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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광우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 이현철이냐시오 소장님
작성자신희상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05 조회수588 추천수7 반대(0) 신고

광우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십자가를 안테나로!

최근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에 대한 우려와 걱정으로 어린 양과도 같은 학생들까지 촛불을 들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시위에 참가하고 있자 뒤늦게 국무총리가 “정부는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시 하고 있다...”라는 담화를 발표하면서 산불 아니 촛불진화에 나섰지만 그들의 촛불시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이유를 ‘광우병보다 더 심각하고 치명적인 정부당국과 우리 사회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 때문이 아닌가?’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180도로 바뀌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들, 수입 식품에 대한 허술하고 무책임한 검역체계, 그리고 수입산 소고기를 한우로 속여 당당하게 파는 상인들...등으로 인해 이미 우리 국민들은 ‘뇌에 구멍이 생기고 비틀거린다는 광우병’ 못지않게 ‘마음에 불신의 큰 구멍이 생겼고 또 비틀거리기는 커녕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중환자 상태’는 아닐런지요?  아무튼 이번 일을 계기로 모든 국가 지도자들이 광우병이 안 걸리게 소도 사랑하고 국민들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이인옥님의 묵상글 <위대한 사랑이여!>와 영화 ‘굿 윌 헌팅’을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위대한 사랑이여!(요한 21, 15-25 묵상) / 이인옥>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시어 세 번씩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대목은 영화 '굳 윌 헌팅'을 연상시킨다. '윌 헌팅'(맷 데이먼 분) 은 고명한 수학 교수들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단숨에 풀어내는 천재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물론 이 세상 어느 것에도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불행한 청년이었다. 무언가 그의 마음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있을 것 같았다. 마침내 수학과 교수의 도움으로 심리학 교수 숀(로빈 윌리엄스 분)을 만나게 된 윌 헌팅. 늘 냉소적이던 윌이 결정적으로 마음을 바꾸게 된 인상적인 장면이다.

윌이 어린 시절 양부에게 매일밤 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된 숀 교수는,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윌은 정신 심리학 책들은 환히 꿰뚫고 있다는 듯, "안다"고 대답한다. 또 다시 숀은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었다!” 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 윌도 역시 '잘 알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숀은 마치 못 들은 사람처럼 윌의 눈을 들여다보며 똑같은 말을 다시 해준다. 이에 알고 있다며 신경질을 부리며 대답하는 윌. 그래도 숀은 그치지 않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같은 말을 한다. 윌은 숀 교수에게 마구 덤벼들면서 '안다'고 하다가 이윽고 그의 품에 안겨 흐느낀다. 그로부터 윌은 새롭게 태어난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자기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능력을 자신과 사회를 위해 쓰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무엇보다 윌이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가장 감동적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없는 동안에, 베드로가 대신 목자가 되기를 원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양’이라고 지칭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백성에게는 ‘지도자’가 필요하지만, ‘양’에게는 ‘목자’가 필요하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탁월한 지도력, 명석한 두뇌, 앞날을 예측하는 통찰력들이 필요하지만, ‘목자’에게는 그런 것보다 우선적으로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사랑이 필요할 것인가?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양들 하나하나를 잘 알고 있는, 우리 밖에 있는 양들까지도 모두 한 우리로 모아오는 사랑이다. 즉 헌신적인 사랑, 세심한 사랑, 경계를 뛰어넘는 큰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그 사랑은 양들 상호간에 일치를 이루는 가장 강력한 접착제이며, 공동체 안에 넘치는 사랑은 결국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와 ‘필로’가 함께 쓰여졌다.) 그러므로 최 일선에 서있는 목자는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양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무엇보다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세 번의 사랑 확인은 그래서 사랑에 사랑을, 그 사랑에 더한 사랑을 보태야 한다는 것, 결국 다함없는 사랑으로 넘쳐흐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베드로 자신부터, 사랑의 상처로부터 회복되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일종의 심리 치료를 해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요한의 아들, 시몬" 이라고 부르신다. 이는 베드로라는 이름이 주는 공적 사명과의 연계성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친밀함의 관계 속으로 부르시는 것이다. 참된 목자이신 주님이 시몬이라는 양의 모든 것을 낱낱이 알고 그를 치유시켜주시기 위해 부르시는 것이다.

한번이 아니라 두 번, 두 번이 아니라 세 번. 알고 있지만, 또 묻고, 다시 또 묻는 이유는,주님께 그 사랑고백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바로 베드로 자신에게 절실히 필요했다. 그도 주님 앞에서는 치유 받아야 할 한 마리 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베드로의 가슴 깊이 묻어둔 배반의 앙금을 말끔히 풀어주신다.

마치 숀 교수가 윌에게 몇 번씩 확인을 받음으로써 그저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피부로, 전 존재를 통해 스스로 확신할 수 있게 해준 것처럼. 여기서 또 한 가지, 베드로가 세 번의 사랑 고백 후에야 비로소 양을 맡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눈여겨본다. 맨 처음의 부족한 대답 후에도 이미 그분의 양들을 맡았다. 즉 풍성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주님의 양을 맡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완전히 치유된 사람만이 목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이 세 번의 사랑 확인은 어쩌면 일순간에 일어나는 고백이 아니라,목자가 된 이후, 일생을 두고 추구해나가야 할 고백일지 모른다.

베드로 역시 '주님의 양'들을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 내어놓는 완전한 사랑을 보여준 목자가 된 것은 마지막 순간에서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네로의 통치기간인 서기 64년경에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그는 예수님과는 자세를 달리하여 거꾸로 매어달리겠다고 자청했다한다.

오늘 나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는 주님의 눈길을 만난다. 거듭 거듭 물으시는 그분을 마주하고 “예! 사랑합니다.” 하고 자신있게 나의 전존재를 걸어 그분 사랑에, 이웃 사랑에 응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위대한 사랑이여! 두려움 없는 사랑의 힘이여!

그 사랑의 힘이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기적을 일으키소서.  (출처: 굿 뉴스 묵상방)

 


 
<영화 ‘굿 윌 헌팅’>

윌 헌팅(맷 데이먼 분)은 미국 MIT 공대의 교실 바닥 청소부이다. 그리고 밤이면 친구들을 만나 놀러 다니는 일이 전부. 술집에 가면 주로 잘난 척하는 대학생들과 시비가 붙는다. 자주 싸움을 벌이고, 따라서 폭력전과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그는 늘 책을 읽는다. 그리고 모두를 기억한다. 그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수학과 화학.

어느 날 공대의 램보 교수가 학생들에게 풀어보라며 낸 수학문제를 청소하다 순식간에 그는 풀어낸다. 윌은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고, 복도의 칠판에 그 해답을 써놓는다. 램보 교수는 문제를 푼 학생을 찾기 위해 수소문을 하다가 법정에서 그를 발견한다. 그는 다시 폭행죄로 붙잡힌 것이다. 램보 교수는 윌을 석방시켜주는 대신 두 가지 조건을 내세운다. 한 가지는 자신과 함께 수학 연구를 할 것. 다른 하나는 정신과 의사에게 심리치료를 받는 것이다. 풀려난 윌은 수학연구에는 기꺼이, 램보를 '살리에르의 고뇌’에 빠트리게 할 정도로 참가하지만 상담치료는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정신과 의사들보다 윌이 훨씬 고수여서 그들을 갖고 노는 것이다. 이에 마음이 다급해진 램보는 대학시절 룸메이트였던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 분) 교수에게 윌을 부탁한다.

윌이 숀과 처음 만나던 날, 윌은 오히려 숀 교수의 상처를 들추어내 그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하지만 숀은 이런 윌의 모습을 보고 윌에게 진정으로 부족한 것이 타인의 관심과 따뜻한 사랑이며 그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관계로 정신적 성장에 엄청난 장애를 겪고 있음을 간파한다. 즉 고아였던 그는 5번 입양됐었지만 3번이나 양부모들의 학대로 인해 강제 파양 되는 상상하기 힘든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윌의 유일한 희망은 심리학 교수인 숀 맥과이어. 그리고 숀은 윌이 가진 내면의 아픔에 깊은 애정을 갖고 관찰하면서 윌에게 인생과 투쟁하기 위해 필요한 지혜를 가르쳐 주고 계속적인 숀의 관심에 윌은 그동안 굳게 닫았던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성서묵상>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요한 21, 17)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 http://hompy.dreamwiz.com/hl1y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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