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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11-10 조회수247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전례

성 마르티노 주교는 316년 무렵 헝가리 판노니아의 이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로마에서 공부한 그는 군인으로 근무하던 중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신비 체험을 하였다. 어느 날 추위에 떨고 있는 한 걸인에게 자신의 외투 절반을 잘라 주었는데, 그날 밤 꿈속에 그 외투 차림의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이다.

 

곧바로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된 그는 나중에 사제가 되었고, 370년 무렵에는 프랑스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어 착한 목자의 모범을 보이며 복음 전파에 전념하였다. 프랑스 교회의 초석을 놓은 마르티노 주교는 프랑스 교회의 수호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다.

 

 

 

 

 

 

1독서

<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
요한 2서의 말씀입니다. 4-9
선택받은 부인이여,
4 그대의 자녀들 가운데, 우리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매우 기뻤습니다.
5 부인, 이제 내가 그대에게 당부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써 보내는 것은 무슨 새 계명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지녀 온 계명입니다. 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6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가 그분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그 계명은 그대들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7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속이는 자며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8 여러분은 우리가 일하여 이루어 놓은 것을 잃지 않고
충만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살피십시오.
9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는 자는 아무도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4

1요한 1,6-7어둠 안에서 거닐다. 빛 안에서 거닐다라는 상징적 표현 대신, 2요한 4절에선 진리 안에서 거닐다라는 직설적 표현을 쓴다. 두 부류 표현의 뜻인 즉, 6절의 하느님의 계명을 따라 거닐다와 같으니, 곧 형제애 계명을 준수한다는 뜻이다.

 

6

형제애 계명은 예수 친히 가르치신 것이요 교회 초창기부터 전승된 낯익은 계명이라는 것이다.

 

이단자들을 물리쳐라

4-6절이 윤리편이라면 7-11절은 교리편이다. 교리편에선 체린투스식 분리 그리스도론을 주창한 영지주의자들을 단죄하는 것 같다.

 

7

원문에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시는 것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라고 한다. 1요하 4.2에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모든 영은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것입니다라고 한다. 체린투스에 따르면, 역사적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테어나지 않았고 여느 사람들처럼 보통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역사적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초월적 그리스도(하느님의 아들)예수에게 내려와 머물다가 예수 수난 전에 떠나버렸다.

 

8

바티칸 사본에선 우리가 수고해서 얻은 것이라 하고, 시나이. 알엘산드리아 사본들에서는 여러분이 수고해서 얻은 것이라고 한다. 바티칸 사본을 따른다면, 필자인 원로가 사목적으로 노력해서 요한 2서 수신인 교우들에게 전파한 그리스도 신앙이라는 뜻이다.

 

9

그리스도의 가르침 속에 머물지 않고 앞지르는 자는 영지주의 이단자로서, 필자가 보기에 이들은 너무 진보주의적이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으로, 곧 교회의 그리스도론으로 보는 설도 있고, 요한 7,16.17; 18.19에서처럼 그리스도께서 친히 베푸신 가르침으로 보는 설도 있다.

 

 

 

 

 

 

 

 

 

복음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6-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6)·37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26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오느니만큼 회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노아의 고사를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록작가와 루카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인자의 내림을 동시사건으로 본 나머지, 인자의 내림이 다가오니 회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두 가지 고사를 이해했다. 26절의 인자의 날들은 인자가 내림하기 이전의 시기를 가리킨다.

 

31

31절은 마르 13,15-16을 옮겨쓴 것이다.

 

32

야훼께서 유황불로 소돔과 고모라를 태워 버리실 때 롯의 아내는 달아나다 말고 불타는 도시들을 돌아다본 죄로 그만 소금기둥으로 변했다는 고사가 있다. 32절은 롯의 아내마냥 미련을 갖지 말고,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루카가 덧붙인 구절이다.

 

33

33절은 본디 단절어. 이 단절어는 구전과정에서 세 형태로 전해왔는데. 첫째 형태는 어록에, (17,33=마태 10.39), 둘째 형태는 마르 8.35(=루카 9.24=마태 16.25). 셋째 형태는 요한 12.25에 수록되었다. 어록 문맥상으로 볼 때 제 목숨을 보존하려는 사람은노아와 롯시대 인간들처럼 사는 사람이요, “잃는 사람은회개하는 사람이다.

 

34

두 남자. 두 여자 가운데 회개한 자는 구원받고 회개하지 않은 자는 멸망한다는 이중 단절어가 마태 24,40-41에도 있는 것으로 미루어 분명히 어록에서 따온 것이다.

 

35

베자 사본에는 두 사람이 들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입니다”(36)라는 말을 덧붙였으나, 이는 후대의 어느 필사자가 마태 24.40을 옮겨 쓴 것이다.

 

36

37ㄱ절은 종말의 장소에 관한 질문으로서 20ㄱ절에 있는 종말의 시간에 관한 질문과 짝을 이룬다. 루카는 20ㄱ절과 마찬가지로 37ㄱ절도 가필했을 것이다.

 

37ㄴ절은 원래, 필연성을 가리키는 속담이었을 것이다. 어록에서는 37ㄴ절이 34-35절과 직결되었다. 그 뜻인즉, 인자에게 버림받은 남녀는 마치 시체와 같아 독수리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는 것, 곧 멸망한다는 것이다. 그럼 루카는 37ㄴ절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시체가 있는 곳에는 또한 독수리들이 모여드는것처럼 인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인자도 모습을 드러낸다는 뜻이리라. 또는 인자가 내림하는 곳에 인류가 반사적으로 모여온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루카는 인자의 내림 장소에 관한 묵시문학적 질문을 일축했다.

 

37

마태 24.28에서는 시체”, 여기서는 그냥 이라고 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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