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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원의 길" - 2008.6.24 화요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24 조회수460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6.24 화요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이사49,1-6 사도13,22-26 루가1,57-66.80

                                                              
 
 
 
"구원의 길"
 


오늘 성 요한 세례자 대축일 아침기도 시
즈카리야 노래가 새로웠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 중 생략된 부분인데,
즈카리야가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자
성령으로 가득 차 불렀던 노래로
우리 수도자들이 아침기도 때 마다 부르는 찬가입니다.
 
다음 대목에서
새삼 요한 세례자와 예수님의 관계가 참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아기야, 너 지존하신 이의 예언자 되리니,
  주의 선구자로 길을 닦아
  죄 사함의 구원을, 주의 백성에게 알리리라.
  이는 우리 하느님이 자비를 베푸심이라,
  떠오르는 태양이 높은데서 우리를 찾아오게 하시고,
  어둠과 그늘 밑에 앉아 이들을 비추시며,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시리라.”(루가1,76-79).

세례자 요한 없는 예수님,
예수님 없는 세례자 요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마 탄생 대축일을 지내는 분은 이 두 분밖에 없을 것입니다.

며칠 전 탄생의 반대편에 있는 죽음에 대한 묵상이 생각납니다.

그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죽음을 통해 그대로 들어납니다.
잘 살기도 어렵지만 잘 죽기는 더 어렵습니다.
 
마지막 가장 중요하고도 힘든 시험 같기도 한 죽음입니다.
다른 시험은 날짜가 있어 준비라도 할 수 있지만,
죽는 날짜는 모르기에 더 어려운 시험이 죽음입니다.
 
하여 사막교부들은 물론 성 베네딕도는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 하셨습니다.
늘 깨어 죽음 시험을 준비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제 사명(使命)을 알아,
제 삶의 자리에서 그 사명에 충실함이 바로 구원입니다.

미사 시 본기도의 서두도 의미가 깊습니다.
 
‘하느님, 성 요한 세례자를 보내시어...’,
세례자 요한뿐 아니라
우리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사명 받아
각자의 삶의 자리에 파견되었습니다.
 
과연 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누구보다 자기의 사명을 잘 알아
그 사명에 충실했던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그대로 세례자 요한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세례자 요한의 고백을 통해서도
그의 사명의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궁극의 거처(居處)인 하느님 안에,
예수 성심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 구원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궁극의 거처는
지상 장막이 아닌 하느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세례자 요한뿐 아니라
모든 성인들 및 우리의 궁극의 거처는 하느님이요,
예수 성심임을 깨닫습니다.
 
갈 곳은 많은 데 갈 곳이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또 끊임없이 수도원을 찾는 사람들,
바로 하느님이 이들의 거처임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그분께서는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이사야는 물론 세례자 요한 역시
그의 궁극의 거처는 하느님이셨음을 깨닫습니다.
 
복음의 마지막 말씀도 이를 증거 합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하느님의 품을 상징하는 광야에서
굳센 정신의 소유자로 성장한 세례자 요한이었음습니다.


관계(關係)에 매어있어야 구원입니다.

이래야 우리의 사명도 하느님의 거처(居處)도 선명해집니다.
얼핏 보면 불편하고 구속하는 관계 같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관계에 매어 살아야 비로소 사람이 됨을 깨닫습니다.
 
제가 매일 미사와 강론을 할 수 있는 것도
순전히 공동체 관계에 매어있는 은총 덕분이요,
배 밭에서 하루 열 네 시간
초인적으로 배 봉지를 싸던 어머니들 역시
가족 공동체 관계에 매어있는 은총 덕분임을 봅니다.

관계를 떠나면 남는 건 이기적 자아뿐이며
내적 성숙과 성장도 요원합니다.
 
하느님 추구 또한 환상으로 끝나기 십중팔구입니다.
 
세례자 요한 역시
주님께 매어있고 부모에 매여 있었기에 훌륭한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쓰고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즈카리야입니다.
 
아마 세례자 요한은 이런 관계에 매어있음을 통해서
자신의 사명과 거처를 분명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새삼 공동체 내 관계에 매어있음을 떠나서는
사명이나 거처의 확인도 불가능함을 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의 사명과 하느님의 거처를,
공동체에 은혜로이 매어있음을 새롭게 확인하면서
구원을 체험하는 우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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