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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원준 박사님의 구약성경과 신들/ 제10강 달의 날과 해의 날- 일주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21 조회수451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원준 박사님의 구약성경과 신들
 
 
제10강 달의 날과 해의 날 - 일주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강의에 들어가며...
 

유일신 신앙을 키워 가던 고대 이스라엘에서 광범위하게 퍼진 달신 숭배 문화를 극복하려는 신학적

노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신명기계 신학자가 닦은 신명기의 길이고 둘째는 사제계 신학자가

닦은 창세기의 길이다.

첫번째 길, 신명기의 길은 '직접 경고'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이스라엘에서 달신을 절대 숭배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명기계 신학자들은 달신 숭배를 이스라엘 신앙에 위협이 되는 요소로 인식했다. 요시야

임금은 달신 숭배를 아예 없애려 하였다. 그는 신명기 개혁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다. 요시야는 남유다의

임금이었다. 그는 야훼 신앙이 위기에 처한 것을 깨닫고 종교적 개혁을 시도했다. 특히 그의 개혁은 신명기

계 신학자들의 지원을 받았다. 그는 신명기계 개혁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다.

요시야 임금은 외래 문물의 범람으로 신앙이 흐려진 상황을 보고 일종의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야훼 신앙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나라의 기강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다윗

왕조의 영화를 새롭게 적는 역사서를 만들었다. 우리가 지금 다윗과 솔로몬 등의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요시야 임금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요시야는 이스라엘 땅에서 이방신 숭배를 몰아 내려고 했다. 물론 그는 바알 숭배자들을 몰아내는데 애썼다.

그런데 그 가운데 일월성신 숭배, 곧 달신과 해신과 별신을 몰아내었다. 그는 또 우상 숭배 사제들을 내쫓았다.

또한 바알과 해와 달과 별자리들과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분향하던 자들도 내쫓았다. (2열왕 23, 5)

구약성경에는 달신 숭배를 직접적으로 경고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두 번째 방법이다. 하늘에 떠 있는 저

밝은 달은 '신'이 아니라 그저 '피조물'일 뿐이라고 정의하면 된다. 곧, 달신 숭배를 극복하는 다른 길은 달을

탈신화하는 것이다. 신이 아니라 그저 물건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신학적 고백은 고대 이스라엘

신학자의 신학적 성찰에 기반한다. 그들은 밤이나 낮이나 가장 밝은 빛은 하느님 한 분뿐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밝은 해나 달은 모두 하느님께서 그 자리에 두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신학은 이른바 창조 시편

에서 자주 나온다.


시편에는 탄원도 있고 찬미도 있고 지혜도 있고, 하느님 백성의 생사고락이 모두 들어 있는데, 그 가운데

특히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찬미하는 시편을 '창조시편'이라 한다. 야훼 하느님이 하늘과 땅과 해와 별 등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고백은, 그런 것에 깃든 강대국의 큰 신들이 야훼 하느님의 발 아래 굴복한다는 말

이다. 이는 '고대 근동 세계관의 전복'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 시편은 약소국의 대단한 믿음을 전제로 한

시편이다.

이스라엘은 고대 근동의 작은 나라였다. 큰 제국의 위협에 시달렸고, 늘 조공을 바쳤다. 나라를 빼앗기고

민족의 일부가 유배 길에 나선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정신 세계는 독특했다. 거대한 제국의 큰 신들

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먼 옛날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키신 야훼 하느님 한 분만이 유일한 신이고,

저 제국의 거대한 신은 그저 그분이 손으로 만드신 것, 그분이 저마다 제 자리에 두신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신학을 고집스럽게도 키워나갔다.  

 

이렇게 구약성경은 크고 작은 신들을 야훼 신앙을 바탕으로 탈신화한다. 거의 모든 신들을  다 피조물이라고

했다. 이런 신학적 성찰을 집대성한 본문이 바로 창세기 1장이다. 창세기 1장에 따르면 야훼 하느님이 삼라

만상을 다 만드셨다. 곧 그분은 다른 어떤 신들보다도 우월하시고, 세상의 어떤 것도 하느님의 권능에 견줄

수 없다는 고백이다.

 

더구나 하느님이 첫 나흘 만에 만드신 하늘, 땅, 해, 달은 수메르 시대부터 대제국의 주신들이었다.

수메르 만신전의 가장 중요한 일곱 신은(하늘, 바람, 산, 물, 달, 태양, 금성) 마치 원로원처럼 세상의

운명을 결정했다. 이미 기원전 30-28세기에 일곱이라는 숫자는 수메르에서 경제·정치·종교적으로

중요한 개념으로 발전했다. 비록 이 일곱 신들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지만, 그들의 권위는

바빌론과 아시리아 시대에도 변하지 않았다. 일곱이라는 상징수 자체는 수메르의 것이었다.

 

창세기 1장은 이런 큰 신들을 한낱 피조물로 만들어 그 권위를 추락시켜 버린다. 하늘'신'도, 달'신'도 태양'

신'도 없다. 야훼 하느님은 단 나흘 만에 대제국의 높으신 신들 대부분을 만드셨다. 아무리 그들의 권능이

대단해 보여도 그것들은 그저 피조물일 뿐이다. 약소국 이스라엘의 사제계  신학자들은 이렇게 대담했다.

원래 일주일 체계도 수메르의 것이었다. 수메르 사람들은 이 일곱 신의 이름에 따라 날의 이름을 지었다. '

태양신의 날', '달신의 날' 하는 식으로 부른 것이다. 그래서 일곱 날이 한 주기가 되어 큰 신들의 이름이

반복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날수를 헤아리고 살았다. 일곱 날마다 순서대로 일곱 신들의 날이 순환되는 체계,

곧 '일주일'은 이렇게 수메르인들의 손에 의해 태어났다.

 

'7일 시스템'의 전통은 로마 시대로 이어졌다. 로마인은 로마식으로 이 체계를 '토착화'했다. 대응하는 로마

신들의 이름으로 일곱 날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래서 '화금수목월일토'(Mars, Venus, Mercury, Jupiter,

Moon, Sun, Saturn)의 '로마식 일주일 체계'를 사용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이 신들의 순서는 시대마다

조금씩 바뀌었고, 결국 유럽에서 정착되었고, 일본인들의 번역을 거쳐 우리나라도 '월화수목금토일' 체계를

사용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렇게 고대 근동 신들의 이름으로 날을 지칭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창세기 1장에서 일주일의

이름을 일곱 날들의 이름에서 신들의 이름을 모두 뺀 완전히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일주일의 날들은 이제

신들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야훼 하느님의 창조 행위 순서에 따라 '첫째 날', '둘째 날' 하는 식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날들의 이름에서 큰 신들을 연상시킬 여지도 없어졌다. 게다가 첫째 날 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숫자로 이름을 붙였지만, 마지막 날은 하느님께서 쉬신 날, 곧 '안식일'로 이름 붙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창세기 1장의 탈신화화는 완성된다. 다시 말해 일주일 체계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그 체계에

깃든 고대 근동의 신화는 완전히 탈색되고 야훼 신앙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 것이다.

결국 창세 1장은 단편적으로 흩어진 '고대 이스라엘의 탈신화 본문'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창세기 1장은 토라를 여는 본문으로 손색이 없고, 거대한 주변민족의 다양한 신화와 종교에 맞서 고유한

신앙을 지키려 한 고대 이스라엘의 신학적 프로젝트의 결론이라고 하겠다. 창세 1장은 고대 이스라엘

탈신화화의 헌장憲章이다.

 

제10강 달의 날과 해의 날 ㅡ 일주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안녕하세요? 성호경 같이 바치고 시작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일주일 동안 잘 지내셨어요? 자, 이번 시간은 이 강의의 열 번째 시간입니다.

열 번째 시간이고 달신을 마무리 하는 시간이라서 TV로 그 앞 시간을 보지 못하신 분들이

계실까봐 앞 시간을 제가 간단하게 정리해 드리고, 또 들으셨던 분들은 다시 한번 앞 시간을

되새기면서 새로 시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처음에 사실은 저희가 달신이니 하늘신이니 이런 거 하기 전에 도대체 평신도가 이런

공부를 왜 해가지고 왜 이런 거를 하게 되었는가 하는 거를 첫 시간에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이제 두 번째 시간부터 제가 이제 하늘신에 대해서 처음에 말씀드렸죠.

 

그래서 우리가 세 시간  정도 하늘신에 대해서 하늘신의 이모저모를 보고 또 구약성경 안에

하늘신에 대해서 보고 두 번째 신으로 달신을 보고 있는 겁니다. 달신에 대해서 이제 우리는

지난 세 시간 강의를 초 간단으로 아주 핵심만 뽑아서 요약을 하면, 달신은 고대 근동 세계

에서 굉장히 강한 신이었다.

 

* 지난 시간 강의 요약: 고대 근동에서 달은 최고신의 피가 흐르는 강한 남성신으로

  왕권의 상징이었다

 

음양의 전통이 있는 우리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전혀 다른 강한 신이었고

왕권의 상징이었고, 남성신이었고 또 달신 숭배의 중심지는 우르하고 하란이었다 하는

것이죠.

 

* 지난 시간 강의 요약: 달신 숭배의 중심지는 우르와 하란이었다

 

그리고 고대 근동의 역사에서 달신이 얼마나 중요한 역활을 했는가? 바빌론 제국  들어설 때

바빌론 제국 망할 때. 이런 것도 봤습니다. 하지만 북서 셈어를 쓰는 지역에서 즉 이스라엘

하고 비슷한 지역 거기서는 달신이 상당히 다른 신이었습니다. 대중적이기는 했지만 별로

힘은 없는 신이었어요.

 

* 지난 시간 강의 요약: 고대 이스라엘 등 북서셈어를 쓰는 지역에서 달신은 작은 신이었지만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신이었다

 

그리고 이제 고대 이스라엘은 그렇다면 이러한 달신 숭배 문화를 배경으로 해서 어떤 달신

숭배 문화가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로서 침투해 들어왔을까? 얼마나 많이 스며들어왔을까?
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아브라함이 거기 출신이고 또 하란에서 이렇게 경유

했었구나. 아마 아브라함도 여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상당히 이스라엘 초창기부터

달신 숭배 문화가 묻어 들어왔겠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고대 이스라엘의 구약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예를 들면은 수넴 여인 같이

어떤 지방에 있는 작은 여인이 대예언자 엘리사 예언자를 모시고 엘리사 예언자가 기적을

행하는 그런 이야기 사이에서 "어? 여기서도 역시 달신이, 초하룻날이 굉장히 중요했었네."

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요나탄의 우정을 이야기 하면서 그 이야기 대목에서도 역시 "아, 초하룻날

이스라엘 왕궁에서 그냥 지나가지 않았구나. 그날 특별한 식사가 있었고, 거기에 꼭 참석

해야 되는 뭔가가 있었구나." 하는 거를 우리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 성전에서도 왕궁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초하룻날 레위인들은

뭔가를 잘 지켜야 됐었다. 안식일도 잘 지키지만 초하룻날도 잘 지켜야 했었고, 그리고 기타

축일도 잘 지켜야 했구나. 이런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언자들의 말씀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너희들 축일만 겉으로만 그렇게 잘 나가면

안 되고 정말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어야 된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안식일과 초하룻날에

아무리 열심히 가면 뭐하냐?"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거를 여러 번 들었지요?

 

* 지난 시간 강의 요약: 수넴 여인 이야기와  예언자들의 문헌 등에서 보여지듯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달신 숭배 문화가 널리 퍼져있었다

 

그리고 아모스 예언자 같은 경우에는 안식일과 초하룻날 거기에 겉껍데기만 참여해 가지고,

몸만 참여해서 속으로는 이렇게 사람들 속이고 돈벌 궁리만 하고 있으면은 안 된다. 그렇게

하느님 믿으면 안 된다. 이런 말씀도 우리는 들었습니다.

 

그리고 호세아 예언자도 정말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셨고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 않고 이런 축일을 하면 아무 소용없다. 그런 축일

없애 버리는 게 낫다. 이렇게 약간 분노하시는 그런 말씀도 우리는 들었습니다. 그리고

달신 숭배는 유배 이전 뿐이 아니라 유배 이후에도 매우 중요했다 라는 걸 우리가 봤습니다.

 

* 지난 시간 강의 요약: 달신 숭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면면이 이어졌다

 

그래서 유배 이후에 에즈라기와 느헤미아기에서도 유배에 다 풀려 가지고 이제 "야, 우리

하느님이 정말 우리를 구해주셨구나. 회복시켜 주셨구나."라고 하면서 성전을 짓고 거기서

이제 전례 규정도 하나하나 다 옛날처럼 해서 다시 우리 조상들이 하던 거 그대로 우리 한

번 나라의 기강을 세워보자."라고 하는 그 과정에서도 초하룻날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

었구나라는 걸 알 수 있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딧 같이 아주 멋있는 여인이, 그리고 아주 경건한 여인인데  이 유딧이

안식일과 안식일 전날도 잘 지켰지만 초하룻날과 초하룻날 전날도 역시 잘 지켰다. 그믐날과

초하룻날을 다 잘 지켰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아, 생각보다 달신 숭배, 초하룻날이 이스라엘은 중요한 문화였구나. 그래서

이스라엘을 정말 제대로 잘 이해 할려면 이렇게 우리와는 굉장히 다를 시대에 살았던 그

사람들의 문화, 그 사람들의 생활방식, 그 사람들의 종교 이런 거를 좀 알아야 되겠구나.

해서 책 구약성경과 신들이 거기에 관한 책이었고요. 여러분들한테 설명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달신 숭배에서 자, 그러면 아무런 비판이 없었을까? 그냥 이걸 수긍하기

만 했을까? 유일신 신앙을 키워가던 고대 이스라엘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집트에서 우리를

탈출시켜 주신 하느님,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 우리를 선택 하셔서 우리하고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에 대한 그 신앙만큼은, 나라는 굉장히 작고 보잘 것 없었지만 그 신앙만큼은 굉장한

나라 사람들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나라가 막 없어지고 유배 갔다 와서도 역시 신앙은

지켜지고 있어서 결국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 그 신앙을 물려 받고 있는 거죠.

 

관연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과연 그냥 있었겠는가?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이스라엘에서 달신 숭배의 흔적을 웬만하면 없애버리자. 조금 더 지워버리

자. 조금 더 세련된 방법으로 극복하자. 이런 식의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

을 이번 시간에 여러분들한테 하나씩 차근차근이 또 성경 구절을 많이 예를 들어서 말씀드리

려고 합니다. 이번 시간은 저번 시간처럼 재미없지 않을 겁니다. 재미있을 겁니다. 더.

 

# 신명기계의 반(反) 일월성신 신학

 

신학적인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신명기계 길이고 하나는 제관계의 길,

창조신학의 길입니다. 신명기계의 길은 직접적인 경고, 창조신학은 조금 더 세련된 방법

으로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 고대 이스라엘에서 초하룻날을 중시하는 것과 같은 달신 숭배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신명기계 신학자들이 닦은 '신명기계의 길'가 사제계 신학자들이 닦은 '사제계의 길'

  두 갈래로 나타난다

 

그러면 첫째 길을 우선 보겠습니다. 첫째 길은 신명기계의 길, 한마디로 딱 부러지게 경고

하는 것입니다. "달신 믿지 마라"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스라엘에서

"달신을 절대로 숭배하지 마라"?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신명기계 학자들은 달신 숭배가

예루살렘 혹은 이스라엘 안에서 정통신앙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봤던 거 같애요.

 

* 신명기의 길은 달신 숭배를 이스라엘 신앙의 위협 요소로 인식하고 '직접적인 경고'로

  달신 숭배 자체를 금하고 있다

 

비록 문화적으로 우리가 초하룻날이 굉장히 습관적으로 가지던 거라서 그날을 기리면서

살기는 하지만 달신 자체만큼은 절대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 된다라는 그럼 메세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볼 사람은 오시아 임금입니다. 이스라엘 남왕국의 요시아

임금인데요. 요시아 임금은 아예 달신 숭배 자체를 뿌리 뽑으려고 했어요.

 

* 신명기 개혁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던 요시아 임금은 달신 숭배를 아예 없애려고 노력했다

 

달신 숭배를 섬기는 사제들을 다 잡아가고 이스라엘에서 다 불태워버리려고 했는데 요시아

임금에 대해서 강의니 만큼 잠깐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요시아 임금은 이른바 신명기

개혁의 선구자였어요.

 

* 요시아 임금(BC 640-609년): 남유다 임금으로, 야훼 신앙이 위기에 처하자 종교적 개혁을

  시도한 신명기계 개혁의 선구자였다

 

요시아 임금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드리면, 이제 다시 한번 이스라엘의 처지를 이야개 해야

되는데 이스라엘은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약소국이었어요. 그러니까 자기네 나라 힘으로는

큰 나라가 될 수가 없었어요.

 

늘 이집트나, 아시리아아, 바빌론이나, 히타이드나, 아니면 페르시아 같은 나라들한테 위협을

당하고 조공을 바치고 살았고, 그 나라들 사이에서 위치가 아주 절묘하기 대문에 그 나라들

딱 사이에 있기 때문에 교역을 해서 잘 살 수가 있었는데 만약에 이 나라들이 팽창을 해서

아시리아가 "내가 이집트를 치겠다" 이렇게 두 나라로는 못 살겠다. 그렇게 되면 마치 지금의

중국과 미국 비슷한 거죠. 큰 강대국 둘 사이에 딱 끼어 있으니까.

 

강대국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는 잘 살아요. 그런데 어느 한 강대국이 "야, 내가

이집트를 먹어야 되겠다" 그러면은 처음으로 정복해서 길을 터야 되잖아요. 그러면은

이스라엘을 쳐들어가야 되는 것이죠. 이집트 편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거기를 확보해 놔야지

걔네들이 오는 거를 막을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힘든 운명을 살았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변 문화를 많이 흡수하게 되었고

솔로몬은 특히 외교관계에 많이 힘을 썼어요. 다른 나라 공주들을 많이 데려다 결혼해 갖고.

그런데 그렇게 살다보니까 달신 숭배 문화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문화로서 이제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스라엘 안에 외국 신앙이 뿌리 내리게 되었어요.

 

점차점차로 외국 사람들도 와서 살게 되고 특히 외국에서 많은 공주를 솔로몬이 불러들였기

때문에 그들이 고국에서 살던 종교를 그대로 가지고 들어온 것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안에서

그런 점차점차 눈에 띄게 모르게 퍼져 나가는 외국 종교들을, 이방 종교들을 막아야 되겠다.

 

이스라엘이 작고 조그만 나라라고 해서 여러분들이 사실 기가 죽을 필요는 없어요.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큰 나라를 선택하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하느님

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일하시는 거 같애요. 인간의 눈으로 보면은 작고 미천한 존재를 선택

하셔 가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굉장히 큰 역사를 드러내시거든요.

 

보면은 예수님의 탄생도 마찬가지죠. 아이 낳을데가 없어서 마굿간 그것도 구유에 애를

낳을 수밖에 없었죠. 성모님도 마찬가지죠. 부유한 집안에서 잘 배운 이런 분이 아니라,

시골 처녀였었잖아요. 예수님을 키워 주셨던 아버지 요셉도 역시 시골의 목수일 뿐이셨죠.

그리고 우리의 역사에서, 구세사에서 보면 그렇게 작은 존재를 선택하셔서 큰 뜻을 드러내신

일이 굉장히 많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스라엘, 히브리 백성들을 선택하셨던 것도 바로 그런 거 같애요. 이집트 종살이

하는 백성들, 웬만하면 페르시아나 아시리아나 이렇게 큼직한 나라를 선택하셨으면 좋았을

거 같지만 그게 아니라 정말 굉장히 굉장히 작은 나라, 작은 백성, 그것도 땅도 굉장히 좁은

데다가 해 가지고 힘도 쓰지 못하는 그러한 백성들을 선택하셨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이렇게 된 것도 하느님이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일부러 또 그렇게

하셨을지 모르는 그런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 주제로 돌아가면, 이스라엘은 그래서 다른

나라의 문물을 많이 받아들였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나라의 풍습도 많이 따르고

살았고 그 결과 알게 모르게 다른 나라의 종교도 많이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래서 아, 이렇게 되면 안 되겠다. 외래 문물이 들어와서 우리나라 종교에 부작용이 있구나.

부작용을 극복해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한번 칼을 뽑은 임금이 요시아 임금이예요.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도 요시아 임금은 굉장히 중요하죠. 요시아 임금은 어떤 식으로 개혁을 할려고

했냐 하면, 야훼 신앙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성전을 중심으로. 그래서 지금의

구약성경의 틀을 만든 사람이죠.

 

* 요시아 임금은 외래 문물의 범람으로 신앙이 흐려진 이스라엘의 기강을 야훼 신앙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다시 바로 세우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요시아 임금은 옛날부터 하느님한테 충실했던 임금들의 역사,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시 썼어요. 그게 이른바 신명기계 역사서인데 여러분이 지금 구약성경의 신명기, 여호수

아기, 사무엘기 상. 하권, 열왕기 상. 하권. 그러면 거의 역사서의 반이 넘는 분량인데 이거를

쓴 집단이 신명기계 신학자들이예요. 그리고 그들을 지원해 줬던 사람이 바로 요시아 임금

이예요. 요시아 임금은 이스라엘의 종교를 위해서 굉장히 큰 일을 한 임금이죠.

 

우리가 지금 다윗의 역사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알 수 있느냐 하면, 그 당시 요시아 임금이

기록을 남겨 주서 잘 알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 우리나라 역사도 마찬가지지만 훌륭한

임금도, 훌륭한 조상도 필요하지만 그 조상의 이야기를 훌륭하게 기록하는 후손의 역활도

굉장히 중요하죠. 그렇지 않으면 후손이 알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다윗과 솔로몬을 읽으실 때마다 아, 이 이야기도 요시아 임금이 이렇게 다 정리를

해서 크게 일으켰기 때문에 된 것이라를 생각을 하시면 좋을 거 같애요. 그 정도로 매우

중요한 임금인데 요시아의 공이 참 큰 거죠. 그래서 요시아는 이스라엘 땅에서 이방신

숭배를 몰아낼려고 그랬어요. 그래서 요시아가 제일 강하게 대적했던 사람들은 바알을

믿는 사람들이예요.

 

* 요시아 임금은 이스라엘 땅에서 바알 숭배자들을 몰아내는데 힘썼는데 그 가운데

  일월성신 숭배, 곧 달신과 해신, 별신이 포함되어 있다

 

그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무슨 뭐 이런 신 믿는 사람도 쫓겨났다. 저런 신 믿는 사람도

쫓겨났다라고 많이 나와요. 열왕기에 보면, 그 중에서 어떤 신이 있냐 하면 해와 달과

별을 믿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을 다 쫓아냈다라고 요시아는 말합니다.

책 82쪽에 나와 있는데요. 제가 읽어드릴께요.

 

* 2열왕 23,5: 그는 또 유다 임금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둘레에 있는 산당들에서

  분향하도록 내세운 우상 숭배 사제들을 내쫓았다. 또한 바알과 해와 달과 별자리들과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분향하던 자들도 내쫓았다.

 

여기서는 되게 중요한 데요. 바알을 내쫓은 거는 당연하죠. 바알은 큰 적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들과 못지 않게 중요하게 취급되는 게 해와 달과 별자리와 하늘의 모든 군대예요. 저번

시간에 말씀드렸지만 달신은 달신 혼자로도 중요하지만 해, 달, 별 이렇게 삼신론으로,

세트로 다닌다고 그랬죠? 구약성경에도 그렇게 많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알과 해와 달과 별신들을 다 내쫓았다.

 

요시아 개혁의 청사진을 제공한 신학자 집단이 신명기 학자들이라고 여러분한테 말씀

드렸죠? 신명기에는 이런 개념이 있어요. 어떤 개념이냐 하면, 82쪽에 신명기 4장 19절에

나오는 것입니다.

 

* 신명 4,19: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어, 해나 달이나 별 같은 어떤 천제를 보고 유혹을 받아,

  그것들에게 경배하고 그것들을 섬겨서는 안 된다.

 

아예 직접적으로 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사람들이 왜 달신을 믿고 왜 해신을

믿었을까라는 걸 생각해 보면, 해나 달이 원래 인간을 이렇게 끄는 마음이 있어요. 여러분

도 아실지 모르는데, 제가 아는 어떤 개신교 목사님이신데 그분은 굉장히 훌륭한 신학자

신대 그분도 달을 이렇게 보고 있다가, 문득 큰 달을 보고 운전하시다가 그냥 이렇게 걸어

가신 적이 있대요. 달에 마음이 빼앗겨 가지고. 저는 그런 건 없거든요.

 

그런데 가끔 그런 분들 있어요. 달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고, 멍하니.  아마 그런분도 있고

하여튼 천체는, 좋은 감정이죠. 우리가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감정인데 그것을 갖고 잠깐

오해해서 신으로 모시는 그런 마음들이 있는 거죠. 신명기에 있는 구절 하나만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신명 17,3-5: 내가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해나 달이나 하늘의 모든 군대와 같은 다른

  신들에게 가서 그것을 섬기고 경배할 경우, 그 일을 너희가 듣고 알게 되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이스라엘에서 그런 역겨운 짓을 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너희는 그 악한 짓을 저지른 남자나 여자를 성문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

 

굉장히 쎄죠? 사형이예요. 사형. 신명기는 이 정도로 달신에 대해서는 아주 정확하게

원칙을 딱 세울려고 그랬어요. 그건 아마 우리 문화로 초하룻날을 섬기고 하는 거는

어쩔 수 없다. 그거는 우리 문화니까. 우리가 초하룻날 달신을 섬기지 않고 하느님을

섬기면 괜찮은 거지 뭐. 이렇게 생각했던 거 같은데 단 혹시라고 달신을 섬긴다라고

그러면은 사형을 시켜야될 정도로 중요한 범죄다.

 

이게 실제로 집행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가 우리가 알 수는 없고, 학자들도 많이 의견이

갈리지만 그 정도로 중요하게 중대한 범죄다라고 생각했던 거는 맞는 거 같애요. 신명기는

여기서 그만 읽어드릴 건대 이것 말고도 신명기계 본문에는 달과 해와 별을 믿지 마라.

또는 달과 별만 나오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성경을 읽으시다 혹시 그런 구절을 보시면

이제 이거를 떠올리시면 될 것입니다.

 

신명기를 봤으니까 예언자를 하나 보겠습니다. 예레미아 예언자를 보겠는데요.

대표적인 신명기계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신명기 신학과 사상이 아주 정통한

분이라고 하는데 예레미아는 제가 이 예언자 나올 때마다 여러분들한테 별명을 붙여

드리는데 왜냐하면, 외우기 쉽더라고요. 예언자가 워낙 많으니까 복잡하잖아요.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고.

 

예레미아 예언자는 비탄의 예언자라고 해요. 되게 슬픈 인생을 살가 가셨는데 때는,

예루살렘이 망하기 직전이예요. 예루살렘이 망하기 직전에, 나라가 망하기 전에는

다 혼란스럽잖아요. 다 모든 제도나 이런 것들이 잘 안 돌아가고. 그런데 예레미아

예언자는 거의 홀로 "이렇게 나가면 ?이 나라가 망한다. 하느님께서 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한테 예루살렘에서 제발 좀 잘 해라. 이렇게 하면 우리 망한다라고

사람들을 올바로 세우기 위해 가지고 매우 노력을 하셨어요.

 

그런데 임금도 말을 안 들어, 다른 사제들도 말을 안 들어, 보통 사람들은 더 말을 안 들어.

그래 가지고 "야, 이렇게 가면 너희들 망한다." 이렇게 경고와 함께 "제발 좀 이렇게 좀 안

했으면 좋겠다." 하는 비탄의 얘기를 거의 남겼어요. 나중에 역사가 흐르고 보니까 예레미아

예언자 말이 맞았어요. 그런데 그 당시 사람들은 그걸 다 이해하지 못했죠. 

 

역사는 결국 나라가 망하고 유배를 가게 되었는데 예레미아 예언자 개인의 생애도 매우

불행했어요. 아시리아나 이집트 모두 "아, 저 예레미아가 큰 인물이구나" 그래서 그 사람의 

목숨을 원한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시리아나 이집트에 잘 보이려고 예레미아

예언자를 납치해 가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올바르게 사셨는데 말로가 참 비참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별명을 비탄의

예언자다라고 붙여준 것이죠. 하지만 저번 시간에 제가 말씀드렸죠? 예수님 시대에 가장 큰

예언자 중에 한 분으로 예레미아 예언자를 꼽을만큼 지금도 굉장히 중요한 예언자죠. 

 

그리고 예레미아서를 보시면 그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예레미아 예언자가 하느님의 뜻을

얼마나 올바르게 전할려고 노력했는가라는 걸 여러분들이 알 수 있을 거예요. 예레미아는

어떻게 경고를 했냐 하면, 너희들 중에서 해와 달과 별을 믿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이렇게

얘기했어요. "그것을 섬겨 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라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그게 예레미아서 8장 2절인데요

 

*  대표적인 신명기계 예언자인 예레미아도 해와 달과 별을 섬겨 봤자 아무 소득이

   없이 죽으리라고 경고한다

 

* 예레 8,2: 그리하여 그들의 뼈는 그들이 사랑하고 섬기고 따라가고 붙쫓으며 예배했던

  해와 달과 하늘의 모든 군대 앞에서 흩어져, 다시는 거두어지거나 묻히지 못하고 땅

  위에서 거름이 될 것이다.

 

해와 달은 믿는 사람들은 시체도 다 거두지 못하고 당연히 부활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죽고

해나 달이나 별신들이 너희들을 구원해 주지 못한다. 이 소리를 지금 하고 계시는 것이거든요.

아마 굉장히 지독하게 달신 숭배를 믿었던 사람들이 일부 있었던 거 같애요. 결국 문화적으로

초하룻날을 중요시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신학적으로는 선을 분명하게 그어야 한다라는

게 구약성경이었습니다.

 

# 욥이 전해주는 고대 근동의 정서

 

여기서 제가 욥기를 잠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여기 욥기는 지금까지는 신학이었고 어떤

마음, 정서를 볼 수 있는 건데요. 달에 대해서 상당히 구약성경의 마음은 우리 한민족의

마음과는 조금 다르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욥은 의로운 사람이예요. 욥기는 잘 아시겠지만 욥은 매우 매우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인데

어느날 불행이 닥쳤어요. 욥한테. 그러니까 욥이 "하, 나한테 왜 이런 불행이 닥쳤을까?"

그런데 나는 정말 결백하다. 끝까지 자기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불행이 닥쳤다고 그래서

하느님한테 등 돌리지 않고 이유없는 불행이 닥쳤지만 불행을 이겨내고 자기 믿음을 이제

지킨 케이스죠.

 

이것 말고도 욥기는 굉장히 재미있는 신앙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고, 신학자들이 한번씩

씨름해야 하는 텍스트인데 여기서는 욥기가 주제가 아니니까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고.

만약에 다음 기회가 있으면 욥기를 한번 다뤄보면 좋겠지요. 어쨌든 욥은 계속 주장을

합니다. 나는 하느님을 믿었다. 하느님을 한번도 배신하지 않았다. 오직 내 마음은 그분

한테 있다. 평생을 결백하게 살았고, 한번도 나는 배신한 적이 없다.

 

나는 이것도 하지 않았고, 저것도 하지 않았고, 나는 이것하고 저것만 하였다. 이렇게 계속

자기를 강변하는 구절이 있어요. 거기서 어떤 게 있냐 하면, "나는 달신을 한번도 숭배하지

않았다"라고 욥기가 얘기해요. 욥이. 즉 이걸 잘 생각해 보면 욥 주변에는 달신을 믿던 사람

들이 아마 있었을 거 같애요.

 

그렇게 널리 퍼진 문화였고, 신명기계가 그렇게 강력하게 경고하니까 아마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겠죠. 그런데 욥은 "나는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책(구약성경과 신들)의 85쪽인데요. 잘 들어보세요. 욥의 마음을 생각해 보시면서.

 

* 욥 31,26-28:? 내가 만일 빛이 환하게 비추는 것이나 달이 위영청 떠가는 것을 쳐다보며

  내 마음이 남몰래 유혹을 받아 손으로 입맞춤을 보냈다면 이 또한 심판받아 마땅한 죄

  악이니 위에 계시는 하느님을 배신하는 일이기 때문일세.

 

이게 참 한민족의 마음하고 틀려요. 우리는 추석 때 보름달만 봐도 기분이 좋고 넉넉하잖아요.

괜히 배부르고, 정월 보름만 되도 좋잖아요. 우리는 달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민족이예요. 기본적으로. 달을 좋아해요. 특히 보름달을 좋아하는 민족인데 욥은 달을 보면서

"아, 나 저거 한번도 믿은 적이 없어!"라면서 걱정을 하고 있어요. 욥기 31,26-28입니다.

 

* 욥 31,26-28:? 내가 만일 빛이 환하게 비추는 것이나 달이 위영청 떠가는 것을 쳐다보며

  내 마음이 남몰래 유혹을 받아 손으로 입맞춤을 보냈다면 이 또한 심판받아 마땅한 죄

  악이니 위에 계시는 하느님을 배신하는 일이기 때문일세.

 

여러분 어떻게 느끼십니까? 참으로 구약성경의 종교심은 우리하고 비슷한 거 같다가도 역시

문화와 시대가 다른데서 오는 책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참 달라요. 한민족이라면 휘영청 떠가는

달을 보면서 막 감상에 젖어서 "거기다 대고 입맞춤도 할 수 있지. 이게 뭐 그리 하느님을 배신

하는 일인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요. 동양에서는 달이 다 좋아요.

 

시인 이태백 있죠? 옛날에. 월하독작, 달 아래 혼자 술 마시다가 호수에 비친 달을 보고 걸어

들어가 잡으려고 했다는. 달은 굉장히 운치 있고 멋있게 생각하는 그런 문화거든요. 여기는.

그리고 강강수월레나 정월 대보름처럼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도 모든 걸 다 달에 비춰서 하고

있는데  아, 이렇게 욥기는 다르구나.

 

어쩌면 ?우리가 하늘신 얘기할 때는 하늘신은 우리와 비슷했어요. 그죠? 달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많이 다르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구약성경과 신들)을 쓴

이유도 그거죠. 고대 근동의 고유한 마음이 있어요.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마음이 있어요. 그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서는 구약성경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 고대 근동 고유의 종교심을 헤아리지 못하고는 구약성경을 절대로 옳게 이해할 수 없다

 

그렇지만 고대 근동의 이 배경이 되는 마음, 배경이 되는 지식, 배경이 되는 상황을 연구하는

건 참으로 드물고 평신도들한테 이런 거 공부하는 기회가 아직까지는 많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예요. 다른 나라도 많이 없어요.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도 이

공부를 하는 학자들이 많이 없어요. 손에 꼽는 지경이거든요.

 

# 창세기의 길 - 닮은 피조물일 뿐

 

여러분은 지금 선진적인 강의를 듣고 계시는 것이고 평화방송은 우리나라에서 선직적인

방송국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 그렇게 생각하시죠? 좋습니다. 그러면 이제 첫 번째 달신을

경고하는 마음을 우리가 봤고, 이제부터는 두 번째 길 창세기의 길을 보겠습니다. 달신을

피조물로 만드는 길이죠. ?이게 더욱 세련된 길이고 더욱 더 창조신학에 맞는 길이죠. "하늘에

떠 있는 저 달은 신이 아니라 피조물이다. 하느님이 만드신 거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달신 숭배를 극복하는 다른 길은 달신을 탈신화하는 길입니다. 신이 아니라고, 그냥 물건이

라고 말하는 것이죠. 밤이나 낮이나 가장 밝은 빛은 우리 눈에 보이는 거적이 아니라 저것을

만드신 하느님이시다. 진정한 빛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저기에 두어서 저렇게

우리를 비추게 하신 바로 그분은 하느님이시다.

 

* 달신 숭배를 극복하는 또 다른 길은 달은 '신'이 아니라 그저 '피조물'일 뿐이라고 달을

  '탈신화'하는 것이다

 

시편 가운데 일부를 창조시편이라고 합니다. 시편을 여러 분류로 나누는데요. 탄원시편,

찬미시편, 등. 시편에는 탄원도 있고, 찬미도 있고, 성찰도 있고, 지혜도 있고, 하여튼 뭐

생사고락이 다 들어 있어요. 그래서 시편을 이렇게 여러 학자들이 나누기고 하는데 그중에

창조시편이라고 있는데 창조시편은 특히 하느님이 만드신 저 태양, 저 달, 저 하늘, 저 아름

다운 풀, 저 강, 이런 거를 찬미하는 노래들을 갖고 있는 게 창조시편이라고 그래요.

 

* 시편 가운데 특히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찬미하는 시편을 '창조시편'이라고 하는데 창조 

  시편은 '야훼 하느님이 하늘과 땅과 해와 별 등 모든 것을 만드셨다'고 고백함으로써 그것에

  깃든 강대국의 큰 신들이 야훼 하느님의 발 아래 굴복한다는 '고대 근동 세계관의 전복'을

  보여 준다

 

창조시편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나왔고, 몇천 년 전에 나온 시편이지만 지금 우리가 읽어도

우리 마음을 굉장히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그런 시편이라서 사실은 인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창조시편에 새로운 기능이 있어요. 우리가 이 시각으로 지금까지 봤었던 달신과 고대 근동의

신화로 이 맥락에서 보면 창조시편의 어떤 신학적 기능이 있는데 숨은 뜻이 있는 것이죠.

 

고대 근동의 큰 나라들, 이스라엘의 위협이 되었던 큰 나라들이 믿던 것들이 있어요. 달신도

믿었고, 하늘도 믿는 종족이 있었고 뭐 여러가지  믿는 종족이 있는데 이걸 모두가 다 하느님

이 만드셨다고 하는 건 이 모든 것보다 하느님이 더 우월하다는 말이예요. 아름답게 찬미하는

것과 함께 하느님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시다를 말하는 시편이기도 해요.

 

이스라엘은 나라는 작고 맨날 휘둘리고 ?별볼일 없는 나라였지만, 이 믿음 하나만큼은 대단

했어요. 큰 나라들이 전부, 저 제국들이 뭐 믿고, 뭐 믿고 하지만 하느님이 다 만드신 것이다.

이렇게 말해 버리는 것이죠. 창조시편은 약소국의 대단한 믿음을 전제로 한 시편이고 굉장히

담대한 시편이예요. 그런 면에서 곧 죽어도 우리 하느님이다. 우리 하느님이 다 만드신 거다.

이것이죠.

 

* "하느님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라는 창조시편은 약소국 이스라엘의 대단한 믿음을

  전제로 한 시편이다

 

먼 옛날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신 야훼 하느님, 그분만이 유일한 신이시고

저 제국의 거대한 신들은 비록 크게 보이지만 다 별 것 아니다라는 것이죠. 이 책(구약성경과

신들)의 8쪽에 있는 창조시편 몇 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 시편 8,4: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을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자, 여기서 이제 여러분이 시편을 들으시면서 지금까지 창조시편을 ?보시면서 여러분들이

"아, 창조가, 하늘이 참 아름답구나. 하느님이 만드셨구나." 이렇게 ?보실 수도 있고, "아,

저걸 믿는 저 민족보다 우리 하느님이 더 큰 신이로구나." 하는 걸 생각하면서 한번 들어

보세요.

 

* 시편 104,19: ?그분께서 시간을 정하도록 달을 만드시고 제가 질 곳을 아는 해를 만드셨네.

 

해가 맨날 똑같은 자리에 지잖아요. 동편에서 서편으로 지는데 어떻게 해는 자기가 서편으로

지는 걸 알까? 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셨으니까.

 

* 시편 136,9: 밤을 다스리라 달과 별을 만드신 분을.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여기는 달과 별만 나오죠. 해는 안 나오죠. 달은 임금이고 별은 군대죠. 이것 모두가 하느님이

제정해 주신 거다. 그렇게 때문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야훼 하느님은 달을 만드신 분이잖아요.

달보다 높으신 분이시죠.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왕권 신학의  달한테 시편 저자가 주문을 하는

거예요. "야, 달! 너 큰신인 거 같고 많이 널리 퍼진 인기있는 신인데 생각해 보면, 달이나 나나

같은 급이잖아. 우리 다 피조물이잖아." 그러니까 달한테 "하느님을 찬미하여라"라고 달한테

이야기 해요.

 

이건 우리는 지금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몇천 년 전의 이스라엘은 그런 생각하면 쉽지 않았어요.

왕의 상징이었고 널리 퍼진 그런 싱징이었던 달한테 "달아, 나와 함께 우리 하느님을 찬미하자.

달신아!"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죠. 그런 구절이,

 

*시편 148,3: ?주님을 찬양하여라, 해와 달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반짝이는 모든 별들아.

 

이거는 정말로 용기있게 말했던 겁니다. 아마 그 당시에는. 그리고 시편,

 

* 시편 121,5-6: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은 너의 그늘 네 오른쪽에 계시다.

  낮에는 해도, 밤에는 달도 너를 해치지 않으리라.

 

즉, 주님을 믿고 있으면 해도 달도 너를 해칠 수 없다. 주님이 더 크시다라는 것이죠.

창조시편은 이렇게 담대한 신학적인 언수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편을 보았으니까

이사야 예언자도 봅시다. 이사야 예언자도 이런 신학에 동참했는데요. 이사야 예언자는

해와 달이 우리를 비추는 것보다 하느님의 영광이 우리를 비추는 것이 훨씬 더 크다.

욥기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강의한 내용을 잘 염두에 두시면서 이 구절이 여러분 마음 속에 어떻게 들어오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이사 60,19: 해는 너에게 더 이상 낮을 밝히는 빛이 아니고 달도 밤의 광채로 너에게

  비추지 않으리라. 주님께서 너에게 영원한 빛이 되어 주시고 너의 하느님께서 너의

  영광이 되어 주시리라.

 

이제는 해와 달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비추이시는 것입니다. 욥기, 아까 달을 보고 이렇게

"나, 달신 안 믿었어요" 하는 그 욥도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한 적이 있습니다.

 

* 욥 25,3-5: 그분의 구대를 셀 수 있으랴? 누구 위에 그분 빛이 떠오르지 않으랴?

  하느님 앞에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리오?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결백하다 하라오?

  보게나, 달도 밝지 않고 별들도 맑지 않거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구약성경은 크고 작은 신들을 야훼 신앙을 바탕으로 탈신화

했습니다. 거의 모든 신들을 피조물이라고 한 것이죠. 이런 신학적 성찰을 집대성한 본문이

바로 창세기 1장입니다.

 

* 구약성경은 크고 작은 신들을 야훼 신앙을 바탕으로 탈신화 한다. 모든 신들이 다 야훼

  하느님의 피조물이라는 신학적 성찰을 집대성한 본문이 창세기 1장이다

 

이제부터 창세기 1장을 여러분이 굉장히 잘 아시는 본문이지만 다른 의미로 또 하나 새로운

의미로 여러분들한테 말씀드리겠습니다. 창세기 1장에 따르면 야훼 하느님이 삼라만상을 다

만드셨어요. 그분은 다른 어떤 신들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하시고 세상의 어떤

것도 하느님의 권능에 견줄 수 없다라는 것이죠.

 

* 야훼 하느님이 삼라만상을 다 만드셨다는 창세기 1장의 기록은 하느님이 다른 어떤

  신들보다도 우월하시고, 세상의 어떤 것도 하느님의 권능에 견줄 수 없다는 고백이다

 

더군다나 하느님이 첫 나흘에 만드신 네 가지 신이 있습니다. ?하늘신, 땅신, 해신, 달신.

이 네 신은 옛날부터 수메르 시대부터 대제국의 주신들이었어요. 이 네 신은 다른 잡신들

보다 훨씬 쎘어요. 요번 시간에는 달신만 보았지만 다른 해신, 땅신, 뭐 다 쎈 신들이었어요.

 

수메르 만신전 우리가 본 적이 있어요. 수메르 시대에 신들이 막 수천의 신들이 있어요.

그 신들이 크게 두 가지 계급으로 나뉘어요. 양반신 하고 천민신으로 나뉘는데 양반신은

오십 이예요. '아눈나키' 50신들. 그 50신들은 중요한 신들이예요. 그리고 나머지 저급신들,

잡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기기?' 신들이예요. 그러니까 이름 없는 신들도 있고 뭐 작은

신들은. 아눈나키 50신들 중에서 중요한 신은 일곱 신이 따로 정해져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곱신이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창세기에서 우리가 7일

동안 하느님이 만드셨는데 일곱이라는 숫자 자체는 히브리 사람들이 만든 게 아니예요.

그거는 히브리 사람들 이전에도 이미 일곱은 신성한 수였어요. 히브리 사람들은 그 일곱도

사실은 하느님이 만드셨다라고 해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죠.

 

이 일곱 신은 하늘, 바람, 산, 물, 달, 태양, 금성이었는데 일곱신의 리스트가 시대에 따라

바뀌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걸 보고 아, 이 시대에 어떤 신이 하나 빠졌다는 건 그 신이 믿던

도시가 정치적으로 몰락을 했구나. 이렇게 이해를 해요.

 

다른 신이 들어오면은 그 신을 믿던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또 힘을 얻었구나. 이런 식으로

이해를 해요. 어쨌거나 사람들이 일곱 신의 세트를 깰려고 하지는 않아요. 그걸 계속 전통으로

갖고 있어요. 상징수 그 자체는 수메르의 것이지만 창세기 1장은 이 일곱  신 전체가 7일만에

우리 하느님이 만드셨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저 피조물로 만든 것입니다.

 

* 창세기 1장은 세상의 운명을 결정하던 일곱 신들을 한낱 피조물로 만들어 그 권위를

  추락시켜 버렸다. 하늘'신'도 달'신'도 태양'신'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저 하느님의

  피조물이로 존재할 뿐이다

 

여기서 창세기 1장을 말씀드리면서 제가 히브리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신 믿는 거에 대해서 철저하게 탈신화했는가를 말씀드리기 위해서 창세기에서 말하는 일주

일에 대해서 좀 말씀드릴께요. 이건 약간 상징적이기도 하고 신학적이기도 하고, 신자들이

교양으로 알아두면 좋은 것입니다.

 

일곱 신들이 날마다 한 날씩 책임을 져서 오늘은 달신의 날, 오늘은 태양신의 날 이렇게 해

가지고 일주일 체계를 만든 건 수메르인들이예요.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33세기부터 있었던

사람들이고, 이스라엘은 이집트 탈출, 우리가 첫 시간에 봤지만 15세기로 잡든, 16세기로

잡든, 아브라함을 19세기도 잡든 여러 설이 있지만 적어도 천 년 이상 앞서는 사람들이예요.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거기에 문화를 만든 사람들이죠.

 

수메르 사람들은 그렇게 일곱 날마다 날에 하나씩마다 신의 이름을 붙여가지고 일곱씩 순환

되는 시스템, 일주일 체계를 만들었어요. 그것 자체는 원래 수메르 사람들이 만든 것이죠.

그래서 일주일은 수메르인들의 손에서 태어났습니다. 동양에서는 이 당시에 어떻게 했냐하

면, 열흘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열흘을 한문으로 열흘 순(旬)자를 써가지고

'순'(旬)?이라고 하죠. 그래서 첫 열흘, 3월 초순 셋째날, 이런 식으로 따졌죠. 우리는.

그럼 날을 알 수 있으니까.

 

그런데 수메르 사람들은 어떻게 따지느냐 하면, 일주일씩 7일 단위로 짤랐다는 거예요.

어쨌든 인간은 날이 워낙 많으면 그대로 알 수 없으니까 며칠 단위로 이렇게 짤라서 몇

주일이 지났다. 몇 순이 지났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았던 것이죠. 자, 수메르 사람들은

일곱 날에 일곱 신의 이름을 붙여서 살았다고 그랬죠? 이것이 로마 시대로 그대로 이어

졌어요. 그래서 로마 사람들까지도 일곱 신의 이름을 계속 바뀌지만 일곱 날 자체는

그대로 갖고 있었어요.

 

* 일곱 날마다 순서대로 '태양의 날', '달신의 날' 등 일곱 신들의 날이 순환된는 체계, 곧

'일주일'은 수메르인들의 손에 의해 태어났고 '7일 시스템'의 전통은 로마 시대로 이어졌다

 

그래서 처음 로마 시대때는 화요일이 먼저 있었어요. 화성의 날. 그래서 화,금, 수, 목, 월,

일, 토 이렇게 생겼어요. 그런데 그게 시대에 따라가지고 이제 신들의 순서도 바뀌고 막

이러면서 지금의 월, 월요일은 달신의 날이죠. 일, 일요일은 태양신의 날이죠. 이런 식으로.

영어로도 마찬가지예요. Sunday는 sun 태양이죠. Monday, mon이 옛날 달이죠. 영어로.

이런 식으로 일주일 체계를 갖고 살았죠.

 

그런데 만약에 날의 이름에 오늘은 달신의 날이다. 오늘은 태양신의 날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의 신학자들은 그것을 그대로 두지 못했어요.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 1주일의 이름도 그냥

지나가지 않았어요. 일곱 날의 이름에서 Monday, Sunday, 달의 날, 태양의 날, 이렇게 부르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이름을 붙였어요.

 

* 창세기 1장에서는 일곱 날들의 이름에서 신들의 이름을 모두 빼고 완전히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창세기 1장에서는 어떻게 부르죠? 기억나세요? ?창세기 1장에서는 '첫째 날'로 불러요.

날의 이름에서 신의 이름을 빼버리는 거예요. 혹시 월요일 그러면 또 달신 숭배가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 여러분 봤잖아요. 지금 혹시 또 오해할까봐 그래서 날의 이름에서 아예

숫자로 붙여버려요. 그리고 첫째 날, 그다음에는 둘째 날, 셋째 날 7일은 안식일. 7일째만

안식일이라는  쉬셨다고 해서 그래서 첫째, 둘째, 셋째 날, 그리고 7일째는 안식일 그렇게

쓰죠. 신을 그 이름에서도 생각할 여지를 싹 빼버린 것이죠.

 

* 일주일의 날들은 신들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야훼 하느님의 창조 행위 순서에

  따라 '첫째 날', '둘째 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세속화된 사회에 살고 있어서 월요일은 뭐 이런 신의 날이 아니다라고 살고

있지만 고대 세계에서는 안 그랬던 거 같애요. 이름을 그렇게 붙이면 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렇게 했던 거 같애요. 그래서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숫자로 이름을 붙이고

마지막으로는 안식일 그렇게 붙여서 일주일 체계가 완전히 완성이 되는 거죠. 수메르

시대부터 갖고 있었던 일주일의 체계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지만 완전히 야훼 하느님

신앙으로 다 완전히 새롭게 만든 것이죠.

 

그래서 이 시간을 통해서 계속 강조하지만 이제 인터넷이나 다른 학자들 보면은 구약성경에

고대 근동의 신화의 흔적이나 그 사람들이 믿던 풍습 같은게 많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구약

성서는 그 사람들이 믿던 신을 뭐 어떻게 카피한 것이다. ?짜집기 한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데 그거는 아니예요. 우리는 거기서 갖다 쓴 거는 맞아요. 이스라엘도 하나의 나라였으니까

거기서 갖다 썼고 문화를 누리며 살았는데 거기서 다른 신앙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 구약성경은 고대 근동의 다양한 신화와 문화와 많은 부분을 수용했지만 그것과는 다른

  신앙 곧 하느님 신앙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하느님 신앙을 표현하려고 그랬고요. 유일신 신앙을 표현할려고 했죠. 우리는 거기까지는

읽어줘야 되요. 거기까지는 정확히 봐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도 유태인들은 월요일,

화요일 이렇게 얘기하지 않아요. 1일, 2일 3일 이렇게 불러요. Sunday, Monday 이렇게

안 불러요. 롬 라션, 로션이죠. 그다음에 롬 셔네 이렇게 불러요. 무슬림도 그렇게 불러요.

이슬람인들도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다고 해가지고 태양신아, 달신아 이렇게 안 부르고

1일, 2일, 3일 이렇게 불러요.

 

* 창세기 1장의 전통에 따라 현대 이스라엘인들은 지금도 일주일의 이름을

  '첫째 날' '둘째 날' 로 부른다

 

그래서 현대 세계에서 요일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수메르 시대

부터 왔던 유럽을 통해가지고 전통적으로 우리도 따르고 있는 요일 앞에다 해, 달, 별의

이름을 붙였지요. Sunday, Monday. 우리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이렇게 부르는 것이 하나

있고, 하나는 숫자로 부르는 거에요. 1일, 2일, 3일 이렇게 부르는 것이죠.

 

로마의 후손들인 서유럽 국가들은 날의 이름을 그냥 뒀어요. 그 사람들도 이제 우리처럼

생각했던 거 같애요. Sunday, Monday 하더라도 우리는 하느님 믿으면 되니까 이렇게

생각했던 거 같고. 그 다음에 셈족 그러니까 이스라엘이나 무슬림들은 숫자로 쓰는 방식을

썼어요.

 

그런데 가톨릭 교회 중세 라틴어에서 일요일은 주일로 부르고 둘째 날, 셋째 날 이렇게

불렀어요.  훼리아 세꾼다, 훼리아 떼르지아 이렇게 불렀어요. 왜 그러냐 하면 창세기를

따라서 부를려고 한 거예요. 같은 유럽에서도 포르투칼하고 그리스에서는 아직도 그렇게

부른대요. 월요일, 화요일 부르지 않고, 1일, 2일 3일 불러요.

 

아시아에서는 어떻게 부를까요? 아시아에서는 한국하고 일본이 월요일, 화요일 하는 천체의

날을 따라서 부르고 베트남하고 중국에서는 1일, 2일, 3일 하는 성경의 방법을 써요. 사회주의

국가인데 거기서는 표준을 그렇게 정한 거죠. 그런데 지금 따지고 보면 그쪽에서 하는 게

성경의 전통에 더 맞고 우리는 서유럽의 영향을 받아서,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 이렇게 된

것이죠. 하여튼 일주일에 그런 의미가 있어요. 결국 창세기 1장은 단편적으로 흩어진 탈신화

본문을 앞에서 잡아주는 역활을 합니다.

 

* 창세기 1장은 단편적으로 흩어진 '고대 이스라엘의 탈신화 본문'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이제 지금  다음 시간에는 이제 바람신에 대해서 볼꺼예요. 성령, 바람

이죠? 바람신은 또 어떤 신이었나라는 걸 볼텐데 그런 식으로 이 책(구약성경과 신들)의

6가지 장에서 저는 다른 신의 것들도 많이 얘기했고 그렇게 달신처럼 많이 확산된 신도

있고 도 우리가 열심히 찾아봐야지 되는 신도 있고 여러가지 신들이 있어요.

 

창세기 1장이 성경 맨 앞에 배치된 이유는 이 모든 걸 다 잡아주려고 그랬던 거 같애요.

신학적으로. 처음에 하느님이 만드신 것이고 신은 없다는 것이고, 혹시 어떤 신의 흔적이

나오더라도 그거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믿으려고 쓴 것도 아니고 어쩌다

이렇게 들어온 것이니까. 문화로 묻어서 들어온 것이니까.

 

창세기 1장에서 약소국 이스라엘이 보여준 어떤 용기와 옹골찬 담력도 여러분들이 보시면

좋겠고, 창세기 1장을 더 깊게 들여다 보시면 그런 강인한 영성 그리고 그 당시의 국제 상황

에서 어떻게 또 이런 문서를 만들어서 이런 성찰, 이런 신학을 할 수 있었을까를 보시면 좋

겠고, 그리고 창세기 1장이 딱 앞에서 잡아주기 때문에 구약성경에 혹시 다른 신의 이름이

나오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구나 하는 것도 여러분들이 아셨으면 좋겠어요.

 

* 창세기 1장은 구약성경 전체를 여는 본문으로 손색이 없고, 거대한 주변 민족의 다양한

신화와 종교에 맞서 고유한 신앙을 지키려 한 고대 이스라엘의 신학적 프로젝트의 결론이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은 구약성경 전체를 열어 젖히는 대문 같은 본문으로서 굉장히 훌륭한

역활을 수행하고 있는 거예요. 굉장히 자기 제자리에 있는 것이죠. 고유한 야훼 신앙을

지키기 위해 가지고 딱 앞에 서 있는 굉장히 헌장 같은 책이예요. 훌륭한 본문이죠.

 

저는 지금까지 달신에 대해서 여러분들 하고 오랫동안, 4회에 걸쳐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이제 ?달신하고는 이별을 해야될 시간이 왔습니다. 달신에 대해서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를

굉장히 긴 이야기를 했고, 그동안 여러분들이 잘 들어줘서 고마웠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구약성경에서 달을 보시던, 길거리 가시다가 달을 보시던, 어디 시골에

가셔서 달을 보시던 달을 조금 다른 마음으로 느끼실 수 있을 거 같애요. 그리고 강의

마지막에 달을 보셔야 되요. 우리 동양의 오랜 전통에서, "달을 보셔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 안 된다."?라는 말 많이 하지죠? 제 강의도 그러면 어쩌면 손가락 중에서도

되게 작은 새끼 손가락 같은 강의예요.

 

제 강의를 보시면서 여러분들이 이 책(구약성경과 신들)도 읽으시고 또 구약성경도 읽으

시고 하면서 여러분들 신앙이 계속 증진되기를, 여러분 신앙의 증진이 바로 달이죠. 달을

직시하기기 바랍니다. 지금가지 강의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다음 강의 예고: 제11강 바람이 분다- 고대 근동의 바람신

옮겨온 곳: http://cafe.daum.net/bible100weeks

주원준 박사님 일하시는 곳: http://www.biblicu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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