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경 경시대회를 참가한 후에 느낀점을 묵상하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11-26 조회수429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마산교구 성경잔치, 성경 경시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약 3주에 걸쳐서 비록 벼락치기로 공부를 했지만 질적으로 보면 그렇게 벼락치기라고 할 수는 없을 정도로 단기간에 제가 가진 열정을 다 쏟아부었습니다. 사실 이번에 범위가 예언서 전체입니다. 또 예언서는 다른 성경과 달리 시대적인 배경을 잘 이해하지 않으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냥 전체적인 흐름만 이해를 하고자 한다면 통독만 해도 상관없을 것입니다. 

 

시험문제는 일차적으로 성경과 교구에서 편찬한 예상문제집, 은총성경쓰기라고 해서 간단한 말씀일기집 속에 있는 이론적인 내용에서 출제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예상문제집 정도는 삼사 일 정도만 하면 다 숙지하고 그 속에 있는 내용은 완벽하게 암기할 수 있을 정도는 됩니다. 은총성경쓰기 이론적인 내용은 그것도 한 3일 정도만 집중투하하면 어느 정도는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실제 변별력을 좌우하는 것은 성경을 누가 얼마나 꼼꼼히 여러번 잘 읽었는지가 결정한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총 3번 참가했는데 첫 해는 도전골든벨 형식으로, 작년과 올해는 시험 형식으로 치르는 경시대회를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작년에 참가를 해봐서 어떤 형식으로 준비를 하면 되겠다고 어느 정도 감이 와서 준비를 했지만 생각보다는 결과가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인 머리가 있다고 자만한 건 아니지만 이건 머리가 좋다고 해서 되는 시험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머리가 좋다는 게 아닙니다. 달리 표현하면 세상적인 시험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경시대회 시작 전에 성경봉헌식을 마치고 나서 사목국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원래는 성경잔치이지만 시험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성적은 매길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치 천국나라 과거시험장 같은 분위기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작년에와 올해 물론 준비는 적게 했지만 참가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물론 시험이라 좋은 성적은 받고 싶은 것은 사실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참가하게 된 계기는 처음 참가한 해에 제가 올 봄에 올린 글에 나오는 자매님이 참가하셨습니다. 교구성가단체 봉사자로서 말입니다. 그곳에 오실 거라고는 전혀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올린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만약 그때 그 자매님이 참가하지 않으셨더라면 그때 도전 골든벨 형식으로 창원에 있는 문성대학 체육관에서 했기 때문에 저의 참가 모습을 체육관 스탠드에서 내려다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때 마음속으로는 좋은 결과가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보배도 아닌데 저희 본당의 보배라고 천주교 신앙을 가진 초기부터 그렇게 말씀을 해 주셨기 때문에 그래서 더더욱 좋은 결과를 내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날 밤에 잠을 자는데 낮에 있었던 모습을 상상하니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성당의 보배라고 생각해 주시는 자매님 앞에서 중도 탈락된 모습을 보여드려서 그랬습니다. 올 봄에 암 진단을 받으셔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제가 얼마나 신앙 안에서 좋아하는 분이면 54일 구일기도를 하면서 약속대로 묵주 3000단을 봉헌해드렸겠습니까?  실제로는 누나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문자에서만 했습니다. 아무튼 이번에 짧은 기간 열심히 해서 좀 우낀 이야기이지만 저는 결과가 좋게 나와서 누나를 기뻐게 해드리는 게 참가 목적이었습니다. 

 

이번에 참가해서 시험이라는 결과는 좋지 않지만 체험글 부분에서는 장려상 하나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앞전에 올린 글입니다. 호세아 예언자와 고메르의 사랑이야기를 제출했습니다. 이 내용을 통해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베풀어주시는 자비와 사랑을 언급한 것입니다.

 

오늘 집안 일만 아니면 지금 전주교구에서 윤지충 바오로 압송로 길 도보순례를 하고 있는데 그곳에 있어야 할 텐데 낮에 어머니 산소를 다녀와야 되서 이번에 참가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쯤은 싱거랭이라는 곳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할 시간 같습니다. 싱거랭이는 윤지충 복자께서 조반을 먹었던 곳입니다. 

 

이번에 참가하면서 참으로 느끼는 바가 많이 있지만 그중 일부만 공유하고자 합니다. 신앙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시험을 떠나서 먼저 우리는 신앙인이기에 말씀을 자의적이든지 타의적이든지 접하게 됩니다. 일단 미사 때 독서와 복음입니다. 미사에 참례하게 되면 의례적으로 당연히 듣게 됩니다. 설령 따로 말씀을 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귀로 소리로 접하게 됩니다. 말씀은 귀로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자신의 눈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읽어야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하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올해는 문제 풀이를 약 30분간 봉사자께서 해 주셨습니다. 한 문제였습니다. 예례미야서에 나오는 두 광주리 무화과 나무의 환시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집에 와서 다시 성경을 찾아봤습니다. 그리고 진단을 해봤습니다. 왜 그 문제를 틀렸는지 하고 말입니다. 실제 저는 이 부분이 주관식 서술 문제로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마침 이 부분에 대해 은총성경쓰기 책에 이론적인 복음의 의미에 대해 정리를 해 둔 게 있어서 그걸 완전히 암기를 하고 있었던 상황인데도 그 문제를 틀렸습니다.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결론은 성경을 꼼꼼히 보지 않아서 그랬던 것입니다.

 

복음적인 의미와 신학적인 내용은 기계적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정작 말씀 속에 있는 깊은 뜻은 도외시했던 것입니다. 도외시했다기보다는 더 꼼꼼히 읽지 못했던 것입니다. 더 깊은 렉시오디비나를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걸 진단하고 나서 제가 그날 잠시 앞으로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할지에 대해 묵상한 내용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볼 때 그냥 눈으로 종이 위에 있는 활자만 보고 국어책 읽듯이 읽게 되면 어느 정도는 어떤 내용인지 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말씀이 우리의 영혼 겉에만 살짝 묻기만 할 것입니다. 실제로는 이상적인 것은 이 묻은 게 영혼 골수 안으로 스며들어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말씀이 녹아야 될 것입니다. 커피속에 설탕이 녹듯이 말입니다. 그 녹이는 과정이 바로 묵상이 될 것입니다. 묵상을 하지 않으면 절대 말씀은 영혼 속으로 파고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번에 또 다른 문제를 보고서 느낀 게 있습니다. 단순히 말씀의 액면적인 뜻만을 헤아려서 묵상한다면 그저 세상에 있는 책에 있는 좋은 글을 보고 좋은 내용이네 하고 마는 그런 수준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령 복음이라면 복음사가가 그 복음에서 전하고자 하는 전체 메시지를 항상 머릿속에 그리면서 복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사건을 두고서도 그 사건을 바라보는 복음사가의 시각이 다르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하나의 사건을 보고도 복음사가의 눈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무엇을 전달하시려고 하시는지 그 의도를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은 복음사가가 기록한 것을 바탕으로 했지만 그 영감은 성령의 힘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성령 하느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성경은 단순히 문자적인 의미만 바라보면 안 될 것입니다.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고 성경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문맥을 통해서 그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보려고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문자 이면에 숨어 있는 뜻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깊이 봐야 됩니다. 내가 얼마나 깊이 성경을 바라봤는지 그 정도에 비례해서 하느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을 일치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은 절대 저처럼 벼락치기 형식으로 공부를 하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양도 양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꾸준히 일정한 분량으로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봐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 공부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과 함께 호흡을 해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낀 것입니다. 그냥 읽는다고 읽는 게 아니라 같이 호흡을 하지 않으면 그냥 단순히 좋은 말씀을 접한 의미밖에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같이 호흡을 하지 않으면 말씀의 주파수와 파장이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르게 자신에게 하느님의 주파수가 아닌 엉뚱한 주파수로 다가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역시 파장도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보면서도 따로국밥 먹는 것과 같은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읽을 땐 이런 점도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듯합니다. 등산을 할 때는 특히나 처음 가는 길 같은 경우는 전체적으로 먼저 자신이 가고자 하는 산의 목적지가 어디쯤에 있는지 어느 정도는 머리속에 숙지를 한 후에 중간중간 자신의 위치를 점검한다면 산행 중에 일어날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위험을 많이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을 읽을 때 이런 원리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복음사가의 뜻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산행에서 목적지를 잘 보지 못하고 산행로를 벗어나는 것과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성경은 단순히 인간세상의 말처럼 문자적인 의미만 본다면 이런 경우는 부지기수로 많을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동상이몽하면서도 하느님과 함께하고 있다고 착각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입니다. 

 

또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성경은 예를 들어 복음 같은 경우는 2000년 전 예수님이 계셨을 때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이해를 하려면 그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진정한 역사의 교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2000년 전에 있었던 일을 지금의 시각으로 문자 그대로 이해를 하고 만다면 우리는 장님 코끼로 만지기식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신학자와 성경학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성경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도 연구하는 것이겠지만 시대가 바뀌면 성경도 하느님의 말씀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롭게 해석해 이 시대에 맞게 해석해 우리는 그 해석을 또 우리의 신앙이라는 삶에 적용해 나가는 것입니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말씀은 정말 꼼꼼히 이리도 보고 저리도 보고 꼼꼼히 봐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노력을 할 때만이 우리는 활자 속에 숨어 계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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