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분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23 조회수750 추천수5 반대(0) 신고
 

-아래로부터 영성.-

분노를 어떻게 다루어야하나?


비탄이, 

이루지 못한 소망에 대한 수동적 반응이라면,

분노는, 

오히려 능동적 반응이다.


분노는 악령과 동일시 할 수 있으며

가장 격렬한 욕정이다.


자기가 상처를 준 사람에게 혹은

자신이 상처를 받았다고 믿는 그 사람에 대해

영혼의 민감한 부분이 흥분하는 것이다.


분노는 쉴 새 없이 사람의 영혼을 자극하고

무엇보다도 기도시간에 의식적으로 파고든다.


이때 그 사람은 자기에게 불의를 행한 사람의

얼굴을 눈앞에 떠 올린다.


대개는 그 때문에 식욕도 떨어지고

몸이 약해진다. 그런 사람은 안색이 창백해지고

몸속에서 맹수나 무서운 짐승들의 공격을 당하는

장면으로 점점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된다.


교부 에바그리우스는

분노를 엄밀히 분석했다.

“분노는 단지 공격만이 아니다.

무릇 공격은 적극적 의미가 있다.


분노는 제어되지 못한 공격이다.

분노는 사람이 분명히 생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고

공격이 사람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분노는 기도하는 것을 방해할 뿐 아니라

식욕을 앗아갈 수도 있다.


분노로 말미암아 무의식적인 것이

점점 더 나쁘게 스며들어 꿈을 꾸게 할 수도 있다.


분노는 사람을 병들게 한다.

분노 속에서 사람은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거리를 두지 않는다. 분노는 어디로나 따라다닐 만큼

큰 힘을 부린다.


기도 중에서도, 식사 중에도, 꿈속에서도,

어디에서도 사람을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는다.

마치 신들린 상태와 같다.


분노의 악령이 사람의 영혼을 잡아먹는다.

오늘 날 암이 종종 심리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는 심리학에서 이것이 확인되고 있다.


누군가가 끊임없이 모든 것을 속으로 곱씹다 보면

언젠가는 육신에 반응이 나타나고 육신이 그야말로

파 먹히는 것이다.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오늘의 묵상:

분노를 품어보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별로 실감이 없을 것이지만,


실제로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분노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오늘의 글이 상당한 공감을 이루면서

‘그래, 참으로 분노는 제어되지 못하는 공격이야!’하면서

그때의 일을 생각하게 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분노를 일으키지 말아야 하지만

일단 분노의 끝자락이 마음속에 파고들면 자기의식으로도

어쩔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시간이 약이라 하고 기다리면 낫겠지 하지만

존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뿐 아니라 몸을 헤치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을 조금 두면서

분노를 조금씩 수그러들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상대방을 죄의 죽음에서 건져주어야 하고,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위령기도’를 받치면서 자기의 분노를 수그러들게 해야 합니다.


인간은 참으로 허약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받치지 않으면 도저히 그 분노의 구렁텅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분노에서 벗어나야 하는 첫째 이유는

분노의 악령에서 벗어나 자기를 온전히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그 형제의 불쌍한 영혼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희들이 분노를 일으키는 일이 없게 하여주시고


분노를 일으키게 되었다 하더라도

제 빨리 그 분노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