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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13 조회수1,013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5월 13일 연중 제6주간 화요일
 

 
 They concluded among themselves that
it was because they had no bread.
When he became aware of this he said to them,
“Why do you conclude that it is because you have no bread?
Do you not yet understand or comprehend? Are your hearts hardened?
Do you have eyes and not see, ears and not hear?
(Mk.8.16-18)
 
 
제1독서 야고보 1,12-18
복음 마르코 8,14-21
 
 
요즘 우리 성당 새벽 미사를 보면 꼬마 아이들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이번에 첫영성체를 받을 어린이들인데, 평일 새벽 미사를 꼭 참석하라고 했거든요. 그 모습을 보면 참으로 예쁩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아는 기도문이 나왔다고 큰 소리로 기도하는 모습. 때로는 너무나 졸려서 앉아서 졸고 있는 모습을 보면 슬그머니 미소를 짓게 합니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의 저의 모습이 문득 떠올려지네요.

초등학생 때, 방학 기간 중 평일 미사를 참석하면 은총표라는 스티커 한 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스티커를 다 모으면 커다란 선물을 받을 수 있었지요. 저는 평일미사에 빠지지 않았기에 한 장의 스티커도 빼놓지 않고 모을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개학하는 날입니다. 이 날 이제까지 모은 스티커를 포도송이가 그려져 있는 종이에 붙여서 가져만 가면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물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상을 하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스티커를 붙인 종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종이를 찾기 위해서 온 방을 다 뒤졌지만, 그 종이를 찾을 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제가 아닌 다른 친구가 큰 상을 받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습니다. 어찌나 억울하던지, 선생님께 울면서 따졌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빠짐없이 평일 미사에 참석했다고 말하면서 말이지요.

물론 스티커가 미사 참석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사를 참석했다는 증거는 바로 스티커밖에 없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어쩔 수 없었지요. 결국 저는 중요한 것을 잃어버려서 두 달 동안 빠짐없이 나갔던 수고(?)를 헛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이 생각을 하면서, 지금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을 행하기보다는 부수적인 것들이 더욱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착각들. 그래서 세상의 것들만을 쫓는 어리석은 우리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빵이 없다’면서 서로 수군거립니다. 즉, 그들은 먹을 빵이 없다면서 허기를 어떻게 채울 지를 걱정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들은 가장 중요한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는 분, 또 빵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는 분임을 제자들은 이미 보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걱정만 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바로 가장 중요한 주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 역시 눈앞의 일에만 급급해하면서 가장 중요한 주님께 대한 믿음을 소홀히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바로 이렇게 주님이 아닌 세상의 일을 향해서만 나아간다면, 계속해서 주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이제 이러한 말은 그만 들어야 할 것입니다. 대신 주님께 대한 철저한 믿음으로, 주님의 뜻을 깨닫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을 쫓는 지혜로운 자의 모습입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이 항상 일번입니다.




평화의 길, 갈등의 길(이윤기, ‘내려올 때 보았네’ 중에서)

내 고향 경북 사람들에게는 좀 유난스럽다 싶은 예의범절이 있다. 식사할 때 밥그릇을 손에 들고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중 하나다. 어른들은 천한 사람이나 그렇게 밥을 먹는다고 했다.

15일 동안 ‘피스 앤드 그린 보트’를 타면서 삼백여명의 일본인과 함께 생활하고 왔다. 일본인들, 우리와 많이 달랐다. 여대생이 담배를 물고는, 머리카락이 허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라이터를 빌려 주었다. 봉변인가? 아니었다. 그 여대생은, 부자지간에도 맞담배질을 예사로 하는 곳에서 온 일본인이었다.

일본인은 밥공기를 든 채 밥을 먹는다. 일본인들에게 밥그릇을 바닥에 놓은 채로 먹는 것은 짐승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밥공기를 들고 먹어야 한다. 천한 사람들인가?

일본인들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큰 소리로 웃고 떠든다. 일본인은 옳고 한국인은 그른가? 이 양자 사이에는 ‘이야기를 나눈다’는 공통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차이점을 찾아내는 일, 이것이 갈등의 길이 아닐까? 연필 깎는 것을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연필을 손에 쥔 채 칼을 움직인다. 하지만 미국인은 칼을 쥔 채 연필을 움직인다. 한국과 일본의 톱은 앞으로 당길 때 나무가 썰리도록 되어 있지만 미국의 톱은 미는 순간 나무가 썰리도록 되어 있다. 앞으로 당기는 행위는 밀기 위한 준비 작업일 뿐이다. 아시아 톱은 옳고 미국 톱은 그른가? ‘나무를 썬다’는 공통점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평화의 길이다. 
 
 
“Do you still not understand?”
(Mk.8.21)
 
 
Forever You - Hiko 
 
Norah Jones - sun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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