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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운명이다” - 5.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08 조회수451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2010.5.8 부활 제5주간 토요일

사도16,1-10 요한15,18-21

 

 

 

 

“운명이다”

 

 

악에 대한 유일한 처방 말씀은 다음 한마디 말씀뿐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창세기 1장 1절 역시 좋은 참조가 됩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결코 악을 창조하시지 않았다는 고백입니다.

빛이 사라지면 어둠이듯이

사랑이신 하느님이 떠나면 악의 어둠에 빠져들게 됩니다.

신록으로 빛나는 산이 초여름을 연상케 합니다.

신록으로 빛나는 5월의 산이 영감의 원천입니다.

 

 

“세월 흘러 나이 들어도/마음과 영혼, 정신은

  늘 신록으로 빛나는/5월의 산이고 싶다.”

사랑이신 주님을 만날 때

신록으로 빛나는 영혼이요 정신이요 마음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우리의 운명을 변화시킵니다.

고정불변의 체념적 운명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의 노력이 하나 되어 이루어가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하여 100%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노력해야 합니다.

 

 

“운명이다”

출간 2주 만에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제치고

베스트셀러 1위에 진입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제목이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서울 시장 민주당 후보로 뽑힌 한 명숙 씨의 출마 변도

“운명이다”였습니다.

“운명이다”를 우리말로 바꿔 “하느님의 뜻이다”라고 해도

그대로 통합니다.

 

우리가 여기 살고 있는 것도 운명이자 하느님의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우리의 운명을, 하느님의 뜻을 깨달을 때 바로 이게 구원의 기쁨입니다.

체념적 운명이 아닌

하느님께서 불러주심에 자발적으로 응답하여

하느님을 찾고, 만나고, 따르는 역동적 행복한 운명입니다.

 

요즘 절실히 깨닫는 두 사실이 우리 삶의 모두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아는 것’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투명하게 계시되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반면 하느님을 몰라 자기 운명을 모르고 사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바로 예나 이제나 주님을 따르는 이들의 운명의 정체를

환히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님이 세상에서 뽑아낸 우리들, 바로 이게 우리의 신원입니다.

알게 모르게 주님을 따르면서 겪는 모든 시련과 고통들은

그대로 주님의 운명과 결부됨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는 말씀을 명심하여

늘 주님의 행적에서 내 운명을,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내 길을 살펴보고 마음을 추스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박해했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주님과 공동운명체의 우리들이요

주님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우리들의 운명임을 깨닫습니다.

사도행전의 사도 바오로의 삶,

그대로 ‘운명이다’로 결론지을 수 있겠습니다.

말 그대로 그리스도는 사도 바오로의 운명이었습니다.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주님과의 운명적 만남이후

오늘도 주님은 그의 운명이 되어 그를 이끄십니다.

 

다음 몇 대목이 이에 대한 생생한 증거입니다.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어느 날 밤, 바오로가 환시를 보았다.’

성령께서 바오로의 선교방향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돌린 것 역시

운명이자 하느님의 뜻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만약 바오로가 아시아로 선교방향을 잡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며 상상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듯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는 것 역시

부질없는 일입니다.

오늘도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찾아오시는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운명이 되시어

참 좋은 생명의 길, 진리의 길, 하늘 길의 내적 여정에 오르게 하십니다.

 

“주님은 참으로 좋으시고,

  그분 자애는 영원하시며,

  그분 진실은 대대에 이르신다.”(시편100,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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