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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라지가 밀이 될 수 있는 까닭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02 조회수450 추천수8 반대(0) 신고


땅에서 많은 소출을 내었다”

이 말씀에 연결된 비유가 있다면 씨앗에 관한 비유들이다.

특히 마르코 4장 26절이하에 나오는 비유는 오늘 복음의 부자에게 그대로 들어맞는

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

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마르 4:26-28)

 

부자가 많은 소출을 거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해주었

기 때문이다.

소출은 우리가 내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내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하게도, 그 소출에 손을 대고 결실을 거두는 일은 우리에게 주

셨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제, 신평성당 청년캠프에 초대되어 구룡계곡이란 곳엘 다녀왔다.

그런데 벌써 벼에 이삭이 패고 있었다!

인간이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을 자주 느끼지 못하게 된 까닭은 농사짓는 일을 그만

두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은 책에서만 읽을 수 있는 말이 되었다.

국민 각자가 어떤 농사라도 짓지 않으면 건강보험에 들지 못하게 하거나,

자동차를 이용할 수 없게 한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마구잡이로 아파트가 지어지거나

시멘트 도로가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이 아니라 부자천하지대본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참으로 자그마한 씨를 뿌렸는데 싹이 났고,

그렇게 싹이 난 모를 넓은 논에 옮겨 심었더니 이렇게 엄청난 소출이 나오는 것을

 본다면

어찌 신의 손길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계곡에 자리잡은 팬션에는 각종 과실나무가 무성했는데 아름드리 호두나무가 흐드

러지게 열매를 맺고 있었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계곡엔 각자가 가져온 수박이며 참외가

시원한 물에서 냉수욕을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 속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누구든지 힘차게 활동하고 있는 하느님

의 섭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그 섭리의 결실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벼이삭을 거두고 수박과 참외와 호두를 따고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면 되는 것이었

다.

그렇게 하느님은 당신 솜씨의 좋은 결실들을 당신이 누리기전에 먼저 우리가 누리

게 하셨다.

그렇게 해서 당신은 우리를 통해 그 결실을 누리실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들을 통해 당신 솜씨의 결실을 거두고 누리신다.”

이것은 진실이다. 씨앗이 저절로 열매 맺는 까닭이다.

그만큼 우리가 받은 은총이 클 뿐만 아니라 책임도 큰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복음의 부자가 해내지 못한 챔임이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을 통해 하느님께서 당신이 내신 소출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방해한 것이었다.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자!”고 했지만 부자는 그것을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고

 저 혼자만 누릴 작정이었던 것이다.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았기에, 다시 말해서 그분과 단절되었기에 그 결과 역시 그

분이 주시는 생명의 단절로 이어졌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결국 오늘 복음의 부자는 가라지였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

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마태13:37-39)

 

세상의 모든 수확, 결실, 열매는 우리가 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내 주시는 것

이다.

그 열매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지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씨앗을 심었을 뿐이고 기껏해야 돌발을 일구거나 거름을 주는 것 뿐이

었다.

근본이 되는 땅이나 비도 하느님이 주신 것이지 우리가 마련한 것은 사실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그 모든 결실을 우리가 거두고 즐기게 하셨다.

 

우리가 거둔 수확을 즐기는 일의 첫 번째 단계는 “쌓아두지 않는 것”이다. “소

유하지 않고 나누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쌓아두기를 좋아한다.

시설을 운영하면서 많은 분들이 후원금을 쌓아둘려는 유혹을 당하고 또 거기에 넘

어가 버리는 것을 보았다.

시설생활자들을 위해 쓰라고 준 후원금인데, 새 신발 한 켤레 구해주는 것도 겁이

나서 남이 신다가 버린 헌 신발을(후원품) 신겨주는 것이다.

 

그런 현상은 본당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본당 재정(봉헌금, 교무금)으로 물놀이 한 번 가는 것도 무서워서 다시 회비를 거

두기 일쑤다.

주일학교 산간학교, 캠프 때마다 참가비가 따로 있다. 그러나 그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런 행사를 하자고 교무금에 더해서 주일 봉헌금까지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출을 주신 까닭은 모아두고 쌓아두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거둔 만큼 쓰라고 주신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지 못한 사람, 이 말씀이 뜻하는 바가 있다면,

“저는 아직도 가난하니 하느님 좀 더 주세요”한다는 뜻일 것이다.

수 백, 수 천억을 갖고 있어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가난한 사

람이다.

 

그런데 우리 중 거의 대부분은 수 백이 아니라 수억원도 가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

고,

그나마 은행 통장에 들어있는 돈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여전히 우리는 가난

하다고,

그러니 하느님이 더 주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와 다를 바가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지치지 않고 씨를 뿌리신다.

어떤 것은 길바닥에, 어떤 것은 돌바닥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그리고 어떤

것은 좋은 땅에(루카 8:4-8) 떨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끈질기게 기다리신다.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르기”(마태 13:29) 때문이

다.

가라지가 밀이 될 수도 있다는 것(=회개)이야 말로 참으로 커다란 복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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