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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사악이 태어나다(웃음, 기쁨, 은혜, 진리교회)(창세기21,1~34)/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24 조회수472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8년 5월24일 창세기21장

창세기 21장에서, 사라에게서 이사악이 태어나자

하갈과 이스마엘이 사라와 이사악을 박해하기 때문에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청하여 하갈을 내보내는데

하갈도 광야에서 울부짖고 기도를 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주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 과정을 갈라디야서 4,21~31절에 해설이 잘 나옵니다.

 

 사라와 이사악은 영의 자녀이며 천상 예루살렘에 속하고,

은혜와 진리교회를 상징하며

하갈과 이스마엘은 광야의 율법교회를 상징하며 지상 예루살렘을 상징하고,

아비멜렉(이방인)은 세상을 상징하기 때문에

아비멜렉이 야훼 하느님이 함께 하는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는 과정이 나오고,

영과 육의 싸움이 일어나기 때문에 하갈과 이스마엘이 갈라져 나가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서도 영과 육의 싸움이 일어나며 갈라져 나가지만,

하느님은 이사악도 사랑하고 하갈과 이스마엘도 사랑하고

세상의 왕인 아비멜렉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45에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햇빛을 주시고

의로운 사람이나

롭지 못한 사람에게나 비(성령의 비)를 내려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문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질그릇인 우리들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사악이 태어나는 것은

이사야서 54,1에 아기 못 낳는 여인이 아기 낳는 여인보다 많다는 것은

말씀 성취가 이뤄지는 것이며

말씀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자녀로 태어나는 숫자가 적다는 것입니다.

 

이사악은 예수님의 예표(예형,그림자)이며 실체는 예수님이십니다

이사악은 장작을 지고

모리야산으로 올라가서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치게 되었지만

이사악 대신에

가시덤불에 뿔이 걸려 있는 어린양이 대신 번제물로 바쳐진 것은 예표이며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는 갈바리야산에 십자가를 지고 가셔서

난받고 죽고 부활하여 구원완성과 천국완성을 시키는 것이 실체이며

이사악은 웃음, 기쁨이라는 뜻이며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과정은 창세기 22장에서 예화를 들어 자세히 설명이 나옵니다.

 

이사악이 태어나다
 
 
이사악(웃음, 기쁨, 은혜, 진리교회)이 태어나다.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이사악이 태어났다는 말은
영의 자녀이며 말씀의 자녀이며 언약의 자녀이며
말씀의 자녀인 이사악이 태어난 것인데

요한복음 1장에서

과거도 계시고 현재도 계시고 미래도 계시는 호로고스인 말씀과

관계를 맺을 때 생명이 나오며 이 생명은 빛으로 나타나는데

이 빛은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열매로 나타나는데

이사악이라는 말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사랑의 열매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느님 말씀과 관계를 맺어 살아가게 되면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속성이며 말씀의 속성인 사랑과 기쁨과 평화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느님의 복을 받아 이사악인 기쁨을 낳는 것입니다.

가정은 건물이나 집이 아니고 어머니와 부인이 가정인 것입니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여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사악이 함께 하는 것이

성가정의 예표이고

 

신약에 와서 하느님인 예수님을 가운데 모시고

성모님과 성요셉이 함께 하는 것이 지상에서의 성가정이며

우리들도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자녀들이 하느님을 모시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성가정이 되고 가정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1 주님(야훼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해 주시니,
2 사라가 임신하여,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일러 주신 바로 그때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3 아브라함은 사라가 자기에게 낳아 준 아들의 이름을 이사악이라 하였다.
4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자기 아들 이사악이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세례 예표)를 베풀었다.
5 아브라함에게서 아들 이사악이 태어났을 때, 그의 나이는 백(요한복음 차원의 영의 자녀를 상징함) 살이었다.
6 사라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웃음을 가져다주셨구나. 이 소식을 듣는 이마다 나한테 기쁘게 웃어 주겠지.”
7 그리고 또 말하였다. “사라가 자식들에게 젖을 먹이리라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감히 말할 수 있었으랴? 그렇지만 내가 늙은 그에게 아들을 낳아 주지 않았는가!”
 
 

하가르와 이스마엘
 
하가르와 이스마엘은 광야 교회이며 율법교회에 있기 때문에
즉 혈통으로 태어난 육의 자녀이며 육에 있기 때문에
영의 자녀들을 괴롭히는 것은
이스마엘 안에 있는 사탄 마귀의 조정을 받아서 박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형제 자매들의 결점을 판단하며 심판을 하는 것은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급적으로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라와 이사악을 심판하며 사라를 괴롭히고 싸우며 미워하기 때문에
천상 예루살렘인 사라와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형제 자매들의 결점을 보고 심판하고 싸우고 질투하고
미워하면 내가 광야교회에 속하기 때문에
하루빨리 출애굽하여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사악이 머물고 있는
천상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21에 형제에게 화내는 자는 살인하는 자이며

형제더러 바보 멍청이라고 하면 불붙는 지옥에 간다고 하는 이유는

내안에서 분노의 마귀,

미움의 마귀, 시기 질투마귀가 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말씀으로 살아가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님으로 맞아드리는 것이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예수님께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광야에 있을 때는 시기, 질투, 싸움 심판이 오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사탄 마귀의 종이 되며

사랑과 기쁨과 평화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느님의 종들이며 자녀들이기 때문에

매일 매일 내가 어디에 해당하는가 묵상합시다.

 
 
8 아기가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다. 이사악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9 그런데 사라는 이집트 여자 하가르가 아브라함에게 낳아 준 아들(육의 자녀 상징)이 자기 아들 이사악(영의 자녀 상징)과 함께 노는 것을 보고,
10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저 여종과 그 아들(육의 자녀, 식구)을
내쫓으세요.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영의 자녀)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
11 그 아들도 자기 아들이므로 아브라함에게는 이 일이 무척이나 언짢았다.
1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와 네 여종 때문에 언짢아하지 마라. 사라가 너에게 말하는 대로 다 들어 주어라.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13 그러나 그 여종의 아들도 네 자식이니, 내가 그도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
14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빵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져다 하가르에게 주어 어깨에 메게 하고는, 그를 아기와 함께 내보냈다. 길을 나선 하가르는 브에르 세바 광야에서 헤매게 되었다.
 
15
가죽 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그 여자는 아기를 덤불(선악과나무)
밑으로 내던져 버리고는,
 
16
활 한 바탕 거리만큼 걸어가서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았다. ‘아기가 죽어 가는 꼴을 어찌 보랴!’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그는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기도).
 
17
하느님께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래서 하느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가르를 부르며 말하였다. “하가르야, 어찌 된 일이냐?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저기에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18
일어나 가서 아이를 들어 올려 네 손으로 꼭 붙들어라. 내가 그를 큰 민족(육의 자녀)으로 만들어 주겠다.”
 
19
그런 다음 하느님께서 하가르의 눈을 열어 주시니, 그가 우물을 보게 되었다. 그는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우고 아이에게 물을 먹였다.
 
20
하느님께서는 그 아이와 함께 계셨다. 그는 자라서 광야에 살며 활잡이가 되었다.
 
21
그는 파란 광야에서 살았는데,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이집트 땅에서 아내(육의 여인)를 얻어 주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계약
 
 
이방인의 왕인 아비멜렉이
아브라함과 사라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꿈을 통하여 알게 된
아비멜렉이 복을 받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교회 안에 신부님들과 하느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교회와 신부님을 떠나는 것이
하갈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떠나서
광야에서 죽을 고생을 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교회와 말씀을 떠날 때는 수난과 고통이 따르는
구약의 십자가 사건이 생기기 때문에
교회와 말씀을 떠나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의 계시를 열어주시고

창세기 22장에서 예화를 들어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사인데

로마서 10,17에

믿음은 들음으로 들음은 하느님 말씀으로 온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 세가지 구원의 길을 어디를 택해서 갈것인가?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느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써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었지만

하가르와 이스마엘은 율법과 광야교회에 있기 때문에 믿음이 없어서

아브라함을 떠난 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며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믿음이 부족하여

하느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지 못하여 고난을 받는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 믿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들도 하루에 몇 번씩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사악의 믿음에 있는가 하면

하갈과 이스마엘 믿음으로 갈 수도 있고

또한 아비멜렉왕의 믿음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말씀 붙잡고 기도하고 살아갑시다.

 

22 그때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 장수인 피콜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그대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함께 계시는구려.
23 그러니 이제 그대는 나와 내 자식들과 내 후손들을 속이지 않고, 오히려 내가 그대에게 호의를 베푼 것처럼, 나와 그리고 그대가 나그네살이하는 이 땅을 그렇게 대해 줄 것을 여기에서 하느님을 두고 나에게 맹세해 주시오.”
24 아브라함은 “맹세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5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빼앗은 우물 때문에 아비멜렉에게 따졌다.
26 아비멜렉이 대답하였다. “누가 그런 짓을 하였는지 나는 모르오. 그대도 나에게 말해 준 적이 없지 않소? 나는 오늘까지 그런 말을 들어 보지 못하였소.”
27 그래서 아브라함이 소들과 양들을 데려다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은 계약을 맺었다.
28 아브라함이 양 떼에서 어린 암양 일곱 마리를 따로 떼어 놓자,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물었다. “어린 암양 일곱 마리를 따로 떼어 놓은 까닭이 무엇이오?”
30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이 어린 암양 일곱 마리를 내 손에서 받으시고, 내가 이 우물을 팠다는 사실에 대하여 증인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31 이렇게 그 두 사람이 거기에서 맹세를 했다고 하여, 그곳을 브에르 세바라 하였다.
32
그들이 이렇게 브에르 세바(맹세의 샘, 일곱 샘)에서 계약을 맺은
다음,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 장수인 피콜은 일어나 필리스티아인들의 땅으로 돌아갔다.
33 아브라함은 브에르 세바에 에셀나무(나무,작은 술)를 심고, 그곳에서 영원한 하느님이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
34
아브라함은 오랫동안 필리스티아인들의 땅에서 나그네살이 하였다(히브리서13,1. 창세기 18,1).
 
히브리서 5,5에서 바오로 사도는
복음으로 아들을 낳았다고 하시는 것은
말씀으로 말씀의 자녀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의 길을 이사악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통해서,
또 아비멜렉왕을 통해서, 구원의 길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악은 구원을 받고
이스마엘과 아비멜렉은 구원을 못 받았다고 보는 것은
율법으로 육안으로 보는 것이고,
사랑으로 볼 때는
아브라함이 만난 하느님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관계를 맺을 때
구원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느님의 권한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와 관계를 맺고 신앙생활을 할 때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과 관계를 맺을 때
말씀의 자녀들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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