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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미사의 소프트웨어 I[제 50회]/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님.
작성자양춘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04 조회수451 추천수6 반대(0) 신고

 

 

미사의 소프트웨어 I[제 50회]/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님.


- 신앙 고백.-

이제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해석한 후, 하게 되는 신앙 고백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가 이것만은 믿어야 가톨릭 신앙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기본 신조들이 담겨있는 것이‘사도신경’입니다.

성경이 교회의 원리라면, 사도신경은 교회의 거룩한 체험이며 해석입니다.

원리만 중시하면 중구난방이 되기 때문에, 거룩한 전통은 울타리가 됩니다.


이 기도문을 공부할 때, 어떤 형태로든지 제가 이것저것 설명하면서 그 안에 담긴 뜻을 풀이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기도를 그런 방식으로 해설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아름답고 멋진 경치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듯이 기도를 구경하거나 방관하는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공동체의 기도인 사도신경은 그렇게 배워서 바칠 수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사도신경을 올바르게 바치려면 사도신경을 어떻게 내 삶의 신앙고백으로 만들 것인지, 그리고 사도신경으로 나는 왜 신앙고백을 못하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사도들로부터 내려오는 신앙고백을 내 신앙고백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깨달음이 우선 필요합니다.


▶ 사도신경을 일상기도로 바칠 때 ◀  

사도신경은 가톨릭교회에서 검증된 신앙의 표준 내용입니다.         

그러나 성부-성자-성령,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셨고, 내 죄악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생 하셨고, 성령께서 우리 일상을 주관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믿음을, 단편교리로 아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쭙잖게 주워섬기는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 정의나 심판은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배워 똑똑하고 아는 게 많아도 유한한 인간이기 때문에 대부분 하느님을 어떤 면에서 세속적 선입관을 가지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신경을 바칠 때 내 안에 숨어있는 세속적인 모든 고정 관념이나 나쁜 마음을,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시며 심판하신다는 사도신경의 기능으로 정화해야 합니다.

내 인격과 삶이 사도신경을 들락날락 하면서 내가 신앙적으로 정돈되고 세상의 여러 유혹이 식별될 때, 사도신경이 지니고 있는 영적인 장치들이 내 안에서 비로소 작동합니다.


그래서 걸핏하면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잘못된 길을 고집하곤 하는 우리에게 사도신경은 신앙의 틀을 잡아 주는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신경은 내 삶의 기준이 됩니다.

복잡한 현실에서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해 믿는다고 고백하는 내용과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쉽습니다.

살다가 보면 여러 가지 곤란한 일들이 생겨서 자기 삶이 꼬이고 이것저것 얽히고 설켜서 낙담하고 기운이 빠져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좌절하는 상황이 되거나 자기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갑자기 쫄딱 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예상 밖의 시련을 당하게 되면 자신이 잘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은 자비하신데,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을 하시나?”하고 하느님께 그 탓을 돌립니다.

또 반대로 다른 사람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어도“정의로운 하느님께서 어떻게 저런 죄악을 용납하시나?”하면서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이나 정의가 무엇인지 알쏭달쏭해지고, 하느님의 자비와 심판을 헛갈리게 됩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삶의 기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변덕스러운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영적인 일관성이 없는 우리들입니다.

따라서 변해야할 대상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들이라는 사실도 사도신경 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발견할 수 있어야합니다.

스스로 자기신앙을 키워갈 생각은 하지 않고, 많은 죄악 앞에서 절망하는 우리의 모습을 극복하려면 일상에서 제대로 된‘신앙의 잣대’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사도신경의 두 번째 기능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신경 안에 담긴 신앙신조들이 내 일상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깨달아야합니다.

그래야 사도신경이 우리 일상의 길잡이 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고쳐야할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삶의 기준들이 세속화 되어 있는데도 사도신경으로 바로 잡아 거룩하게 변화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도신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믿는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저 입으로만 믿는다고 앵무새처럼 말하면서 자기 신앙을 점검도 못하고 자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도 모르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도 못 느낀다면 사도신경은 내 삶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으로 전락해 버리게 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하면서 첫 부분을 고백할 때에는 내가 여러 우상에게 기웃거렸던 모습-금전이나 미신, 휴거종말론, 진화론, 뉴에이지 풍의 우주 생성 가설 등의 유혹 등-을 생각하면서, 하느님에 대한 확신과 신앙지식으로 그것들을 다 뿌리치며 창조주 성부를 믿고 있는지 스스로 검증하여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나를 포함한 우주 만물의 생성부터 소멸, 영원성 부여까지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하는 부분이 되면 내가 정말 주변의 개신교 신자들의 집요한 공격에 맞서 성모님을 수호하고 있는지, 예수님의 고난과 처참한 십자가 상 죽음이 바로 내 죄악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지, 또 그분께서 부활하셔서 최후의 심판자로 오신다는 것을 믿으면서 살고 있는지 머릿속에서 일상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뒷부분에 가면 내가 정말 성령을 믿어서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통하여 내 죄가 용서받고 내가 예수님을 따라 온전히 부활하여 영원히 천주 성삼과 함께 산다는 것을 믿는 다고 말해도 낯간지럽지는 않은지 성찰해야합니다.

그냥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큰 소리로 ‘믿으며’하고 외친다고 사도신경을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사도신경을 일상기도로 바칠 때, 어떤 기능이 내 삶에서 작용해야 하느냐?”하는 문제와“사도신경이 지니고 있는 영적인 자양분을 어떻게 섭취해야 하는가?”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따라서 사도신경을 얼마나 제대로 바치는지 판단하는 근거는 사도신경이 지니고 있는 규범과 기능을 얼마나 내 일상에 작동시키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이 되어 있습니다............♣†


         [51회: 미사 중의 사도신경으로 이어 집니다.] 

     

          

  천주교 서울 대교구 중림동[약현]성당 주임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


 

 

 

          
                [주를 향한 나의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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