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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퇴원인사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28 조회수493 추천수10 반대(0) 신고

퇴원인사


†. 사랑 평화

  모레(30일·월요일) 퇴원합니다.
  퇴원을 이틀 앞두고 병실(서울 강남성모병원 4205호실)에서 이 글을 씁니다.
  퇴원하기 전에 병상에서 퇴원인사를 드리는 것도 좋을 듯싶어 쓰는 글이기도 합니다.


  지난 5월 18일 천안 순천향대학병원에 입원한 후 2주간을 보내고, 6월 2일 서울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겨 온 후, 28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도합 44일을 병상에서 보내는 셈입니다.

  (제가 청년 시절부터 그리스도교 신앙과 관련하여 4와 40이라는 수를 각별히 사랑해온 연유로 44일 동안 병상생활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우스운 생각도 듭니다. 이런 얘기를 담당 교수이신 조건현 흉부외과 과장께 했더니,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이 암브로시오라는 조 교수는 내 말뜻을 금방 이해하고 웃으시더군요.)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실존과 은총을 체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수많은 형제 자매님들의 염려와 기도 덕분에 어려운 병상 생활을 잘 견뎌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위해 미사를 봉헌해 주시고 열심히 기도해 주신 우리 태안성당 신부님과 수녀님들, 사목협의회 김광정 마티아 부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회장님들과 간부님들, 김용순 안드레아 전 총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신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우리 본당 신부님을 비롯하여 세 분의 신부님이 병실을 찾아 주셨고, 세 분의 신부님이 위로전화를 주셨습니다. 또 전에 우리 태안본당에 계셨던 수녀님들을 비롯하여 여러 수녀님들이 병실을 찾아 주시거나 전화를 주셨습니다.

  천안 순천향대학병원에 있을 때는 천안 지역의 형제 자매님들과 친지님들이,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있을 때는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시는 형제 자매님들과 친지님들이 많이 찾아 주셔서 인터넷 시대의 소식 전파의 위력을 실감할 수도 있었습니다.

  태안에서 올라오시는 형제 자매님들마다 우리 태안성당의 모든 형제 자매님들이 얼마나 많이들 걱정하며 저를 위해 기도하시는지를 전해 주셔서 고맙고 죄송한 마음 한량없었습니다.

  (병실을 찾아 주신 분들 중에는 제 입원 사실을 우연히 알고 나서, 또는 문병 후 인터넷 상에 소식을 띄우신 분들도 계시고, 천안 순천향대학병원으로 헛걸음을 하신 분들, 천안으로, 서울 강남성모병원으로 두세 번씩 병실을 찾아주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저의 쾌유를 기원하시는 수많은 형제 자매님들의 격려 말씀을 틈틈이 웹상에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각별하고도 은혜로운 고마움 속에서 저는 더욱 하느님의 자애로운 손길을 느낍니다.

  고통스러운 병상 생활 속에서도, 그 고통 속에 늘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스스로 느끼고자 했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문병차 병원에 가서 입원환자들을 접할 적마다 그들의 고통을 피상적으로 느낄 뿐이었습니다. 더러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을 갖기는 했지만, 어떤 실감이나 체감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한 달이 넘도록 병상 생활을 하면서 ‘병고(病苦)’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가슴과 왼팔과 오른쪽 다리의 여러 곳이 절개되어 여러 개의 피고름주머니를 달고 살면서, 치료라는 것이 병상에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하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갖가지 숱한 고통과 아픔을 겪고 견뎌야 한다는 사실 가운데서, 그 고통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님의 십자가 고통과 순교 선열들의 고난을 생각하기도 했고, 내가 생살이 찢기는 육신의 고통 속에서 한 순간이나마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생생하게 느끼는 신앙인이라는 사실에 야릇한 위안을 얻기도 했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병실의 병상 하나에는 폐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인 70대 노인도 있었고, 교통사고로 엉덩이뼈 한쪽을 잘라내고 몇 달째 통증에 시달리는 40대의 아내 없는 외로운 사람도 있었습니다.

  특히 늙으신 어머니가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는데도 무시로 통증에 시달리는, 아내도 자식도 없는 사람의 고통을 보면서, 그 고통의 언저리에서나마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을 절절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이며,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이 얼마나 고맙고 귀중한 사람들인지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서울 강남성모병원 의료진의 자상함과 간호사들의 친절은 깊은 인상으로 남을 듯싶습니다. 또 수시로 병실을 찾아주신 원목실 수녀님과 봉사자 자매님들께 감사하는 마음 큽니다.)

  저는 베트남전쟁 고엽제 후유증 판정을 받고 국가유공자가 됐을 정도로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살면서도, 평소 건강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당뇨와 고혈압과 통풍 등 여러 가지 성인병들을 안고 살 망정 내가 과로와 세균 감염이라는 덫에 걸려 꼼짝도 못하는 지경이 되리라는 것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119 구급차에 실려 가고, 병원에서 수술까지 하고 1개월이 넘는 동안 병상 생활을 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 상상도 못한 일들을 겪으면서 사람은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병원 신세를 질 가능성을 안고 산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감득할 수 있었고, 그 사실에서 겸허한 마음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40여 일 동안 병상 생활을 하면서, 주일미사와 평일미사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환자로, 의료진으로, 보호자로, 직원으로 생활하는 대형 병원 안의 작은 성당에 모여 미사를 지내는 적은 수효의 사람들을 보면서 남다른 애정과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적은 수효로부터 찬미를 받으시는 하느님이 이 병원도 존재케 하고 유지시켜 주시는 위대한 분이라는 사실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 고통스러운 병상 곁에도 늘 사랑과 희망으로 현존하시는 위대하신 하느님을 느끼고 체감할 수 있는 참으로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몹시 지루하고 길었지만 한 순간이었던 지난 40여 일의 시간을 이만 접고, 드디어 모레(30일) 퇴원을 하게 됩니다. 많은 분들께 걱정을 끼쳐 드리고 신세를 졌습니다. 그 시간도 제게는 값진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두루 아시겠지만, 저는 올해 환갑을 먹었습니다. 환갑 해를 맞으면서 천주교 태안성당 제8대 총회장이 되었고, 금년 초엽의 여러 달 동안은 거의 매일같이 바다에 가서 기름 냄새 속에서 생활했고, 꽃피는 4월에는 세 가지 신앙문집을 동시 출간하여 하느님께 봉헌하고 성당에서 봉헌미사 후 출판기념회 행사를 갖는 영광을 누렸고, 금년의 절반이 이우는 시점에서는 한 달 넘게 병원 생활을 하는 등 환갑 먹는 해를 정말 아기자기하고 다채롭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환갑 해의 앞으로 절반 정도 남은 시간 속에는 또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무슨 일들이 내 환갑 해를 장식해 줄지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오로지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시간 속에서,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일들과 만나고 안고 치르며 살 뿐입니다. 그 어떤 일들이라도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일,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으로 여기며 살 뿐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의심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더 큰 불행과 고통 속에서도 강한 믿음으로 하느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신앙인의 다짐을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다시 한번 모든 형제자매님들의 관심과 염려, 애정 어린 기도에 깊이 감사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멘.


        (2008년 6월 28일, 서울 강남성모병원 4205호실에서 지요하 막시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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