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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담과 하와[9]/위대한 인간의 탄생[17]/창세기[32]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28 조회수451 추천수0 반대(0) 신고

하느님은 사람이 죄책감에 빠진 상태에서도
진정 회개해서 용서를 구하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셨다.
그러나 사람은 책임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는 그분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직 그분 사랑의 구원과 은혜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죄를 고백할 수 없었다.
아니 고백을 몰랐다.

선과 악을 알았지만 악에 대한 벌을 알지 못했기에
죄를 용서를 청하는 법을 잘 몰랐을 수도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인 남자는 참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라는
그분의 물음에 ‘솔직히 깜빡했습니다.’라고 시인했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했더라면 그분의 노여움을 피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는 게
결국 모든 책임을 하느님 그분께 뒤집어씌우는 꼴이 되고 말았다.

여자에 대한 남자의 고발은 결국은 여자를 맡기신 하느님께 대한 고발이자
그분을 배신한 꼴이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이처럼 최초의 사람인 남자와 여자 그리고 하느님 그분과의 관계를
왜곡시키고 파괴하였다.
계약의 파기였다.

하느님과 사람과의 그 상호간의 약속은
그분께서는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사람에게 주신 것이고
사람은 그 중에서도 에덴에 있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그 열매만은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람은 결국은 그 약속을 파기하였다.
그리고 그것도 회개가 없이 그저 단순히 있는 그대로 고백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원인 제공은 결국은 여자였다.
대체적으로 ‘여자가 설쳐서 되는 게 없다.’라는 옛말이 있다.
지금이야 이 말을 함부로 썼다가는 당장에 큰일 날 소리가 되었다.
그렇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남자들 사이의 모임에 이 말이 쉽게 회자되었다.
아니 남여 동석인 자리에서도 크게 부담이 없었다.

창세기 때부터 이 말은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여자가 사탄의 꾐에 빠져 죄를 지어 원인제공을 하였지만
주워 담지 못할 짓은 결국은 남자가 저지르고 말았다.
이게 세상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저 여자가!’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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