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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목숨이 위태로울 때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16 조회수529 추천수8 반대(0) 신고

   

 

 

엊그제, 잘 모르는 어떤 자매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에 특강을 했던 본당 사무장님이 먼저 전화를 주셨는데,

자기 본당에 신뢰할 만한 분이 있는데,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하면서 

그분이 꼭 나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해서 번호를 가르쳐주었다고 양해를 구했다.

 

잠시 후, 전화가 울렸다. 

성호를 긋고 우리의 통화에 주님이 함께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전화를 받았다.

 

40대 초반의 두 자녀를 둔 자매인데, 암에 걸린지 일년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부터 다른 곳에 전이가 되어 있던 차라서 수술을 못했다고 한다.

전이된 곳만 수술하여 떼어내고, 그동안 항암 치료를 8차례 하고 있는 중인데

며칠전 또 다른 부위에 전이된 것을 알게 되어 마음이 몹시 심란하다고 했다.

 

울먹울먹하며 간신히 이야기하는 것을 조심스레 듣고 있자니

내 마음도 심란하기 이를데 없었다.

 

예전의 내 경우를 떠올리면서 그때 무엇이 가장 힘들었던가 반추해보았다.

무엇보다 목숨에 관한 불안이다.

 

목숨! 

엄청나게 중요하다.

목숨을 잃는다면 세상을 다 잃는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

 

냉정히 생각해보면 내 목숨은 나의 것이라 할 수가 없다.

큰 병이 들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남은 힘을 다 쏟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내 것으로 붙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목숨(생명)의 문제는 그분이 알아서 하시도록 맡겨 드리고  

나는 작은 일들, 내가 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빨리 포기하고 체념하자는 말이 아니다.

공연한 불안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받고, 없는 힘을 소진하지 말고

주님께 의탁할 것은 하면서, 남은 힘을 유용하게 쓰자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질병, 그 자체보다도 

두려움과 불안이 더욱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그렇다면 우울, 두려움, 불안, 초조, 근심, 신경증 같은 필요없는 짐보따리를

모두 하느님께 맡겨버리자는 것이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나의 경우, 내 목숨에 관한 일도 큰 걱정이었지만,

내게 맡겨진 자녀들의 장래, 안위에 대한 것도 큰 문제였다.

아이들만 생각하면 더 마음이 우울해지고 슬퍼졌었다. 

 

그러나 마냥 슬프고 안타깝고 미안하기만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슬픈 일은 미리 생각하지 말자고 고개를 돌릴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게 될 만일의 경우를 적극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아이들이 기억할 엄마의 모습을 미리 생각해보고

앞으로 어떤 정신적 힘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장차 아이들을 누가 돌봐줄까, 어떻게 이 아이들이 먹고살까 하는 것만 생각지 말고

그애들의 과거의 상처를 아물게 해주는 일에 더 관심 써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미래는 나와 함께 할 수 없지만, 과거는 분명히 그들과 내가 함께 있었다.

그러니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손상된 과거의 복구이다.

 

사실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받았던 기억, 건강한 정신적 유산으로

사람들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껏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있었다면

그것을 풀어주어야 하는 것이 남은 시간의 할 일이라는 것이다.

 

용서와 화해, 신뢰 회복과 사랑, 이러한 것들이 예수님의 일, 복음의 일이 아닌가.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이라는 말은

바로 여지껏 놓치고 지나갔던 그런 중요한 일에 죽기살기로 매진하라는 말이 아닌가.

 

 자매는 첫 아이에게 상처를 많이 준 것 같았다.

둘째 아이는 생각만해도 애틋한 마음이 우러나오는가 보았다.

나는 첫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쏟아주시라고 권했지만

그분은 아직도 자꾸 둘째 아이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상처받은 자녀의 편에 서서, 그 아이를 이해하고 화해하려고 기도하다 보면

그 자녀는 물론 자기 자신부터 엄청난 은총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그 은총의 체험이 질병을 이겨내는 데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내 경험이었다.

 

자매는 한참 눈물을 흘렸다.

잠시 잠시의 침묵 안에서 나는 자매의 눈물이

그동안 자매의 가슴을 눌러놓았던 우울과 근심,

마음안의 온갖 불순물들을 모두 떠내려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하여 몸이 점점 좋아지고, 치유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자매가 다시 회생하여 주님을 찬미하고

자기에게 되돌려진 생명을 보람있게 쓸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힘들 때,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기도를 약속하며 전화를 끊었는데

자매의 목소리가 조금은 밝아진 것 같았다.

 

 

요즈음, 이상하게도 아픈 사람들, 경제적으로 힘겨운 사람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자주 전화를 준다.

 

나역시 제대로 살고 있지도 못하고,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알지도 못하고,

이럴 때 심리학을 공부했다면 훨씬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성실하게 말 상대가 되어 주고

같이 기도해줄 뿐. 별다른 묘수를 알지 못해 답답하다.

 

오늘 아침 기도 시간도,  자매가 떠올랐다.

자매가 자기의 목숨을 의연히 하느님께 맡기고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정을 찾기를,

주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이미 간직하고 있음을 믿기를,

죽으면 살리라는 가르침을,

작은 목숨을 내려놓고 큰 목숨을 얻으라는 복음의 권고를 

잘 받아들이고 실천하기를 두 손 모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극적으로 회생할 수 있기를 가장 절실히 기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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