로처럼 좌충우돌적으로 만나기도 하고 바오로사도처럼 기적적인 체험을 할 수도 있다.
그 어떤 것이든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다.
기도를 들어주시거나 친절한 사람들을 통해서
혹은 기적적인 체험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그분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자격이 갖추어져 있어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필요한 자격과 능력까지 주신다는 사실이다.
베드로 바오로 두 사도가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은 그런데 직접 그분을 보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 본당 청년들이 미사 한 시간 전에 청년회합실에서 주일 복음나누기를 하는데,
이런 자리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소가 된다.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면서 복음말씀에 대한 느낌이나 개인적인 체험을 나누면서
그 자리를 하느님이 만들어주고 계시다는 체험을 하게 된다.
회합실이 좁고 더워서 고생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누는 시간동안에는 우리 청년들만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그 자리에는 예수님도 함께 하셨다.
그곳이 교회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는 말씀처럼,
이제 교회는 그분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
신앙과 신앙이 만나는 자리 위에 세워진다.
베드로 바오로의 무덤위에도,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의 만남 위에도 그분의 교회는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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