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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잘못된 선택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22 조회수453 추천수8 반대(0) 신고
그때에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오 16:13-19)
 
<예루살렘 비지니스 컨살턴트(the Jerusalem Business Consultants)> 지에서 예수님께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우리는 당신의 간부직 후보들의 이력서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적합한 사람이 없으니 계속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당신께서 베드로를 조직의 수장(首長)으로 뽑은 것은 잘못된 선택입니다. 그는 너무나 성급한 판단을 합니다.(루카 22:33; 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하기 직전에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야고보와 요한은 힘을 모으지 못했고 너무나 다혈질적이었습니다. (마태오 20: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루카 9: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토마스는 모임에 빠졌습니다.(요한 20: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가장 유망한 수장 후보는 유다 이스카리옷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선택하신 사실은 하느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신 것을 생각나게 한다. (1사무엘 16:1, 7;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하고만 있을 셈이냐? 나는 이미 사울을 이스라엘의 임금 자리에서 밀어냈다. 그러니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그러나 예수님은 옥석을 가려내시듯 베드로를 알아보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죽은 사람들의 명단만 내어 놓았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모두 죽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만이 살아 있는 사람을 말하였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테오도르의 몹수에스티아(Theodore of Mopsuestia, 350 – 428)가 말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너는 반석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와 같은 진실한 고백과 믿음 위에 당신의 교회를 지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런 고백과 믿음이 바로 하늘 나라의 열쇠”이다. 옛날의 열쇠는 크고 무거워서 어깨에 메고 다녔다.(이사야 22;22;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그러나 오늘날의 열쇠는 아주 작다.
하늘나라에 가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로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 즉 예수님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살아계시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모든 곳에 계시다고 믿는 것이다. 나그네나 죄인이나 제3자의 눈에는 예수님이 잘 보인다. 열쇠는 닫는 데에도 쓰이지만 여는 데에도 쓰인다. 자신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먼저 활짝 열어야 한다.
크리소스토모 성인이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에게 그런 질문을 하신 것이 아니라 여론 조사를 하시듯 ‘사람들이 사람의 아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여론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종교 지도자들의 불순한 동기에서 나온 악의보다는 더 나았습니다.” 종교 지도자들과 후계자들은 평생을 무거운 돌로 굳게 닫혀진 예수님의 무덤만 보았다.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그러하다. 복음은 “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에수님께서는 성자(聖者)로서 말씀하셨지만 사회 평론가나 언론인이 아니셨다. 무덤 앞에 놓인 무거운 돌은 과거를 말한다. 우리는 과거라는 무거운 돌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 왔다. 우리는 현재를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래된 것으로 맞이하고 있다. 과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무덤에서 돌이 치워져야 한다. 베드로처럼 조금이라도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동안만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
구원과 부활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구원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하고 부활은 새로이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마크 트웨인이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에게 숭고하고 선한 마음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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