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1 연중 제28주간 화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10-10 조회수432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할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5,1-6
형제 여러분,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2 , 나 바오로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할례를 받는다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3 할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다시 분명히 말합니다.
그들은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4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와 인연이 끊겼습니다.
여러분은 은총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5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믿음으로 의로워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6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

5장은 앞부분과 연결하는 문장이나 접속사 없이 갑자기 시작된다. 다만 자유라는 말을 4.31자유인이라는 말에 착안하여 선택한 듯하다. “자유를 위해라는 말을 문장의 맨 앞에 놓아 강조함으로써 편지의 교의적 메시지를 요약한다. , 자유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구원사업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 자유는 율법의 종살이로부터 자유요 율법의 저주로부터의 자유다.

 

굳건히 서라는 것은 종살이의 멍에로 이끌려는 모든 노력에 대항하여 단호하고 확고하게 자유 안에 버티라는 호소. “멍에는 율법주의적 규정들을 지칭한다.

 

2

바오로 자신의 사독적 권위를 최대한 강하게 표현한다.

 

갈라디아인들이 율법을 준수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따름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도 이제 와서 할례를 받는다면 율법의 지배에서 그들을 자유롭게한 그리스도의 구원행위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이제 그들은 그리스도와 자유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율법과 종살이를 선택할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3

여기서 이야기되는 모든 것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공적 증인으로서의 힘을 가진다는 의미다.

 

할례받은 자들이 율법규정 전체를 지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은 적대자들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적대자들은 할례나 전례의 규정을 요구했지만 그밖의 계명들을 강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에 바오로는 유다인의 표지인 할례를 받으면 모든 생활방식을 율법규정에 맞추어야 하는데 이는 복음의 진실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4

다시 한번 그리스도율법이라는 배타적인 두 원칙을 대조시키면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과 율법안에서 의화를 추구하는 것이 양립할 수 없음을 일깨운다. 아마도 갈라디아에 침투한 바오로의 적대자들은 율법 안에서 의화를 추구하는 것이 은총에서 떨어져 나가거나 그리스도를 버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은총과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외에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여겼던것 같다.

 

5

2,16-213.1-4.11의 논지를 요약한다. , 아무도 율법을 통해서는 의롭게 될 수 없고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끈으로서 생명을 주는 힘을 가진 성령을 지칭한다.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율법을 통해라는 말과 대조된다. 성령이 주시는 것과 활동하시는 것은 오로지 믿음 안에서만 받을 수 있고 알 수 있다. “의로움의 희망에서 의로움의라는 속격은 희망의 내용을 가리키거나 희망과 동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어떤 경우는 의로움의 희망기다린다는 것은 인간의 충만한 의로움이 종말론적 미래에 실현될 것임을 암시한다.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한 그리스도를 믿고 따름으로써 또한 세례를 통해서 그분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한다. 이 관계가 구원의 결정적 토대이기 때문에 할례나 비할례는 무의미하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할례를 반대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그것은 2절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의화의 원칙은 그리스도 자신의 모범을 따라 사랑으로써 실천하는 믿음이다. 믿음은 행동을 수반하고 사랑의 실천을 통해 그 완전한 의미가 드러난다. 이 때문에 바오로는 계속해서 개종자들에게 온갖 종류의 선한 행위들을 실천하도록 권고했다.

 

 

 

 

 

 

 

 

복음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37-41
그때에 37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38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39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41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37

바리사이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다는 기사가 7,36; 14.1에도 있다.

 

38

유다인들은 식사 전에 반드시 손을 씻는 법인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손을 씻지 않은 채 식사했다는 기사가 마르 7,1-5에 있다.

 

39

손 씻는 일에서 잔과 접시를 씻는 일로 바뀌는 것으로 미루어 38절과 39절은 본디 동떨어진 요소임을 알 수 있다. 39-41절은 루카가 어록을 많이 고친 것 같다. 오히려 그 병행문 마태 23,25-26이 어록의 문구는 아닐지언정 적어도 그 뜻만은 더 잘 보존한 것 같다. “불행하도다. 너희 율사와 바리사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닦지만 그것들 속에는 착취와 무절제가 가득 차 있으니,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닦아라. 그러면 그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이 말씀의 뜻인즉, 바리사이들이 정결법을 따라 먹고 마시는 그릇은 잘 닦지만, 그릇에 담긴 음식으로 말하면 무절제하게 착취한 것이다. 실은 음식물을 정당하게 취득하는 일이 정결법을 따라 그릇을 씻는 일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40

하느님은 겉과 속, 곧 만물을 창조하셨다.

 

41

잔과 접시에 담긴 음식으로 자선을 베풀라는 뜻인데, 루카는 자주 자선을 권장한다. 루카 특수자료 12.33; 16.9; 19.8를 보라.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