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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깨어 있으라. (마태복음24장36~44절)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2-11-27 조회수1,540 추천수1 반대(0) 신고

 

 

 

 

깨어 있으라(마태복음2436~44)

 

마태복음24장을 통하여 우리는 계속 마지막 때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마지막이라는 말이 단순히 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이라는 개념은 두 가지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마지막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마치 학교의 졸업이 끝이 아니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작이요 출발입니다.

또한 마지막은 목적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목표가 성취되는 결과로서 마지막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헬라어의 테로스라는 말은 목적이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마지막이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결국 목적과 마지막은 같은 개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마지막에 주님께서 재림하시면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시작이면서또한 역사와 우주에 대한 주님의 계획과 목적이 완성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같이 힘들고 어렵게 살도록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과 교제(交際)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 때문에 하느님과 분리되었고그 결과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게 되었고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면 삶의 어려움을 느끼다가 죽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 때 의도(意圖)하셨던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때가 되었을 때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계획은 일차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 안에 들어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주님 안에서 참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을 통해서는 하느님의 창조 질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교제하고주님 안에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기는 하지만여전히 이 땅에 살면서 고난과 아픔과 괴로움과 슬픔을 경험하고급기야는 죽음을 맛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창조 질서의 완전한 회복은 역사의 마지막에 주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완성됩니다.

그 때는 우리에게 더 이상 아픔이나 슬픔이나 괴로움이나 죽음이 없을 것이고온 우주에 더 이상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는 이사야 11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뛰놀며어린이가 독사(毒蛇굴에 손을 넣어도 해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역사를 보는 시각이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하느님께서 정하신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으로 믿고하느님의 목적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역사의 흐름은 나선(螺線)과 같다고 했습니다나선은 반복되는 것 같지만 어느 정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과 같이 보이지만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마태복음 24장은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재림이 오직 하느님의 권한에 속한 것이어서누구도 그 시기를 알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때인자(人子)가 임하실 것이 때문에항상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고하십니다.

 

1. 주님의 재림의 날과 때는 알 수 없습니다(36)

 

36 “그러나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로지 아버지만 아신다.”

그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그것은 오직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이처럼 재림의 정확한 시기가 비밀로 감추어진 까닭은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항상 깨어 경성(警醒)하게 하기 위함이며주님을 믿지 않은 자들에게는 임박한 하느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 날과 그 때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이잘못된 것임을 교훈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1데살5:2-3) 2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3 사람들이 평화롭다안전하다.” 할 때아기를 밴 여자에게 진통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그들에게 파멸이 닥치는데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묵시3:2-3) 2 깨어 있어라아직 남아 있지만 죽어 가는 것들을 튼튼하게 만들어라나는 네가 한 일들이 나의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3 그러므로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하여라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너는 내가 어느 때에 너에게 갈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2. 갑자기 임하신다(37~39)

 

37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38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39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노아의 때를 말씀하시며마지막 때에도 이와 같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마지막 때에도 사람들은 땅의 일에만 정신을 빼앗기다가갑작스럽게 임할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해 모두 멸망하리라는 것입니다이러한 주님의 경고는 우리가 반드시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경고를 소홀히 여기면 우리도 멸망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어떠했으며 또 그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일에만 전념하며홍수가 나서 저희를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요즈음도 당시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을 먹을까무엇을 마실까무엇을 입을까에 최대의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잘못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러한 자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심판 날이 순식간에 임할 때 다 멸망하여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성실하게 땅의 것을 위해 일하되땅의 것만 바라보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먹고 마시는 것 자체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그것은 본질적인 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것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은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답게 하늘의 것 신령한 것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노아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그는 하느님께서 심판이 언제 시작될 것인지를 가르쳐 주시지 않았는데도 깨어 있어서 자기에게 맡겨 주신 일을 최선을 다하면서,하느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노아처럼 살아야 합니다.

게으르고 나태하지 않으며육체의 욕구가 이끄는 대로 살지 말고모든 일에 절제하면서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일-본질적인 일에 최선을 다하며주님의 재림과 그분의 평가에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노아 같이 삶으로 불의 심판에서구원의 은혜(恩惠)를 입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깨어 있으라(40~42)

 

40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2 그러니 깨어 있어라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지막 날에 있을 최종적인 분리에 대하여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농부가 알곡과 가라지를 분리하듯어부가 그물에 있는 고기를 좋은 고기와 쓸모없는 고기로 분리하듯 함으로서 두 사람의 운명이 영원히 나누어지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과 그 때를 알아내어서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다만 매일의 삶을 믿음 가운데서 충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주님의 재림을 인식하고 그것을 희망하는 삶을 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인식하면서 살고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재림을 희망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35절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전체에 걸쳐서 300번 이상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고신약성경은 요한 2서와 3서라는 두 개의 짧은 서신을 제외하고는 모든 성경에서 주님의 재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얼마나 확실한 일인지는 신약성경의 마지막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마지막에서 주님은 모든 말씀을 하신 다음에 그렇다내가 곧 간다.”(묵시22,20)고 말씀하시고사도 요한은 아멘오십시오주 예수님!라고 기도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인식하면서 살아야 하고또한 얼마나 희망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를 다니고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의 다시 오심을 실감하며 사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설령 이론적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한다 할지라도그것을 간절히 희망하며 사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할 것은 주님의 재림 신앙이 없으면그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을 믿고 얼마나 희망하느냐는 문제는 우리의 신앙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척도요성숙한 신앙생활을 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대는 얼마나 악하며 얼마나 살기가 힘듭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곧 재림하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매일매일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뼈저리게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을 믿는 사람이 주님의 재림을 희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그 때는 모든 악이 제거되고우리의 한계가 극복되며진정한 삶과 행복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우리도 사도 요한과 같이 늘 아멘오십시오주 예수님!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4. 깨어 준비하라(43~44)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예비(例批)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어느 날, 어느 때, 어느 시각에 오실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특정한 때에 초점을 맞추어 그때만 어떻게 모면하려는 태도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 주님을 맞이하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하느님의 자녀다워야 하고, 늘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깨어서 준비하는 태도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종말 의식을 가지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내가 역사의 종말을 살고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내가 내 생애의 마지막을 살고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됩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살면 안 됩니다. 내 인생이 이 땅에서 영원할 것처럼 살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한시적 인생이며, 그것을 항상 인식(認識)하고 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종말 의식입니다.

종말을 의식하려면 항상 성령(聖靈)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종말(終末)은 가상의 스토리가 아닙니다. 개인의 종말이 실제로 다가오고 있으며, 또한 그것은 언제나 실현 가능합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연합군의 대 상륙작전이 있었습니다.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하면서도 끝까지 그 날짜와 시각을 철저히 비밀에 붙였습니다. 그 공격개시일을 D-DAY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에도 디데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성경(聖經)은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예고해 줍니다. 종말을 인식하고 사는 것은 현재의 삶에 불편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유익한 점이 더 많습니다. 종말을 인식할 때 현재의 삶이 경건해집니다.

살인강도조차도 죽음 앞에서는 엄숙해집니다.

예수님 우편에서 사형 당하던 강도는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부탁했습니다. 평생 고약한 짓만 하던 사람도 죽음이 다가오면, 자못 경건해지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삶이 잘못 된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심판과 응징(膺懲)을 알게 함으로써 바른 생활로 돌아오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이 고달픈 사람들에게는 곧 다가올 하느님의 상급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종말 의식을 갖는 것은 성도의 필수 조건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하느님은 심판의 날을 정하시고, 철저히 감추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려고 시도했고, 제자들도 깊은 관심을 가졌지만 아무도 그날과 때를 알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이 심판의 날을 감추신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결코 유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에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미래는 불투명하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계속해서 그리스도()께 순종하지 않으면 마지막 날 후회와 공포로 통곡하면서 맞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순종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2) 예수님은 아무런 예고 없이 예측하지 못한 때에 홀연히 임하실 것입니다.

노아의 때처럼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상의 현장에 심판의 주로 강림하실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노아를 통한 하느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반복되는 일상과 변함없는 하늘과 땅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심판의 날이 도래하여 모두 멸망할 때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도 평범한 우리 일상에 갑자기 찾아오셔서 모든 것을 결산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불신자를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불신자가 재림을 보고 나서 믿을 수 있는 기회는 결코 주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내 삶은 부끄러움 없이 예수님을 맞을 만큼 잘 정돈되고, 준비되어 있습니까?

 

3) 심판 날에 판결 기준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있을 것입니다.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고 있더라도 택하심을 입게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재림을 준비하는 자세로 최선을 다합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은 때에 갑자기 오십니다. 그 시기를 가리키는 특별한 징조가 없습니다. 다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성도들을 모으고 상을 주십니다. 믿는 나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4) 항상 인자의 오심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도둑이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것처럼 주님도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오실 것입니다. 따라서 때를 알려고 하기보다 날마다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모습 그대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까?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가 마치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인 것처럼 여기며 거룩하고 치열하게 살아갑시다.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면서 예비하고 있습니까?

 

(1데살5,6-8) 6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 7 잠자는 이들은 밤에 자고 술에 취하는 이들은 밤에 취합니다. 8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이니, 맑은 정신으로 믿음과 사랑의 갑옷을 입고 구원의 희망을 투구로 씁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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