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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06 조회수922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6월 6일 연중 제9주간 금요일
 
 
 David himself, inspired by the Holy Spirit, said:
The Lord said to my lord,
‘Sit at my right hand
until I place your enemies under your feet.’

David himself calls him ‘lord’;
so how is he his son?”
(Mk.12.36-37)
 
 
제1독서 티모테오 2서 3,10-17
복음 마르코 12,35-37
 
 
영국의 한 방송사에서 비인간화된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토론회를 벌였다고 합니다. 이 토론회의 열기가 뜨거울 무렵, 사회자는 흥분된 어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청자 중에서 자신이 진짜로 행복하다고 생각되시는 분은 왜 자신이 행복한지 방송국으로 지금 당장 연락을 해주십시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자그마치 3만 통 이상의 전화가 쇄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전화 중에서 그리 대단한 내용은 없더라는 것입니다. 즉, 대부분의 것들은 늘 우리 곁에 서 이루어지는 작고 소박한 행복들이라는 것이지요.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 식사가 행복하다. 땀 흘려 일 한 뒤에 갑자기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행복을 느낀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잠이 깨었을 때 행복하다. 어린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면서 행복함을 깨닫는다. 등등…….”

이러한 일들은 우리 곁에서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행복한 이유를 이 작고 소박한 것들에서 찾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의 삶이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불만족스러워도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우리들은 아주 자그마한 것에서도 또한 볼품없고 소박한 것들 안에서도 행복을 발견하고 힘을 다시 내어 기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행복의 기준을 작고 소박한 곳에서 찾지 않고, 크고 대단한 곳에서만 찾으려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가 없는 법이지요. 작고 소박한 곳에서 찾지 못하는 행복은 크고 대단한 곳에서도 당연히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현재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어떤 환경에 처한다 해도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라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다윗'은 이스라엘의 영웅이었지요. 이스라엘이 유일하게 주변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윗을 거의 신격화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율법학자들은 장차 올 메시아가 다윗 가문임을 내세우면서, 메시아를 드러내기보다 다윗을 드러내는데 주력하더라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 다윗은 그냥 평범한 이스라엘의 한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다윗을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지식에 매달려 살고 있던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것이었죠. 그들은 다가올 메시아에 대한 희망보다는 과거 다윗 시대의 향수만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기준으로 크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만 행복을 찾아나서는 우리들의 모습이 옛 영화만을 떠올리면서 ‘그때가 좋았는데’를 외치는 이스라엘의 모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닐까요?

자신에게 지금 주어진 이 시간을,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이것이야말로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길입니다.



내가 행복한 이유를 찾아보세요. 찾아보면 너무나도 많을걸요?





배려가 만든 풍경(박남준, ‘박남준 산방일기’ 중에서)

이런저런 일로 새해 들어서부터 자주 집을 비웠다. 일본은 일 때문에 갔었는데 한 방송국 사장에게서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런 얘길 들었다. 숟가락에 대한 이야기다. 그 사장은 말했다.

지금은 일본 전통 식생활에서 숟가락을 쓰는 문화가 없어졌지만 숟가락은 원래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일본에는 연꽃이 많고 일본인은 연꽃을 좋아한다. 숟가락은 그 연꽃잎의 모양을 따서 만들었고 이것이 한국으로 전파되어 중국까지 흘러갔다. 등등…….

문화란 서로 교류하는 것이다. 각기 그 민족성과 기후와 토양에 맞게 상호보완되며 저마다 독특한 꽃을 피우는 것이다. 방송국 사장의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좀 거슬렸다. 우리나라는 삼국 시대 그 이전부터 숟가락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제 것을 소중히 여기는 일본인의 자세는 본받을 만했다. 우리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옛것들이 잘 보존된 일본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 씀이 만든 아름다운 풍경이 오래 발 길을 멈추게 한 곳도 있었다. 쌀 집이었다. 잡곡, 쌀 등을 판다는 문구를 무릎 아래까지 드리운 쌀가게 앞을 지날 때 내가 길을 멈추고 기웃거리자 안내자가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쌀을 많이 사지 못하고 조금 살 때 주인과 얼굴을 마주치면 부끄러워할까 봐 저렇게 길게 천을 내려놓은 것이라고 한다.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 씀씀이인가. 일본에 머물며 그리 유쾌하지 못했던 몇 가지 일이 사르르 눈 녹듯 사라졌다.
 
 
Ernesto Cortazar--Profound Pa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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