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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10주 / 조재형가브리엘 신부님
작성자신희상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07 조회수639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10주 / 조재형가브리엘 시흥5동성당 주임신부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목요일에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병원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저도 혈압도 있고, 통풍도 있고, 최근에 살도 좀 찌고 해서 병원에 가는 것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교구에서 1년에 한번은 해야 한다고 하니까 갔습니다. 신자 분들을 위해서도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하기 때문에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지만 늘 병원에 갈 때마다 겁도 나고, 걱정도 되고 그렇습니다. 하긴 아이나 어른이나 아픈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병원에 가는 것도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지난 월요일에 가정 방문을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성당에 나오지 못하는 형제님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죄가 커서, 나이가 많아서 성당에 나오기 힘들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화를 하는 도중에 앞으로 성당에 나오시겠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저는 한 번도 성당에 나오시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몇 번씩 예전에는 성당에 열심히 다니셨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것을 찾으며 신앙 안에서 삶을 살아 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제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간 것처럼, 우리들도 살아가면서 부족하고, 죄를 범하기 때문에 이렇게 성당에 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완벽한 사람들만 산다면 우리가 매 주 성당에 와서 고백의 기도를 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듯이, 우리는 살면서 잘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의탁하기 위해서 이렇게 모인 것입니다.

지난주에 견진성사가 있었습니다. 주교님께서 견진자들을 축하하시면서 이렇게 강론을 하셨습니다. ‘견진성사를 통해서 많은 은사를 받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치유의 은사를 받을 것이고, 어떤 분들은 이상한 언어를 하는 은사를 받을 것이고, 어떤 분들은 말씀을 전하는 은사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가장 크게 여기시는 은사는 바로 용서의 은사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아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이야기 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여러분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입니다.’ 저는 주교님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견진성사의 은사는 효경, 굳셈, 두려움, 의견, 지식, 슬기, 통달인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용서’의 은사가 가장 큰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제 1독서에서 호세아 예언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요즘 우리 사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때문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정부는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왜 국민들이 그렇게 심하게 반발하는지를 경청하여야 할 것입니다. 물대포와 소화기를 뿌려대면서 시위대를 해산 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국민들의 의견과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 직장에서 문제에 부딪힐 때,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하느님을 아는 예지입니다. 대통령께서 종교계 지도자들을 만나서 의견을 구하는 것은 잘 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종교계의 지도자들은 세상의 논리와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비와 사랑, 관용과 용서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풀수 있는 지혜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오늘의 제 2독서는 신앙의 핵심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변화시켜 주시는 분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변화되고자 하는 본인의 열망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하느님께서는 이런 믿음으로 보시고 아브라함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세리 마태오도 주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자신이 가졌던 직업을 포기합니다. 비록 죄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물질적인 풍요함을 보장해 주던 세리라는 그 직업을 포기함으로써 복음사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원하는 것을 채우는 것으로는 결코 참된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원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참된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마태오는 바로 원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었는지, 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는지 오늘 성서 말씀을 통해서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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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야후블로그<이브의 행복으로가는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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