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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둘째 미사)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11-01 조회수434 추천수1 반대(0) 신고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은 죽은 모든 이의 영혼, 특히 연옥 영혼들이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이다. 오늘 모든 사제는 세 대의 위령 미사를 거행할 수 있다.

 

이러한 특전은 15세기 스페인의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시작되었다. 교회는 모든 성인 대축일111일부터 8일까지 정성껏 묘지를 방문하여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1독서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3,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2독서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17-21
형제 여러분, 17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20 율법이 들어와 범죄가 많아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21 이는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7

한 사람의 범죄로 초래된을 직역하면 한 사람으로부터”.

 

18

직역하면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행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단죄에 (이르렀듯이), 한 분의 의로운 행위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의화에 (이르렀습니다)”

 

20

4.15; 7,7-25 참조.

 

21

그리스도가 드러내신 의로움은 은총의 구체적 표현으로서 사람을 죽음의 세력에서 구원하는 방법이다.

 

 

 

 

 

 

 

복음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5-30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감사 기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11,25-27 단락은 찬양기도와 계시 말씀으로 짜여 있는데, 역시 어록에서 따온 것이다. 25-26절은 공관복음에 수록된 예수님의 하나뿐인 찬양기도다. 그 내용으로 미루어 감사기도라 해도 좋다.

 

예수께서는 기도하실 때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셨다. 게쎄마니에서 청원기도를 바치실 때 그러셨으니,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때도 그러셨을 것이다.

 

슬기롭고 똑똑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율법을 알고 지키는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겠다. 반대로 어릭석은 사람들은 율법을 알지도 못하고 지키지도 않는 무리다. 암 하 아레츠(땅의 백성= 시골뜨기들, 촌놈들, 상것들)라는 딱지가 붙은 무리다. 최고의회 의원들과 바리사이들에게서 과연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로다라는 막말을 들은 무리다. 매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리석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다. 23장에 율사들. 바리사이들과 제자들이 적수로 나오는 사실이 위의 풀이를 뒷받침한다.

 

아빠께서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는 감추시고 제자들에게는 계시하신 이것들은 무엇일까? 하느님의 아들이요 하느님의 계시자이신 예수님의 정체를 뜻할 수도 있겠고,또는 예수님의 설교 주제인 하늘나라의 신비들을 가리킬 수도 있겠다. 어떻게 보아도 괜찮다. 하늘나라와 그 나라의 선포자는 한통속이기 때문이다. 이제 감사기도의 뜻은 밝히 드러난다. 유다교 지도급 인사들에게 배척을 받아 이스라엘 전도가 사실상 실패하던 무렵에, 그렇지만 극소수 암 하 아레츠만이라도 당신을 이해하고 따라준 데 감격해서 이 감사기도를 드리셨다. 크게 실패하고 아주 조금 성공을 거두신 때에 이 감사기도를 바치셨다. 못난 제자들만이라도 당신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은 아빠께서 계시하신 덕분이요 아빠께서 선의를 드러내신 덕분이라 하신다. 사도 바오로가 데살로니카 교우들에게 모든 일에 감사하시오라고 충고하기 훨씬 이전에 예수님은 몸으로 실천하셨다.

 

27

27절은 본디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전해온 단절어였는데, “아버지계시하다라는 낱말들이 25-26.27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어록의 전승자 또는 편집자가 한곳에 배열했다. 이른바 연쇄어 구문이다.

 

계시의 말씀에는 세 가지 내용이 들어 있다.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은 조상들에게서 전승을 물려받은 데 반해, 예수께서는 당신 아버지이신 하느님에게서 모든 계시를 전해 받았다.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 아드님만이 서로를 안다. 오직 예수님에게서 계시를 받은 사람만이 하느님 아버지를 알 수 있다. 이 세 가지 내용은 요한복음의 그리스도론과 매우 비슷하다. 이런 그리스도론이 50~60년경에 쓰인 어록에 있다니, 아니 어록 이전의 전승에게까지 소급되다니 놀랍다.

 

초대 말씀

초대 말씀은 유다교 지혜문학에 나오는 인격적 지혜가 어리석은 사람들을 초대하여 지혜를 익히도록 권하는 초대사와 닮았다. 특히 집회 51,23-27과는 문체와 낱말들조차 닮았다. 그래서 28-30절은 본디 지혜문학 유형에 속했다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28-30절 가운데서 편집사적 요소들을 삭제하고서 지혜문학에서의 초대사를 재구성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수고하는 여러분은 다 나에게로 오시오. 그러면 내가 여러분을 쉬게 하겠습니다. 여러분 위에 내 멍에를 메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영혼에 쉼을 얻을 것입니다. 사실 내 멍에는 편하고 가볍습니다.

 

마태오가 지혜의 초대사를 예수님의 초대사로 바꾸면서 크게 두 가지를 가필했다고 하겠는데. 그 뜻인즉 유다교의 613가지나 되는 율법계율을 짐진까닭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예수께서는 가벼운 내 짐을 지우신다. 어째서 예수님이 지우는 짐은 가벼운가? 유다교의 613가지 계율을 황금율과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환원시키셨기 때문이다.

 

나에게서 배우시오. 나는 온유하고 마음으로 겸손하기 때문입니다도 가필이라고 본다. 까닭인즉, 여기 낱말들이 다른 데서도 마태오가 덧붙인 낱말들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마태오는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에게 이 초대사를 적용할 수도 있다. 즉 인생고와 나날의 긴장에 지친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서 위안과 휴식을 찾는 식으로 말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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