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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심보를 바꾸는 것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3 조회수448 추천수9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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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
+ 루카 13,1-9


심보를 바꾸는 것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많이 사랑합니다. 한 주간 행복하셨습니까? 예. 행복하시게 지내신 분은 행복에 행복을 더하시고, 혹시라도 행복하지 못하셨다면 지금부터 행복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모두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한 것은 우리 마음이 문제 입니다. 이 시간 주님의 마음을 닮을 수 있는 은혜가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를 회개에로 초대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뉘우치고 슬퍼하는 것을 회개라고 알고 있습니다. 회개란 쉬운 말로 심보를 바꾸는 것입니다. 자기의 인생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 지상의 마음가짐에서 하늘을 향한 마음으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신자중에 가장 무서운 신자는 누구라고 했죠? 예, 배신자. 그러면 신부가 제일 싫어하는 신자는 누구라고 했죠? 원불교 신자, 원망하고, 불만이 가득하고 교만한 신자입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이 사랑하고 포용하며 겸손의 마음으로 바뀐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찌 되었든 대표적인 배신자 베드로는 위기를 모면하고자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닭이 두 번째 울 때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울기 시작하였습니다.(마르15,72) 주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인간의 연약함을 의탁할 수 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새롭게 태어나서 주님의 으뜸제자로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인물입니다. 그가 말합니다.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1티모2,15-16)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 달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필리3,14) 바로 이것이 회개의 모습입니다. 만약에 과거에 매여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면 하느님의 복음을 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회개는 과거를 하느님의 자비에 철저히 맡기고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과거는 지나간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올지 모르는 신비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바로 오늘이 선물로 주어졌고 오늘을 통해서 미래가 열립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희망하는 만큼 오늘을 사랑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세관장 자캐오라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19,6) 하고 이르시자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루카19,9)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캐오는 과거를 청산하고 새 삶의 변화된 모습을 구체적 행동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행동의 변화 없는 회개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한 신부님께서 오랜만에 출신 본당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오래도록 살고 계신 신자분이 반가워 하시며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러더니 한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오랜만에 친정에 오셨는데 떡이라도 해 오셨습니까? 신부님께서 능청스레 대답하셨습니다. 네, 그러잖아도 떡을 해 오려고 했는데 집사람이 없어서 못해왔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핑계를 댑니다. 집사람 핑계는 왜댑니까? 남편을 탓하고, 자식을 탓하며 부모를 원망하고 이웃을 시기하는 마음, 탓을 남에게 돌리는 심보를 고쳐야 합니다. 잘된 것은 자기가 잘해서 그런 것이고 잘못되면 조상 탓으로 돌리는 마음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삶의 회개입니다.

 

십자가의 오른쪽 강도를 보십시오.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하나가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하며 예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른쪽에 매달린 강도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습니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23,42-43)

 

왼쪽 강도의 모습을 통해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남을 비방하고 모욕하는 마음입니다. 사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남의 잘못된 일을 보면 내 그럴 줄 알았다. 네가 사는 것이 그 모양이더니 결국 그 꼴이구나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을 심판하는 태도를 가질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추스르는 근신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 믿는 이들의 자세입니다. 그의 안쓰러운 모습에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고 또한 회개의 기회로 삼는 겸손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오른쪽 강도처럼 마지막 순간에라도 마음을 돌려서 간구하면 주님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하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기회를 미루지 마십시오.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사람들이 당한 불행이나 고통,실로암 탑에 깔려 죽은 사람이나 그들은 죄가 많아서,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하셨고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루카13,5)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재앙을 당하기 전에 미리 준비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주변에 벌어지는 모든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말해주는 메시지입니다. 지금 여기서 준비하고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결코 우리의 멸망을 두고 보실 분이 아니십니다.

 

방탕했던 아들의 비유(루카15,21)을 보면 작은 아들이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라도 삼아주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방탕하였던 아들은 겸손되이 저 밑바닥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버지의 머리위에 올라가서 아버지를 애먹이던 그가 품팔이꾼, 종의 모습으로 내려갈 수 있는 마음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집의 풍요로움에 대한 기억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에 대한 기억을 통해 하느님을 삶의 첫 자리에 모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정작 내 좋은 일에는 둘러리로 전락시키고 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주님, 주님!하면서도 참으로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지 못하고 오히려 종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음을 솔직히 인정해야겠습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이미 아들을 용서한 아버지, 그 아버지께서 우리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한 주간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감이 곧 회개요, 그리고 그 회심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되새기며 주님의 사랑을 드립니다. 성 아프라테스의 말씀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고 회개의 눈물로 다시 태어나는 이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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