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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월 27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27 조회수964 추천수12 반대(0) 신고

                 5월 27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마르코 10장 28-31절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여백 예찬>


   한적한 평일 오후, 고궁 안마당을 거닐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겨우 담하나 넘어왔을 뿐인데, 분위기는 완전히 딴판입니다. 시야에 와 닿는 모든 풍경들이 소란스런 바깥세상과는 너무나 대비되기에 어리둥절해집니다.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머나먼 딴 세상에 와있는 착각 속에 빠집니다, 낯선 공간에 익숙해지기 위해 꽤 시간이 요구됩니다.


   ‘텅 빈 충만’이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시간도 천천히 흘러갑니다. 공간도 텅 비어있습니다.


   고궁의 매력은 이렇게 ‘텅 비어있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골 생활에 익숙해서 그런지 도심 속을 걸어가다 보면 그 ‘빽빽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디 한 군데 여백이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옵니다.


   삶에는 어느 정도 여백이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여백과 더불어 우리네 삶은 더욱 풍요로워 집니다. 인생에 어느 정도 결핍도 필요합니다. 결핍 속에 우리 삶은 더 빛나기 마련입니다.


   깃털처럼 가벼워져야, 먼지처럼 작아져야, 구름처럼 흘러갈 수 있습니다. 비본질적 인 것들, 덜 중요한 것들, 부차적인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 차원 높은 삶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비워야, 내려서야, 더 깊은 신앙에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을 옭아매는 갖은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면 그 때부터 하느님의 은총은 가속도가 붙기 시작합니다. 양손 가득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놓게 되면 그 때부터 하느님의 자비는 풍성해지기 시작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적당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버리고, 또 버리고, 완전히 버리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추종, 그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것임을 오늘 복음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름은 결코 정적인 것이 아님을 오늘 복음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 만만치 않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충분히 노력했기에 이쯤이면 됐겠지, 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또 다른 목표치를 설정해주십니다.


   한 차원 높은 목표, 또 다른 새로운 각고의 몸부림이 필요한 목표를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한 곳에 그냥 두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어디론가 데려가십니다. 목숨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속적인 우리의 쇄신과 성장을 원하십니다.


   이러한 변화무쌍한 우리네 인생이기에 가끔은 ‘텅 빈 공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요한 여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영적인 삶,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결코 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삶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잔잔한 물가로만 인도하실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의외로 자주 우리의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나운 폭풍 속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속으로 뛰어들면 큰일 나겠구나,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별 일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때로 우리 삶을 제대로 한번 휘저으십니다. 그래서 완전히 우리 삶이 뒤죽박죽되는 느낌을 받겠지만, 계속 우리를 휘저으시면서 우리를 새 창조하십니다. 우리 안에 새로운 가치를 형성시키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우리의 노력이 자기 비움입니다. 자기 포기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거짓 자아를 내던지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의 권고대로 과감히 버리고 떠나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77번 / 주 천주의 권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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