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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환대의 영성" --- 2007.7.22 연중 제16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25 조회수451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7.22 연중 제16주일                                            
창세18,1-10ㄴ 콜로1,24-28 루카10,38-42

                                                                
 
 
"환대의 영성"
 


새벽 일어나자마자 수도원 정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세상 향해 활짝 열린 대문과 더불어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는 불암산을 보는 순간
다음 서두로 시작되는 몇 해 전 썼던 글이 생각났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는/아버지 산 앞에 서면
  저절로 경건 겸허해져/모자를 벗는다.”

전통적으로 수도원을 ‘하느님의 집’이라 일컫습니다.

세상 향해 활짝 열린 수도원 대문과,
모두를 향해 가슴 활짝 열고 있는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
우리 모두를 향한 하느님의 환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어, 수도 형제들과 더불어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을
마음 활짝 열고 환대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찬미와 감사의 노래를 불러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찬미와 감사 기도로 마음 활짝 열고
하느님을 환대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할 것이다.”

그 유명한 베네딕도 규칙 제53장
‘손님들을 받아들임에 대하여’라는 항목의 첫째 구절입니다.
 
비단 미사나 성무일도의 전례에서뿐 아니라
수도원을 찾는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하는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여러분 역시
여러분의 가정을 찾는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해야 합니다.

환대의 영성, 얼마나 심오하고 신비로운지요!

바로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는 환대, 이게 건강한 신비주의입니다.

그리스도로 격상된 손님들,
바로 인간 존엄과 품위의 극치를 상징합니다.

여러분은 따뜻한 환대를 받은 체험이 있으신지요?

누군가를 온 정성을 다해 환대 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아마 이런 체험 있으시다면
결코 그 감미로운 추억 잊지 못할 것입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저에게 늘 생생히 남아있는 환대 받은 체험이 있습니다.

어느 수녀원을 방문했을 때
저를 위해 잘 정돈된 방을 배정 받는 순간
마치 왕자라도 된 듯 마음 흐뭇했던 추억입니다.
 
또 하나는 어는 분을 방문했을 때
온 몸과 온 마음으로 환대해 주던 그 꽃 같은 환한 모습입니다.
 
환대는 꽃처럼 하는 것입니다.
활짝 핀 꽃들 그대로 마음 활짝 열고
꽃처럼 손님들을 맞이하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바로 오늘 1독서 창세기의 아브라함,
복음의 마르타와 마리아가 그렇습니다.

아브라함, 손님들에 대한 극진한 환대를 통해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아마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 하느님처럼 대했던 아브라함 같습니다.
 
환대 소홀로 얼마나 많은 경우들
하느님은 그냥 스쳐 지나갔겠는 지요!
 
극진하고 겸손한 환대로 하느님을 만났고
큰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입니다.

복음의 마르타와 마리아의 주님 환대,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 정성도 막상막하입니다.
 
그러나 환대의 방법이 달랐습니다.
 
새삼 환대에도 분별의 지혜가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마르타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하며 자기식대로 환대했지만,
마리아는 달랐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렸고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님의 말씀을 경청하면서 주님을 환대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주님과 깊은 일치를 체험했습니다.
 
주님을 환대했으면서도 마르타는 주님을 마음으로 만나지 못했고,
마리아는 마음 깊이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이 배고파 식사하시러 마르타, 마리아 자매 집에 들렀겠습니까?

아닙니다.
 
전교 활동에 지치고 외로워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내 말을 들어 줄 사랑하는 자매를 찾은 예수님이지요.
 
마찬가지, 여기 수도원을 찾는 많은 이들,
수사님들에게 먹을 것 대접 받으러 옵니까?
 
아닙니다.
고요한 수도원 성전에서 하느님의 환대를 통해
그리스도의 평화와 위로를 받으러 옵니다.

저 또한 오래 전에 이와 유사한 씁쓸한 추억이 있습니다.
 
모처럼 잔뜩 마음 나눌 기대에 부풀어
어느 고마운 자매님 댁을 찾았습니다.
 
마르타처럼 반갑게 저를 맞이한 자매님
도착 즉시 음식 만들기에 바빴고 저는 무료하게 앉아 기다렸습니다.
 
잘 준비된 밥상이었지만 이야기는 거의 못 나눴고
입맛도 없어 조금만 들고 나왔습니다.
 
이때의 허탈했던 심정 지금도 선명합니다.

반가운 손님은 빈손으로 와도 반갑고,
마음을 나누러 좋은 이를 찾아 나설 때는
빈손으로도 맞이해줘도 기쁩니다.
 
마음 통해 하나 되면 안 먹어도 배부르고
마음 통하지 않으면 먹어도 소화도 안 되고 마음은 배고픕니다.
 
마음 통하는 좋은 이는 그 자체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께 마리아는 그 자체가 하느님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두 분들 이해와 공감의  만남 중에 내면은 흡족히 채워졌을 것입니다.

마르타의 투정에 예수님의 말씀, 우리의 영원한 화두 같은 말씀입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실상 필요한 한 가지, 주님과 생명의 만남입니다.
 
이것 하나면 족합니다.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습니다.
 
실상 필요한 한 것 한 분,
그리스도와 일치된 삶을 사는 바오로
고난 중에도 기뻐하며 온전히 신도들을 위해,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를 향한 다음 바오로의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여러분을 타이르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일 때
비로소 의미 충만한 삶입니다.
 
이런 그리스도 아무도 우리에게서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인정받고 이해받고자 하는 대화의 욕구 인간의 근본적 욕구입니다.
 
결코 육신의 충족만으로 채워지지 않은 영혼의 배고픔입니다.
 
하여 주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경청했던 마리아처럼,
비단 전례시간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우리를 찾는 이들을 그리스도로 여겨
이들의 마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보다
더 좋은 환대는 없을 것입니다.

환대의 영성, 참으로 심오하고 신비롭습니다.

환대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환대의 렌즈로 보면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혜로움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주님을 찾는 우리를 환대해주시는 주님이시며,
동시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환대하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의 우리들 환대와 우리의 주님 환대가 만나는 은총의 자리입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환대하는 우리를
님은 당신 말씀과 성체의 환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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