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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08 조회수571 추천수3 반대(0) 신고

 성경은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요한 5:39)."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시고, 우리의 "왕"이시고, 우리의 "주인"이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 해서 다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을 가지신 "하느님"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된 "천사"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현존해 계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견해가 "그리스도의 형제들(Christadelphians, 콜로새 1:2를 토대로 19세기에 영국과 북미에서 만들어진 공동체)"이 갖고 있는 견해로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느님으로 존재하지 않고 처음으로 스스로 태어난 한 "사람"이다. 성경을 아는 그리스도인이면 이들의 잘못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靈)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1요한 4:2)."하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예수님께서 육화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예수님이 육화된 하느님"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고 있다.
또 요한 복음(1:1,14)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이를 보면 요한 복음 저자는 예수님이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사람이 되고, 말씀이 하느님이므로 예수님은 육화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삼단 논법은 지극히 간단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형제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팜플렛에서 "말씀"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그 12페이지에 요한 복음 1장 1절의 말씀에 대하여 "그리스어의 '말씀'은 '로고스(logos)'이다. 로고스는 내적인 생각이나 논리의 외적 표현이며, 생각이나 지혜 그리고 신념을 설명하기 위하여 하는 '말'을 일컬었다. 성경의 가르침은, 태초에 하느님의 목적, 지혜 그리고 계시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선언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신(神)을 인간에게 드러내 보이기 위하여 등장시킨 "하느님"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뜻이 나에게는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 말씀의 뜻이 생각났다. 나는 이렇게 해석해 보았다. 가톨릭교리에 어긋나지 않았으면 한다.
 
 태초부터 하느님이 계셨다.그러나 아무도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는 하느님을 본 사람은 살아남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하느님에 대한 말만 무성하였다. 그리고 많은 신(神)들이 등장하였다. 당연히 아무도 그 신들을 보지 못했다. 여전히 말만 무성하였다. "말씀"보다 율법이 위에 있었다.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말 그대로 꼴불견이었다. 예언자들을 보내시고, 홍수를 일으켜도 보시고 재앙을 일으켜 보시는 등 율법보다 하느님이 무섭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무던히 애를 많이 쓰셨다. 그래도 안 되었다.구제 불능이었다. 어여삐 여기시던 백성들을 구원해야겠다고 결심하시고 "살을 가지신 하느님 즉 예수님"을 파견하셨다.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것"이 태초부터 있었던 "말씀"이었지만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처음으로 그 "진리"를 "예수님의 행동"으로 드러내 보이셨다. 말보다 몸으로 표현해야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을 취한 '말씀'"을 우리들에게 보내셨다. 그분은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외아드님이셨다. 그러나 거의 무위(無爲)로 끝날 판이다. 최후의 심판 날을 아직 정하시지 못했을 뿐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요한 17:2)."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라는 것을 알고, 하느님 아버지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살다가 죽고 난 뒤라도 영원히 이름이 기억되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우리들의 생명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죽고난 뒤에도 하느님은 영원히 계시며, 우리들이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 살면 우리들의 이름이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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