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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일> - 포도밭 임자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13 조회수458 추천수2 반대(0) 신고
 
 
 

<하느님의 일>  - 포도밭 임자 ... 윤경재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마태 20,1-16)


  오늘 복음 말씀은 마태오 특수사료로서 마태오 저자의 문학적 기법이 두드러집니다. 그리스어 단어 선택도 생각을 깊게 한 흔적이 나타납니다.

  2절에 일꾼(ergatas)과 주인(oikodespote)이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symphoneo)했다는 단어는 화음, 교향악(심포니)의 어원입니다. 최상의 칭찬이 담겼습니다. 6절에서 주인은 아침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5번씩이나 포도원(ampelon)과 시장(agora)을 오가는 데 반해 게으른 자(argos)들은 느지막이 나와 하릴없이 시장통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일꾼이라는 단어도 쓰지 않았습니다. 첫 사람과는 합의라는 단어를 쓰고, 아홉시에 나온 사람에게는 공정하게(dikaios) 준다고 말했으나 마지막 사람에게는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관리인(epitropos)에게 말째(eschatos)에서 첫째(protos)까지 품삯(misthos, 賞으로 해석해도 됨)을 주라고 합니다.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주니, 더 받기를 기대했던  맨 먼저 온 이가 투덜댑니다(goggyzo). 이에 주인이 첫째 사람을 친구(hetarios)라고 부르며 자신은 불의하지 않았다(ouk adikeo)고 답합니다. 선한(agathos)일을 악하게(poneros) 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마도 친구라 부른 것이 더 큰 상이라는 말 같습니다.


  이렇게 마태오 저자는 대조법을 적절하게 씁니다. 합의와 투덜댐, 일꾼과 게으른 자, 이른 아침과 저녁, 포도원과 시장, 관리인과 친구, 공정과 불의, 말째와 첫째, 선과 악이 그것입니다. 분주하게 다니는 주인과 하릴없이 서 있는 게으른 자도 대조가 됩니다.

  이 대목에서 일꾼들의 생각과 주인의 뜻은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나타납니다. 우리에게도 역설적으로만 들립니다. 우리도 자주 일꾼처럼 우리의 뜻  대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시도합니다. 여기서도 그저 간단히 분배정의(?)가 우선한다는 비유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외견상(?) 게으른 자라도 하루에 꼭 필요한 것은 주시는 분이라 이해해야 합니다. 그 본래 뜻은 부르심에 응답하면 결과로 공정한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분주히 우리를 부르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그분의 부르심을 들었을 때 순순히 따르라고 강조하는 대목입니다. 부르심마저도 선물로 받아들이라는 요구입니다. 땀 흘려 수행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초대입니다.


   요한복음 6,27-28에서 예수께서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하시자 사람들은 “하느님의 일(erga tou theou)” 을 어떻게 해야 그 양식을 얻게 되는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어른 이해되지 않지만, 일(ergon)의 어원이 ‘음식을 소화시키는 법’ 이라는 것을 알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이해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을 소화하여 에너지를 얻듯이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져 구원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하느님의 일’을 포도원에서 노동하는 것이라고 보기보다 하느님의 뜻에 따른다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일에 대한 상(misthos)은 ‘그 일을 하는 자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일이 음식물을 소화 흡수하는 것”이니 우리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지 않겠습니까?

  주인에게 일꾼으로 불리는 사람은 새벽에 일찍 나와 일할 준비를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기쁨을 누구보다 오래 맛볼 수 있었으니 그보다 더 큰 상이 어디에 있을까요? 투덜대고 시기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마태오 저자는 첫째가 꼴찌 된다는 반어법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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