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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낮아짐과 높아짐-판관기44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10 조회수451 추천수6 반대(0) 신고

낮아짐과 높아짐-판관기44

 <생명의 말씀>
 이 소식이 요담에게 전해지나 그는 그리짐산 꼭대기에 가 서서 소리 높이 외쳤다. "세겜의 어른들은 내 말을 들으시오. 그래야 하느님도 여러분의 말을 들어 주실 것이오. 하루는 나무들이 모여 와서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세우기로 하고 올리브나무에게 청을 드려 보았소. '우리 왕이 되어 주게나!' 그러나 올리브나무는 사양을 했소. '내 기름은 모든 신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것, 그런데 나 어찌 기름을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 보며 으스대겠는가?' 그래서 나무들은 무화과나무에게 청을 드려 보았소. '자네가 와서 우리 왕이 되어 주게나.' 그러나 무화과나무도 사양을 했소. '나 어찌 이 훌륭한 과일을 내지 않고, 나 어찌 이 달콤한 맛을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 보며 으스대겠는가?' 그래서 나무들은 포도나무에게 청을 드려 보았소. '자네가 와서 우리 왕이 되어 주게나.' 그러나 포도나무도 사양을 했소. '내 술은 모든 신과 사람을 흥겹게 해 주는 것, 그런데 나 어찌 이 술을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 보며 으스대겠는가?' 그래서 모든 나무는 가시나무에게 청을 드려 보았소. '자네가 와서 우리 왕이 되어 주게나.' 그러자 가시나무는 그 나무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소! '너희가 정말로 나를 왕으로 모시려는가? 정녕 그렇거든 와서 내 그늘 아래 숨어라. 그러지 않았다가는 이 가시덤불이 불을 뿜어 레바논의 송백까지 삼켜 버릴 것이다 (판관기 9:7-15)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요담은 기드온의 막내 아들입니다. 아비멜렉이 70 형제를 한 자리에서 처죽이는데 가까스로 몸을 피해서 살아남은 아들이지요. 요담이 세겜의 어른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옹립했다는 말을 듣고는 아주 기가 막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리짐산 꼭대기에 가서 나무에 대한 비유를 들며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한 아비멜렉과 그런 사람을 왕으로 옹립한 세겜 사람들을 비판합니다.

요담의 비유에 등장하는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모두 자기만의 고유 달란트와 직분을 생각하고 왕이 되었을 경우에 자기만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권좌에 오르기를 사양한 의로운 사람을 뜻합니다. 반면에 가시나무는 권좌에 오르기만 한다면 뭐든지 내 맘대로 하겠고 모든 이는 내 밑으로 집합시키겠다는 지배욕과 야욕을 드러내는 사람을 뜻합니다.

권력을 얻어서 사람들을 다스리고 사람들에게 군림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을 때 세상은 혼란스럽고 그 어디에서도 정의와 정도를 찾기가 참으로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나서려 하기보다는 묵묵히 자기 역할에 충실하려는 사람이 많을 때 세상이 질서와 안정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물론 다스리고 군림하는 사람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역할에 대한 열망이 가시나무처럼 다른이를 지배하고 싶은 자기 욕망에서 시발(始發)한 것이라면 정말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올리브나무가 좋은 기름을 내는 것처럼, 무화과나무가 좋은 과일을 내는 것처럼, 포도나무가 좋은 술을 내는 것처럼 가지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의 시련과 고통의 학교에서 많은 단련을 받은 사람이 이런 지도자가 되겠지요. 사무엘 상하권에서 이스라엘의 두번째 왕으로 준비되는 다윗에게서 이 전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섬김으로서의 다스림의 원리를 체득한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판관기 시대의 이스라엘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비정상적 방법으로 자기를 높여서 왕이 되고자 했던 사람 아비멜렉이 있었을 뿐입니다. 당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직접 다스리신다는 믿음이 있었던 사회에서 자기가 직접 왕이 되겠다고 한 것은 아비멜렉과 그 추종자들이 하느님의 역할을 넘봤고 하느님을 이스라엘에서 몰아내려고 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개인적 신앙 안에서 혹은 공동체 안에서 내가 자꾸 높아지려고만 하면 나의 내면과 주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하느님을 당신 스스로를 높이시는 분이 아닌데 하느님을 따른다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높이려고 하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역행하기 때문이지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하느님처럼 되려 했던 것이나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던 것이나 우리 스스로가 하느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스스로 높아지고 잘나보이려고 하는 것 모두는 사실 다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그것도 미천하게 태어나신 후 사형수가 되고 십자가 위의 시체까지 되시기까지 당신 자신을 낮추셨던 예수님을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낮아짐과 높아짐- 신앙을 가진 우리 마음 안에서 시소처럼 움직이며 우리를 괴롭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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