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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예수님은 당신의 멍에가 가볍다고 하시는가?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12-07 조회수269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을 묵상하거나 읽으면 많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반신반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미 예전부터 나 자신도 그렇게 했으니 말이다. 다만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잘 와 닿지가 않아서 그렇지 부인은 하지 않는다. 어제도 역시 점심 때 간단히 스마트폰으로 오늘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잠시 보고 오후부터 틈틈이 묵상했다. 묵상 주제는 멍에였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설령 멍에라는 게 아무리 새털처럼 가볍다고 해도 멍에는 어디까지나 멍에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새털처럼 가볍다고 해도 새털만큼의 무게만큼은 더 무겁다고 해야 하는 게 정상적일 것이다. 그런데 어찌 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멍에가 단순히 가볍다고 하시는지? 지금까지 얼마나 이 복음을 개신교 때부터 수도 없이 본 말씀이지만 왜 그때도 그랬고 오늘 이전까지도 그냥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으니 당연히 그저 ‘ 좋은 말씀이다 ’ 이 정도의 선에서 가볍게 지나가며 봤는지 모르겠다. 


바로 해답은 오늘 복음에 이미 다 있는 걸 이제야 발견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예수님의 멍에는 편하고 가볍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단순히 그렇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수준에서 머물면 안 될 것이다. 예수님은 배워라고 요청하신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건 그냥 해서 되는 게 아니고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은 몸에 익숙할 때까지 수차례 반복을 해야만 하는 과정이 수반되는 것이다. 원래 학습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그냥 몇 번으로 끝나면 굳이 배워라고 요청하실 것까지 있으셨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결국 우리는 예수님의 멍에가 예수님 당신은 가볍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말씀만 그럴 뿐이지 사실은 십자가인데 우리에겐 그저 단순히 가벼운 멍에라고 거짓이라고 하기까지는 무리지만 조금은 억지 아닌 억지 말씀처럼 여길 수 있는 부분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해왔으니 그랬던 것이다. 그렇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에게는 이때의 온유와 겸손은 인간 세상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온유와 겸손의 개념도 포함하겠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온유와 겸손은 그런 개념을 초월한 개념이 되어야 어쩌면 오늘 복음이 가슴에 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겸손만 놓고 묵상을 해도 답이 나올 것 같다. 지금은 대림시기이다. 다시 우리는 예수님을 이 세상에 모시려고 기다리는 시간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하늘옥좌를 떠나 육을 입고 있는 한 시골 처녀의 몸을 빌려 말 구유에 오셨던 것이다. 그렇게 강생하신 것이다. 강생의 단어 라틴어의 어미는 ‘살 안으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신다. 지난 주일 때 주임신부님의 강론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바로 그렇다. 하느님이 인간의 육체 속으로 오신 것 그 자체가 바로 겸손이신 것이다. 바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가야 하는 것처럼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미 천상을 떠나 죄악으로 물던 이 낮고 낮은 곳으로 임하신 그런 겸손을 배우고 익힐 때라야만이 예수님의 멍에가 가볍고 편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그런 말씀이 자칫 잘못하면 공허한 메아리 같은 말씀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묵상해본다면 오늘 복음이 진실로 우리의 가슴을 메아리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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