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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0 연중 제13주간 목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6-29 조회수1,258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가서 내 백성에게 예언하여라.>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0-17
그 무렵 10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이스라엘 임금 예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집안 한가운데에서
임금님을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더 이상 참아 낼 수가 없습니다.
11 아모스는 이런 말을 해 댑니다.
예로보암은 칼에 맞아 죽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갈 것이다.’”

 

12 그런 뒤에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13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14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15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16 그러니 이제 너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는 이스라엘을 거슬러 예언하지 말고
이사악의 집안을 거슬러 설교하지 마라.’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아내는 이 성읍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지며
네 땅은 측량줄로 재어 나누어지고 너 자신은 부정한 땅에서 죽으리라.
그리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가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아모스를 비난하자, 아모스는 자신이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던 사람으로 주님께 붙잡혀 예언자가 되었다며 이스라엘의 멸망을 거듭 예고한다.

 

 

 

 

 

 

 

 

 

복음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2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3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5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6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7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8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중풍병자를 낫게 하시다

마태오는 1절을 덧붙이고, 나머지 2-8절은 마르 2,1-12를 옮겨쓰면서 일체 부수적인 일화를 삭제하고 요점만 간추려 실었다. 예로, 가파르나움 집 문앞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일화(마르 2.,1-2), 네 사람이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뚫어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내려놓았다는 일화(마르 2.4)를 삭제했다.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는 작은 일을 보면 예수께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는 큰 일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5-6). 여기에는 대비논법 비슷한 논리가 들어 있다(6,26.30; 7.11).

 

예수님은 생사에 말로써 죄를 사해 주신 적이 거의 없다. 매우 드물게 마태 9.2; 루카 7,48에서는 예수님이 사죄를 선언하셨다고 하나 이는 예외 현상이다. 오히려 예수께서도 사죄선언보다는 율법상 또는 윤리상의 죄인들과 서슴없이 가까이 지내고 식사하고 변호함으로써 그들을 거두어들이셨다. 말하자면 행동으로 사죄를 보여주셨다.

 

예수 부활 이후 교회는 사죄권을 행사했다. 9.8도 마태오 교회의 사죄권 행사를 강하게 암시한다. 이 때문에 유다교 율사들과 사죄 논쟁이 일어났다. 교회는 사죄권을 정당화하려고 중풍병자 치유이적 중간에다 사죄 논쟁을 삽입한 것 같다. 그리스도교 실존설학의 아버지 키에르케고르는 사죄 체험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하느님을 생각할 때 자신이 저지른 죄가 떠오르기보다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느낌이 들면, 지난날을 돌이켜볼 때 얼마나 많이 범죄했는가보다는 얼마나 많이 용서받았는가 하는 느낌이 들면, 죄사함을 받고 안식을 누린다 하겠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전대사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전대사를 받고도 여전히 나는 죄가 많아. 그런데 용서가 되겠어!’라고 하는 이들이 많으리라 봅니다. 그럴때면 지은 죄가 떠오르기보다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느낌이 들면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는가보다는 얼마나 용서받았는가 하는 느낌이 들면 죄사함을 받고 안식을 누린다하겠습니다. 지은 죄에 얽매이지 말고 일반적으로 생각을 하면서 전대사를 확실히 믿고 안식을 누려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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