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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22 조회수460 추천수2 반대(0) 신고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9, 41 - 50 )

 -유 광수신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잔이라도 주는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그 소금을 짜게 하겠느냐? 너희는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

 

우리는 앞의 복음에서 제자들이 길에서 "누가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서로 논쟁하는 것을 보았고 또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가 그가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듣고 "막지 마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 안되는가?  제자들의 생명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이유는 제자들의 신원이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 살 수 없다.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고 어디엔가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 소속감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에 하나이다. 소속감이 없을 때 인간은 외톨이가 된 느낌이고 끈 떨어진 망아지처럼 방황하게 된다. 인간이 어디에 소속되어 있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신원과도 같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을 말한다. 즉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다."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 "내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다"라는 것보다 더 명예로운 것이 있는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말과 같다. 자연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 세상의 것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으로 살아가고, 하느님의 것을 위해서 살아가고, 하느님과의 친교를 나누고, 하느님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내가 누구의 아내, 누구의 남편이라고 하면 서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요 모든 것을 서로 공유하고 함께 권리를 갖고 함께 책임을 지고 함께 가정을  가꾸어 나가는 관계이다. 나 없이는 상대방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요,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서로 서로를 사랑해주는 존재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하느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사제나 수도자가 신자들로부터 그래도 존경을 받고 사랑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신분 때문일 것이다. 사제나 수도자의 신분에서 벗어났을 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오히려 손가락질 하고 비웃을 것이다. 왜 그런가? 외적으로 드러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위대한 신분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사실 한번 세례를 받았으면 누구나 다"그리스도의 사람"이요, 영원히 "그리스도의 사람"이지만 적어도 겉으러 드러난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신분이 참으로 영광스러운 신분이지만 한편 얼마나 책임있는 신분인지 모른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신분은 단순히 사제나 수도자의 옷을 입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신자"라는 이름만 가지고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사랑받고 존경받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신분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고 생활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을 때 일반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사제가 또는 수도자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이 그럴 수 있는가?"라고 말한다. 그 사람의 개인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사제, 수도자, 그리스도인"이라는 보통명사를 사용한다. 왜 그러는가?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잘못된 행동은 내 개인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또는 교회, 사제, 수도자, 그리스도인" 전체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고 행동할 때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사람답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과연 내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즉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아, 저 사람은 사제이기 때문에 수도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어딘가 좀 다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점이 있는가?

사제나 수도자나 그리스도인은 다 같이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사제나 수도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그리스도다워야 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더 많이 풍겨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교회 안에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구분하는 것은 신분상의 구별이요, 자기 역할의 구분이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소속감 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신분을 구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교회 안에서 공동선을 위해 각자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이고 주어진 사명이 다르다는 것이다. 성직자 수도자이기 때문에 평신도보다 더 그리스도다워야 하고 평신도는 성직자 수도자보다 덜 그리스도다워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가끔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성직자 수도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하고 평신도는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착각, 성직자 수도자는 평신도보다 반드시 모든 면에서 더 거룩해야하고 더 그리스도다워야 하고 평신도는 성직자 수도자 보다 덜 그리스도다워도 된다는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이는 너나 할 것이 없이 다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다워야 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야 한다. 다만 교회 안에서는 각자의 위치와 각자의 역할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그리스도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해야할 의무가 있다. 즉 "우리는 하느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고린후 2,15)라고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야 할 사람들이다. 우리 교회가 사제는 사제로서 수도자는 수도자로서 평신도는 평신도로서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있다면 우리 교회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정의와 평화 사랑과 겸손의 향기가 넘칠 것이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되돌리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도록 하여라."라고 말씀하신 대로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한다. 어쩌면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되돌리겠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는 "사제의 맛 수도자의 맛, 그리스도 신자의 맛을" 많이 잃어버리지나 않았는지 모른다. 또 한편 우리가 묵상해야 하는 것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남에게 무슨 말을 하고 행동을 할 때 상대방을 보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중요하지 상대방의 태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말하고 행동을 했으면 비록 물 한잔이라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주었다면 그리고 상대방을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했으면 그 복은 내가 받는 것이다. 복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다. 복 받을 일을 했을 때 복을 받는 법이다. 상대방이야 어떻게 대하든 내가 상대방을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물 한 잔이라도 주었다면 그 상은 내가 받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항상 복을 전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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