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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험인지 유혹인지, 골아픈 식별?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12 조회수681 추천수7 반대(0) 신고
 

 

시험과 유혹

 

  오늘 독서, 야고보서 1장 12-14절의 말씀을 읽어 보니 ‘시험’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유혹’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악의 세력이나 사탄에게서 오는 것만 같다. 

문득 주님의 기도에서 개신교에서는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하는 구절이, 가톨릭에서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인 것도 생각난다. ‘시험’과 ‘유혹’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러고보니, 시험과 유혹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어보시던 교수신부님이 생각난다. 답은 생각나지 않고 물음만 생각나는 걸보면 그때 교수님의 설명이 선뜻 이해되지 못 한 것 같아 성경의 원문을 찾아본다.

  12절의 ‘시련’과 ‘시험’, ‘13-14절의 ’유혹‘이 다 같은 단어, πειρασμόϛ(peirasmos)가 사용되었다. 이상하다. 원문의 단어가 다르면 쉽게 이해 될텐데, 같은 단어이다. 그런데 왜 번역은 다르게 했을까? 궁금증에 궁금증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단어풀이가 되어 있는, “말씀의 네트워크”를 찾아본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즉, “유혹, 시련을 뜻하는 πειρασμόϛ(페이라스모스)는 루카 4,13에서처럼 악의 세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유혹하는 것을 의미하며, 1디모 6,9이나 야고 1,12에서는 죄로 떨어지게 하는 유혹을 신앙으로 견디어 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히브 3,8에서는 이 용어를 사용해 하느님이 주시는 시련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어로는 test 나 temptation 이다.]

  결국 같은 단어를 문맥에 따라, 상황에 따라 ‘유혹’이나 ‘시험’으로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하느님이 주신다고도 하고 악의 세력에서 나온다고도 한다.

  원문도 찾고 사전도 찾아 봤지만 아직도 시원치는 않다. 다시 예전의 교수 신부님은 뭐라 하셨는지 그때의 노트를 책꽂이를 다 뒤져 찾아냈다. 노트에는 아래와 같이 씌어있었다.

  [ peirasmos 는 상황에 따라 폭넓은 의미로 쓰인다. 즉 ‘시험’ ‘시련’ ‘유혹’이 있다. 그러니까 주님의 기도 중에 나오는 부분은, And do not lead us, to the temptation, 할 수도 있고, And do not lead us, to the test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야고보서 1,13의 말씀 때문에 test 보다는 temptation을 써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한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도 궁색한 것이, 사도 바오로는 1코린 10,13에서도 peirasmos를 썼는데, 이것을 하느님도 줄 수 있다고 분명히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겨낼 수 있는 만큼만 주신다는 단서가 붙어있다.

 결국 peirasmos 는 무엇인가? 성경은 굳이 유혹, 시험, 시련을 구분하지는 않는다. 왜 그런가? 성경은 “하느님은 모든 것을 섭리하신다. 모든 것을 이끌어주신다”는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분법적 사상을 넘어서야 한다. 선택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

 

 

 그때 신부님께서는 위의 질문과 관련하여 무엇이 하느님께로부터(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무엇이 사탄으로부터(악령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알 수 있는가 하고 물으셨던 것 같다. 정답은 따로 없고 우리의 생각을 그냥 물어보신 것이다.

 평소에 나도 그것을 생각해보았던 적이 있었기에 손을 들고 답변했다.  그 내용은 대충 이렇다.

 사도행전 16장 6절 이하에 보면, 바오로 사도는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았다고 하며 그래서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고 한다. 비티니아로 가려고 하였지만 그것도 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전도 여행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갈라티아서에 나타나 있다. 즉 4장 13절에 보면 육신의 병이 계기가 되어 처음으로 갈라티아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도행전의 작가 루카는 바오로의 갈라티아에서의 활동이 성령과 예수님의 영의 역할인데, 갈라티아서의 저자 바오로 자신은 그것이 병 때문에 그곳에 머물게 되었고 그것을 시련이라고 언급하는 것이다.

 또 고린토 후서, 12장 7절에서는 바오로의 병이 가시로 찌르는 통증이 따르는 병임을 알 수 있는데, 그 병을 두고도 바오로 자신은 두 가지로 언급한다. 즉 ‘하느님께서 자만하지 말라고 주신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또 ‘사탄의 하수인’이라고도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 여기서 알 수 있는 것 하나는, 첫째, 우리에게 어떤 일이나 생각이 일어날 경우 적어도 그 당시엔 그것이 하느님에게선지, 사탄에게선지 도통 알 수 없다. 바오로 사도가 병이 나서 다른 지방으로 가지 못하고 갈라티아에 머물러 있었던 그 당시엔. 그리고 가시로 찌르는 병이 하느님에게서 온 것인지, 사탄의 하수인인지 헷갈리듯이.

 그러니까 둘째, 우리에게 좋은 것이 꼭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나쁜 것이 꼭 사탄에게서 온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셋째 그 결과가 선으로 나타날 경우, 아니면 선으로 받아들일 경우, 그것은 반드시 하느님에게서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갈라티아에서 결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으므로 그것을 사도행전의 루카는 ‘성령’, ‘예수의 영’의 활동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바오로 자신도 자기의 병이 자만심을 갖지 않도록 하는 선물이라 여기기에 하느님께서 보냈다고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근거를 내 나름대로 대면서, 우리에게 닥치는 일들이 결국 누구에게서 오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 하에 일어난 일이라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러니까 하느님이 주신 하나의 ‘시험’이라고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대답을 드렸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임할 때, 사탄에게서 오는 ‘유혹’이라도 승리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시련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대답하였다.

 

교수 신부님이 참 그럴 듯 하다는 말씀, 그 말이 맞다는 말씀은 안 하셨던 것 같다.^^ 그냥 내 말을 골똘히 생각하시는 듯했다. 하지만 오늘 그분이 가르쳐주신 노트를 보니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다. ^^*

 어떻든 결론은 나에게 달려있다는 말씀.  ‘유혹’이든, ‘시험’이든 내가 굳건히 서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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