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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만돌린오케스트라에 처음 취해본 하루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28 조회수450 추천수3 반대(0) 신고
            만돌린오케스트라에 처음 취해본 하루
                           음악 속에서 강물 소리를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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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토) 서산시 석림동에 있는 천주교 석림동성당에서는 종교와는 무관한 특별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제10회 ‘대한민국 만돌린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의 큰 음악행사가 석림동성당에서 열린 것이지요. 석림동성당 주임이신 방윤석 베르나르도 신부님이 ‘한국만돌린협회’ 부회장이신 관계로 석림동성당에서 그런 큰 행사를 떠맡아 열게 된 것입니다.

내 짐작에 방 신부님이 석림동성당에서 그런 행사를 여는 것에는 대략 서너 가지 뜻이 있을 듯싶습니다. 장소를 얻는데 따르는 비용 부담도 줄일 수 있고,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큰 행사를 효율적으로 치를 수도 있고, 서산이라는 지역사회에 만돌린음악을 보급하는데 촉매제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또 알게 모르게 천주교 선교에도 플러스가 될 터이고….

이런 것을 일러 속된 표현으로 ‘꿩 먹고 알 먹는다’라고 하고, 또는 ‘누이 좋고 매부 좋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심우만돌린오케스트라 / 첫 무대를 장식한 '심우만돌린오케스트라'의 공연 모습  
ⓒ 지요하 - 만돌린

지난해의 제9회 ‘대한민국 만돌린페스티벌’도 6월 26일(토) 서산 석림동성당에서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도 방 신부님의 직접 초대를 받았지만, 그때는 참석을 못했습니다. 모친이 한창 요양병원에서 병상생활을 하시던 때라 매일 두세 번씩 요양병원을 다니며 간병을 하는 내 처지로는 마음 놓고 태평하게 나들이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지요.

올해는 사정이 좋게 되었습니다. 무려 8개월 동안의 병상생활을 접고 지난해 7월 5일 퇴원하신 노친께서 당신의 두 다리로 마음대로 기동을 하시고, 식사도 잘하시고, 특별히 아픈 데도 없으시니, 내가 걱정 없이 나들이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 수원안젤루스만돌린앙상불 / 두 번째로 무대에 올라 연주를 하기 전 객석을 행해 인사를 하는 지휘자  
ⓒ 지요하 - 만돌린

25일은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도 쉬는 토요일이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만돌린페스티벌에 아내도 가고 싶은 눈치여서 내가 노친께 말씀을 드리니 노친은 선뜻 부부 함께 갖다오라시며 “내 점심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점심을 차려서 혼자 드시기로 한 거지요.

노친께 죄송스러운 마음 가운데서도 하느님께 감사하며 우리 부부는 기쁜 마음으로 9시 20분쯤 집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부부 모두 난생 처음 만돌린오케스트라를 접하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온 만돌린오케스트라단을 한 자리에서 접하며 만돌린음악의 실체와 진수를 만끽할 수 있게 된 사실이 묘한 설렘마저 갖게 했습니다.


▲ 분당만돌린오케스트라 / 세 번째로 무대에 오른 '분당만돌린오케스트라'의 공연 모습  
ⓒ 지요하 - 만돌린

우리 부부는 지난해 10월 31일 밤 서산 석림동성당에서 열린 방윤석 신부님의 제10회 ‘만돌린자선독주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만돌린이라는 악기가 만들어내는 음악의 세계에 흠뻑 취할 수 있었습니다. 또 그때 대전에서 온 ‘대전가톨릭돌체만돌린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접할 수 있었는데, 만돌린오케스트라에 대한 호기심은 그때부터 생겼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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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돌린이라는 악기를 처음 보고 또 만돌린 소리를 처음 들은 때는 대략 14년 전인 것 같습니다. 1997년 여름, ‘대전가톨릭문우회’의 하계 피정이 금강 지류인 충남 금산군 부리면 제원강의 한 곳인 적벽강변에서 있었습니다. 당시 대전가톨릭문우회 담당사제는 대전교구청 홍보국장이었던 방윤석 신부님이었습니다.


▲ 서산가톨릭만돌린오케스트라 / 천주교 신자들로 구성된 서산가톨릭만돌린오케스트라는 아직 초창기라 인원이 단출하다.  
ⓒ 지요하 - 만돌린

나는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그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강변에 텐트를 치고 1박2일을 그곳에서 자연의 향연을 즐겼습니다. 붉은 색의 거창한 절벽(赤壁)을 배경으로 풍성한 강물과 은빛 모래톱과 무수한 조약돌과 사귀며 꿈속을 부유하는 것 같은 기분도 맛보았습니다.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고 하는 가운데 방윤석 신부님의 만돌린 연주를 처음으로 접합 수 있었습니다. 글도 잘 짓는 방윤석 신부님은 음악 쪽으로 참으로 다재다능한 분이었습니다. 방 신부님의 키보드 연주와  기타 연주, 또 드럼 연주 등을 이미 여러 번 접한 바 있습니다. 그런 방 신부님이 이번에는 만돌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며 처음으로 만돌린 연주를 선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강변의 모닥불빛 속에서 방윤석 신부님의 만돌린 연주를 처음 접하며 이미 방 신부님이 만돌린에 심취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머잖아 방 신부님이 만돌린 음악계의 대가가 되리라는 예감 같은 것도 가졌던 것 같습니다.       
            
        
 
▲ 대전가톨릭돌체만덜린오케스트라 / 역시 천주교 시자들만으로 구성된 '대전돌체만돌린오케스트라'는 아직 콘트라베이스도 없고, 첼로와 베이스 기타 담당자가 오지 못해 서산 석림동성당 방윤석 신부님이 지원을 했다.  
ⓒ 지요하 - 만돌린

그때로부터 4년 후인 2001년 여름에도 ‘대전가톨릭문우회’는 금강 지류인 금산군 부리면 제원강의 한 곳인 적벽강변에서 하계 피정 행사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적벽강은 강이 아니었습니다. 제원강이 통째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전라북도가 충청남도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에 용담댐을 건설한 탓이었습니다. 1990년에 착공된 댐 공사가 2001년에 마무리된 이후 수량과 유속이 급속도로 저하되어 제원강은 강의 특징과 모습을 깡그리 잃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도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내가 태안에서 가져간 오징어와 막걸리를 즐기며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고 방윤석 신부님의 만돌린 연주를 접했지만 이미 흥취는 반감된 상태였습니다. 나는 그때 자연이 원래 모습을 잃으면 그 안의 낭만도 서정도 예술도 두루두루 허약해진다는 실감 같은 것을 얻었던 듯싶습니다.

그 후 우리는 금산군 부리면의 제원강을 다시 찾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기억에서 제원강도 적벽강도 다 지워지면서 상실감과 아쉬움만 남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방윤석 신부님의 만돌린 연주를 접하다 보면 제원강의 두 가지 모습이 떠오르고, 뼈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 전주한울림만돌린오케스트라 / 일곱 번째로 무대로 오른 '전주한울림만돌린오케스트라'는 해외 연주 경험이 가장 많은 팀이었다.  
ⓒ 지요하 - 만돌린

  <3>

  제10회 ‘대한민국만돌린페스티벌’에는 모두 아홉 개 팀, 200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한국만돌린협회’ 김병용 회장(숭실대 명예교수)의 개회사에 이어 서산부시장, 서산시의회의장, 서산경찰서장 등이 축사를 했고, 오전에는 제1부로 ‘심우만돌린오케스트라’, ‘수원안젤루스만돌린앙상블’, ‘분당만돌린오케스트라’, ‘호산나만돌린오케스트라’, ‘서산가톨릭만돌린오케스트라’ 등 5개 팀이 연주를 했습니다.

참가자와 관객 모두 석림동성당에서 제공하는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1시부터 제2부로    ‘대전가톨릭돌체만돌린오케스트라’, ‘전주한울림만돌린오케스트라’, ‘루야만돌린오케스트라’, ‘숭실대학교동문/재학생팀’ 등 4개 팀이 공연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숭실대 팀은 무대에 남고, 참가팀 모두 객석에 앉은 채로 숭실대 명예교수 김병용 회장의 지휘로 전체가 연합 연주를 했습니다.


▲ 루야만돌린오케스트라 / 여덞 번째로 무대에 오른 '루야만돌린오케스트라'는 '시바의 여왕'과 '에스파냐의 꿈'을 연주했다.  
ⓒ 지요하 - 만돌린

나는 애초 오전의 1부 순서만 보고 오후 일찍 돌아올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연주를 감상하다 보니 마음이 변했습니다. 다른 귀빈들은 한두 곡만 듣고 모두 이석을 해서 귀빈석을 나 혼자 지키는 형국이었습니다. 귀빈석을 나 혼자만이라도 지켜야 할 것 같았고, 끝까지 만돌린오케스트라에 심취해보고 싶었고, 그래야 과거 방윤석 신부님이 대전과 아산 등지에서 여러 번 만돌린자선독주회와 만돌린페스티벌 행사를 열어오는 동안 먼 거리를 핑계로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죄 갚음도 될 것 같았습니다.

참가팀들 거의 모두 만돌린 외에 비올라, 기타,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40명이 넘는 팀들도 있었습니다. 여성들이 대다수를 이룬 가운데 남성들도 드문드문 끼어 있고, 젊은 여성들과 중년 여성들, 또 할머니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었습니다. 청장년층과 노년층이 고루 배합된 그 모습부터 만돌린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을 한껏 살려내는 것 같았습니다. 한마디로 아름다운 모습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나는 만돌린오케스트라의 음악세계에 몰입, 심취해 들어가면서 문득 ‘자연의 소리’를 떠올렸습니다. 그것은 그대로 감흥의 실체일 듯싶습니다. 저 만돌린의 음악 역시 자연에서 왔고 자연의 소리를 반영하는 것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무릇 음악은 자연에서 왔고, 자연의 소리와 메시지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음악은 바람에서 왔고, 바다에서 태어났으며, 강물에서 생겨났습니다. 강물의 흐름은 음악을 잉태하고 포유하며 발현시킵니다. 강물의 높낮이와 여울과 구불구불한 곡선들은 그대로 음악이고, 음악의 실체입니다.


▲ 마지막 순서, 참가팀 전체 연주 / '숭실대' 팀은 무대에 남고, '한국만돌린협회' 회장인 김병용 숭실대 명예교수의 지휘로 참가팀 모두 객석에 안은 채로 전체 연주를 했다. 영화음악 '제3의 사나이'와 영화음악 '피서지에서 생긴 일'이 연주되었다.  
ⓒ 지요하 - 만돌린

강물의 흐름은 생동이고 리듬이며 생명력입니다. 음악 역시 생동이고 리듬이며 생명력입니다. 그리하여 자연과 음악은 일치이며 조화입니다. 무릇 예술이 다 그렇습니다. 자연은 모든 예술의 산실이고 보고이며 기원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자연은 철저히 망가지고 파괴되고 훼손되고 있습니다. 강을 살린다는 거짓 구호로 강들을 깡그리 죽이는 무참하고 야만적인 일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생각하면 너무도 억울하고 원통하여 눈물이 납니다. 나는 서산 석림동성당 안에 앉아서도 눈물을 삼켰습니다. 제10회 ‘대한민국만돌린페스티벌’이 만들어내는 음악의 향연 속에서도 4대강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했고, 조물주의 노여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하루 동안 심취했던 만돌린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음률은 흐름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강들, 리듬과 생동과 음향을 상실해 가고 있는 가엾은 우리의 강들을 애타게 찾는 소리였고, 자연의 원래 모습을 갈구하는 간절한 외침이기도 했습니다.
                  

11.06.28 15:47 ㅣ최종 업데이트 11.06.28 15:47  지요하 (sim-o)  
태그/ 4대강 사업, 천주교 서산 석림동성당 , 한국만돌린협회, 만돌린오케스트라, 만돌린페스티벌
출처 : 만돌린오케스트라에 처음 취해본 하루 - 오마이뉴스
ⓒ 2011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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