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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독(聖讀;Lectio divina)의 중요성" -3.2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20 조회수449 추천수19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3.20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예레11,18-20 요한7,40-58

 

 

 

 

 

 

 

"성독(聖讀;Lectio divina)의 중요성"

 

 

 

스승 부재의 시대에

유일한 최고의 스승이신 주님의 지도하에

유일한 참고서인 성경의 도움을 받아

교과서인 우리 삶의 책을

렉시오 디비나함이 참으로 중요한 시대입니다.

 

읽음, 들음, 묵상, 기도, 관상의 리듬에 따라

성경을, 삶의 책을 렉시오 디비나할 때

주님의 은총으로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은 사라지고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인 성령과 지혜를 받습니다.

 

얼마 전 읽은

어느 여대생이 대학을 자퇴하며 쓴 글이 감동이자 충격이었습니다.

오늘 날 교육에, 기성세대에 대한

죽비와도 같은 예언자적 통찰이 담긴 글 중 일부를 인용합니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 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 번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가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바로 이렇게 하여 예언자의 탄생입니다.

시대의 이단아 같지만 진정 깨어 있는 영혼의 울부짖음입니다.

 

문제는 죽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삶의 지혜요 깨달음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일할 수 있는 주체적 인간이,

영혼 없는 지식인이 아닌

깨어 있는 영혼의 지성인으로 살고 싶은 것입니다.

 

똑 같은 틀에서 나온 붕어빵 인생이 아닌

자기 고유의 삶을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무력한 인간을 양산해 내는

작금의 교육과 사회 전반에 대한 통렬한 비판입니다.

 

옛 어른들, 또 옛 사막의 수도승들

책도 없었고 지식도 짧았지만 삶의 지혜로 충만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살아있는 현실이 공부해야 할 책이었습니다.

 

사막수도승들이 그 깊은 통찰의 지혜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책 공부를 통해서가 아닌,

겸손과 믿음으로

성령의 인도 하에

성경의 도움을 받아

삶의 책을 깊이 렉시오 디비나 한 결과였습니다.

 

톨스토이의 잠언이 생각납니다.

‘독자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쓸데없는 독서를 줄일 수 있다.

  너무 많이 읽는 것은 해롭다.

  내가 만나 본 위대한 사상가들은 적게 읽은 이들이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나 독서의 예레미야는

결코 책 공부를 많이 한 학자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유일한 스승으로 모시고

교과서인 삶의 책에

유일한 참고서 성경의 도움으로 렉시오 디비나 한 결과

드높은 경지에 이른 예언자요 현자였습니다.

 

현대 교육이 잃고 있는 이런 측면의 교육을

교회 교육이 보완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알려 주시어 제가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그들의 악행을 보여 주셨습니다.”

 

직접 스승이신 주님께 기도를 통해 가르침 받는 예언자 예레미야입니다.

이어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자유로워지는 에언자 예레미야입니다.

 

“그러나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여 주소서.”

 

이렇게 기도를 통해

스승이신 주님께 짐을 내려놓고

스트레스를 풀어야 영육의 건강입니다.

 

오늘 복음의 세 인간상의 대조가 재미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합니까?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공부는 짧았지만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살아있는 메시아 주님을 만난 성전 경비병이었습니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책 공부를 해도 이런 니코데모처럼 해야 합니다.

선입견이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합리적인 사람으로

있는 그대로의 주님을 알아보았음이 분명합니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오지 않소.”

 

그 많은 신학지식을 지닌 수석사제와 바리사이들

정말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에 눈이 가려

있는 그대로의 참 메시아이자 예언자이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런 공부, 이런 인생이라면

그대로 실패한 공부, 실패한 인생입니다.

 

아무리 공부 많이 해도

살아있는 주님을, 참 나를 발견 하지 못하는 공부라면

그런 공부 무슨 쓸모가 있겠는지요.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스승이신 주님을 모시고

유일한 참고서인 성경의 도움을 받아

우리 삶의 책을 렉시오 디비나 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하여 온갖 선입견, 편견은 사라지고

주님의 성령과 지혜로 충만한 우리들이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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