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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김대건 안들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 ♣임 향한 일편단심![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05 조회수451 추천수2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우리들은 9월 순교자 성월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지금 순교성월을 지내고 있는지, 보내고 있는지....

순교성월을 보낸다는 것과 지낸다는 것은 단어의 차이가 아니라 그 내용이 깊은 겁니다.

순교성월을 보낸다고 하는 것은 작은 열매라도 맺고 있다는 뜻이고, 순교성월을 지내고 있다고 하는 것은 물 흐르듯이 그냥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순교라고 하는 것은 영적순교와 육적 순교, 두 개가 합쳐진 것이라고 구분을 하고 싶습니다.

먼저 영적인 순교가 있습니다.

이 영적인 순교가 잘 되어야만 육적인 순교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시기에 영적인 순교가 뭐겠습니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자기 입을 다스리는 겁니다.


한자로 거룩할 聖자를 머릿속에 그려 보십시오.

세 단어가 합쳐서 거룩할 성자가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가 귀를 나타내는 귀 耳자에, 그 옆에 입을 나타내는 입 口자가 있고  밑에는 王자입니다.

이 王자는 뭘로 이루어졌느냐?

一획이 하늘이고 三획이 땅인데 중간에 십자가†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인은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귀를 다스리고 입을 다스리고 하늘과 땅 사이에 자기 십자가로 이어 사랑하는 사람이 성인입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진흙으로 빚으시고 난 다음에 눈, 코, 입 다 만들어 놓은 난 다음에 제일 고민하셨던 게 뭔지 압니까?

이놈의 혓바닥을 어디에 놓아야 말썽이 없을까?

고민 많이 하셨답니다.

처음에는 겨드랑에 붙여 놓았더니 걸을 때마다 자꾸 걸리적거려~~

그 다음에는 등짝에다 붙여 놓았더니 런닝 샤쓰 입을 때마다 자꾸 뒤집어져~~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 “맞다, 거기가 최고의 장소다!”

컴컴하고 으슥하고~~

목젖에다 혓바닥을 붙여 놓았지~~

그러고도 창조주는 불안해서 담을 쳤습니다.

그 담이 뭐겠습니까?

사람의 입입니다.

그래도 불안하여 두꺼운 가죽을 두 개 대어 주었습니다.

그게 바로 사람의 입술입니다.

이렇게 입 조심하라고 숨기고 숨기고 만들어 주었건만~~

그저 침 튀겨 가면서 남 얘기로 시작해서 남 얘기로 끝나고~~

할머니는 틀니까지 빼 가면서 남 얘기로 시작해서 남 얘기로 끝나고~~


성인은 다른 것이 아니라 들을 걸 제대로 듣고/ 말할 때 제대로 정직하게 말해야 되고/ 침묵을 지킬 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 바로 王이요, 바로 그 사람이 聖人입니다.


영적 순교의 첫 번째는 입을 다스리는 자다.


두 번째는 뭐겠습니까?

영적 순교가 이루어집니다.

이 입이 컨트롤되기 시작하면 쉽게 완덕으로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전 같으면 화가 나고 성질이 나면 입으로 다 했는데 입을 다스리기 시작하면 하느님께서 축복을 주십니다.

인내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시고 분노가 나도 어떤 놈이 와서 쥐고 흔들어도 그 전에는 죽이고 싶도록 미웠고 복수하고 싶었는데  입을 다스리는 그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기에 분노가 일어나지 않고 비록 얺짢다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단순해집니다.

아이들은 애~앵 하고 울다가도 금새 팔딱대고 웃습니다.

바로 영적인 어린아이의 모습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원수를 사랑하는 단계에까지 가게 됩니다.


영적 순교라는 것은 입을 다스리는 것이요.

성질나는 것, 참는 것이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요

자기 악습을 이기는 겁니다.


영적순교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하느님 안에서의 포기입니다.

그런데 이 포기라고 하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부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자꾸 포기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덤으로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내적기쁨입니다.

행복한 겁니다.


김대건신부님은 목이 잘리면서도 그 망나니에게

“목을 어떻게 내밀어야 쉽게 치실 수 있느냐!”

피를 닦고 있는 망나니는 섬찟했을 겁니다.

“내가 이놈 목을 치려고 하는데 이 사람 입에서 어떻게 목을 내밀어야 쉽게 칠 수 있는지요!”

칼을 치는 나를 다른 사람은 독을 품고 바라봤는데 이 사제는 웃으면서 온유하게 오히려 나를 위해 기도해 줄 때.....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겁니다.

이러한 영적 순교가 잘 되어야만 육적인 순교....

다시 말하면 하느님을 위해 하나뿐인 생명을 바칠 수가 있는 겁니다.

때로는 못 먹을지라도 우리는 몸을 가지고 봉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육적인 순교입니다.


한국교회는 순교의 교회라고 합니다.

전 세계 교회가 한국교회를 부러워합니다.

교구마다 신학교를 만들 정도로 사제가 늘어나고 수도원도 수백명이 넘는 대형수도회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내적인 문제가 따릅니다.

냉담자가 많이 늘어나고 있고 영성에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때로는 사제 수도자의 영성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도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을 축복받은 나라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

과연 이 축복이 현재 나에게 우리를 보고 내려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하는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00년 전에 우리 신앙 순교선열들의 피가 거름이 되어서 이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지~~

현재 우리들이 삶이 아름답기 때문에 축복을 주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 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목을 내놓는 순교가 쉬웠겠습니까>?

천주교인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 모진 매를 때립니다.

나중에는 뼈가 막 불거져 튀어나가고 먹을 것도 주지 않고

너무너무 배가 고파서 피가 범벅이 되었던 가마때기를 뜯어서 입에 씹을 정도로...

수치감을 주기 위해 여자와 남자를 한 감방에다 집어넣습니다. 너희들이 부끄러우면 내외를 할 것이다.

포졸들이나 천주교 신자들이나 다 한동네 사람입니다.

그전 같으면 李서방, 朴서방...하던 사이였습니다.

포졸들도 그게 안타까워서 어떻게 해서든지 배교시켜서 자식들에게로 돌려보내고 싶어서 회유합니다.

“이 서방, 왜 그렇게 쉽게 죽으려고 하나~~ 자, 여기 십자가가 있으니 십자가를 발로 밟아 보게. 묵주가 있으니 묵주에다 침 한 번 뱉어. 그러면 살 수 있어~~”

밟았습니까? 안 밟았습니까?

나중에는 하도 답답해서 “이 사람아, 이렇게 목이 잘리는 것보다 새끼들한테 가는 게 네가 믿는 하느님 뜻이야... 그리고 밟고 나가서 천주교신자 다시 되면 되잖아 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

우리 신자들은 단 1%도 내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느님을 배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요즘 계산적인 신자들의 계산방식으로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이, 바보, 그런 바보가 어디 있나...묵주 한 번 밟고 십자가에 침 한 번 뱉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해, 나는 술만 먹으면 성모상 깬 게 수십번인데...그것 밟고 나가 고백성사 한 번 진하게 하고 보속 한번 진하게 하고 살면 되지~~ 왜 그것 한 번 못 밟고 목이 잘려~~ 아이구, 등신들...’

아마 이게 현대 우리 신앙의 현주소가 아닌가!


우리 본당에는 최양업신부님의 아버지인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가 있습니다.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은 아들을 마카오로 신학교를 보내고 난 다음에 그야말로 천주교 괴수가 되어가지고 잡혀 들어갔습니다.

최경환성인은 목이 잘리는 것을 소원했지만 결국에는 매를 맞아서 맷독에 운명하십니다.

최양업신부님의 어머니가 다시 핏덩어리 갓난아이를 안고 끌려 들어옵니다.

낮에는 하루 종일 매를 맞고 밤에 감옥에 들어 와서 하루 종일 울던 핏덩이 그 아이가 젖을 물려고 하니 젖이 나오겠습니까?

피로 범벅이 된 가마때기를 뜯어서 씹으며 어떻게 젖을 한 번 내어 볼까 하고 애를 쓰지만 젖이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최양업신부님의 막내 어린 동생은 감옥에서 아사를 합니다.

그 핏덩어리가 굶어죽고 나자 이 어머니는 눈이 뒤집어집니다.

“나 하느님 안 믿소, 내 나가서 거지로 돌아다니는 나머지 새끼들이라도 내가 살려야겠소!”

어머니는 밖으로 나가서 아이들이 있는 굴속을 찾아 갑니다.

그러나 최양업신부님의 제일 큰 동생이 어머니 앞을 딱 가로막으며

어머니, 어떻게 찾아오셨어요...나중에 형님이 사제가 되어 한국에 왔을 때 어머니가 하느님을 배반하신걸 알면 어떻게 엄마가 형님의 얼굴을 대하겠소!우리들은 걱정 말고 어머니는 돌아가시오!“

그때야 어머니는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맞다, 우리 큰아들 사제가 되어 돌아올 때 내가 어찌 내 아들 얼굴을 볼 수 있겠는가! 하느님을 배반하고...”

다시 돌아가서 감방 문을 두드리고

“나 아까 한 말 취소~~다시 하느님 믿겠습니다!”

형 날짜가 정해졌습니다.

언제 어머니가 목이 짤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아이들이 장례집, 결혼식 집을 찾아다니면서 쌀을 한 바가지씩 얻어서 쌀을 몇 말 준비합니다.

그 쌀을 짊어지고 아이들 셋이서 엄마의 목을 칠 망나니의 집을 찾아갑니다.

“아저씨, 이 쌀 받으시고 오늘 밤새 칼을 잘 갈아서  내일 우리엄마 단 한 번에 목이 떨어지게 해 주십시오”

옛날에 망나니들은 한 번에 목을 자르지 않았다고 그럽니다.

고통을 주기 위해서 처음에는 칼등으로 목뼈만 부러뜨립니다.

그다음 칼날을 바로 세워서 세 네 번에 나누어서 끊었다고 그래요....

한 번에 끊을 수 있는데도 고통을 주기 위해서....

망나니도 사람을 치는 사람이었지만 자식을 기르고 있는 처지라 그 아이들이 쌀을 모아서 (우리 엄마 한 번에 죽게 해 주십시오!) 라는 말을 듣고 이 짠했을 겁니다.

“그래, 걱정하지 마라, 내일 너희 엄마 한 번에 죽게 해 주마!”

다음날 아침 엄마는 끌려 나가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칼을 받을 준비를 했습니다.

아이들 보고 절대 그 자리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건만 막내 아이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울기 시작합니다.

큰 아이가 막내 동생의 입을 가로막으면서 “너 울면 안 된다, 엄마가 우리 쳐다본다...”

어찌 엄마가 자식의 흐느끼는 소리를 못 듣겠습니까!
막내아이의 그 울음소리에 소리에 얼굴을 들어보니 아이들 셋이서 사람들 틈에 끼어서 입을 다물고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어요.

순간 많이 흔들렸지만

“제가 하느님을 위해 죽는데 제 자식들 지켜주실 줄 것을 믿습니다.”

망나니는 그 아이들을 쳐다보고 엄마를 쳐다보다가 칼춤 추는 것도 포기하고 단번에 엄마의 목을 잘라 냈습니다.


순교하는 것이 어디 쉬웠겠습니까?

그 후에 아이들은 거지가 되어 떠돌아다녔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어머니도 역시 아들을 신학교 보냈다는 것 때문에 모진 매를 맞고 정신병자처럼 거지가 되어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때 천주교를 순교했던 그 가족들은 칠족을 멸했고, 어느 집안에서 천주교신자 하나가 나오면 일가친척이 벼슬길이 막히고... 그 동네에서 쫓겨나던 그 시절에 순교하는 것이 쉬웠겠습니까?

나로 인해서 내 부모가 온 친척들이 박해를 받을 것을 생각하면 목을 내놓기가 쉬웠겠습니까?

이렇게 순교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닐 겁니다.

영적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루아침에 어찌 순교가 가능하겠습니까?


그 영적훈련은 과연 어떤 훈련이었겠습니까?

첫 번째, 우리 신앙의 순교성인들은 수계생활에 철저했습니다.

수계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십계명을 지키는 겁니다.

하느님을 흠숭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것이 십계명의 내용입니다.

십계명을 지켜도 소극적인 수계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수계생활을 했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하지 말라! 하는 것 지키는 건 당연한 겁니다.

적극적인 수계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의 계명을 철저하게 적극적으로 행하는 겁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아실 겁니다.

라자로를 부잣집 문앞에 동네 사람들이 데려다 놓습니다.

부자는 식사 때마다 손 닦는 식빵쪼가리를 주워 다가 라자로를 먹여 살립니다.

부자는 속으로 ‘주님, 저는 축복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저 라자로는 나 아니면 벌써 굶어 죽을 놈이었습니다.

나중에 죽었는데 자기의 예상과는 빗나가게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시기에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부자는 지나다니면서 라자로에게 폭행한 적도 없고, 악행을 라자로에게 한 적도 없지만 부자는 지옥에 갔습니다.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악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적극적인 선을 못 베풀었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겁니다.

다시 말하면 성서 어디를 찾아봐도 <착하게만 살면 천국 간다!>

그런 이야기는 어디에 봐도 없습니다.

적극적인 선을 행해야 합니다.

간음하지 않고 도둑질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천국 가는 증표가 아닙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적극적인 수계생활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흉년이 들면 외인들 동네에서는 굶어죽는 이가 속출했지만 우리 천주교 교우촌에서는 오히려 빵의 기적이 일어나서 서로 가진 것을 내놓았기 때문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곡식을 모아서 외인들을 살렸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비록 귀동냥해서 배운 교리였지만 하느님이 세상의 주인이시라는 하는 것을 당당하게 외치다가 혓바닥이 뽑혀 죽은 신자들도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철저한 수계생활에서 오는 영적 무장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두 번재, 영적 훈련은 기도생활에 철저했습니다.

기도서도 없이 일일이 손으로 써서 외우고 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귀동냥으로 외우는 기도문이었지만 삼종기도, 묵주기도, 식사 전후 기도를 감옥 안에서도 철저히 했습니다.

하루 일로 몸이 파김치가 되어도 포졸들에게 쫓겨 다녀도 기도만큼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감옥 안에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절대로...절대로... 배교하지 않고 순교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세상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게 두 번째 영적 훈련이었습니다.


세 번째 영적훈련은 전교생활에 철저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이 좋으신데 이걸 어떻게 하면 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세상에 보여드릴 수 있을까~~ 고심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박해시절이라 대놓고 전교할 수 없던 시절~~

하느님나라와 천국을 알리기 위해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전교했습니다.

목숨을 건 전교였습니다.

나는 과연 세례 받고 이제까지 몇 영혼이나 하느님께로 인도 했는가~~

우리 천주교회는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교회로 올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만 해도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형제가 교리를 배우면서 천주교는 자기발로 왔습니다.

오게 된 동기를 얘기하는데 자기 한 사무실에 자기 상사가 천주교신자였대요.

손에는 늘 묵주반지를 끼고 그분과 십몇 년을 같이 살았는데도 한번도

“너 종교가 뭐냐! 성당에 나와라!

성당 가자는 말을  한 번도 안 해 주었대요~~

올해는 해 줄까~~ 올해는 해 줄까~~

성당에 가고 싶은데 저 양반이 한 번만 얘기해 줘도 내가 못이기는 척하고 끌려 갈 텐데....

기다리다 기다리다 나중에는 지쳐서 ‘에잇, 더러워서 내 발로 가겠다!’

이렇게 찾아온 분입니다.

내 무관심, 무성의 때문에 입교시킬 수 있는 사람을 못 입교 시켰다면 나중에 죽어서 심판거리가 될 겁니다.


우리 신앙선조들은  이 세 가지 영적 훈련... 첫 번째가 뭐라고 했습니까?

수계생활에 철저했고 그 중에도 적극적이 수계생활, 선을 행하는 수계생활을 했습니다.


두 번째는 뭐라고 했습니까?

그렇지요~~ 기도생활에 철저했다!

밤이나 낮이나 기도는 주님과 나의 끈이라고 생각했고 이 끈을 놓으면 나는 세상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 영적훈련은 전교생활에 철저했습니다.

전교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나중에 심판거리 중의 하나가 주님 앞에 갔을 때

“너 천주교신자로 50년을 살다가 왔는데 네가 50년 동안 네 입으로 기도로 내 앞에 끌어다 놓은 영혼이 몇 명이나 되느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 명도 없습니다.”

“그것도 입이라고 떠드냐?”

그 사람 갈 데는 뻔합니다.
우리도 영적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맙시다.


그리고 흔들릴 때마다 순교성인들께 전구 청합시다.

천상에 계신 순교성인, 김대건 안드레아신부님, 정하상 바오로 성인, 동료순교성인이시어!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고 이 매괴성당이 성모성지로 거듭 날 수 있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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