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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 - 2008.3.30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30 조회수522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말씀)
 
 
 
2008.3.30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사도2,42-47 1베드1,3-9 요한20,19-31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
 


오늘은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대 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의 시성식을 거행하면서,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하셨고,
교회는 해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의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주님의 부활 축제, 아침기도 초대송 후렴입니다.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하느님 자비의 참 좋은 선물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요,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교회공동체입니다.
 
믿는 이건 믿지 않는 이건 공동체의 위기와 더불어
공동체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시대입니다.
 
대부분의 사회 문제가
각자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절로 모였다하여 공동체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끊임없이 리모델링해야
비로소 참 크리스천 공동체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선사하신 우리 공동체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평화의 공동체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의 공동체에
당신의 평화를 선사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마치 제자들 앞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주님을 연상시킵니다.
무려 세 번이나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의 공동체에 들어오실 때 마다
우선 당신의 평화부터 선사하십니다.
 
마치 방안의 어둠을 환히 밝히는 전등 빛처럼,
불안과 두려움의 어둠을 환히 밝히는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평화에 크게 기뻐하였다 합니다.
기쁨 역시 평화와 더불어 선사되는
부활하신 주님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제가 고백성사 보속의 처방전으로 자주 써드리는
다음 요한복음 말씀도 생각납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화를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힘의 평형에서 오는 세상의 평화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오는 참 평화입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 안에 젖어 사는 우리들의 삶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경과 시련 중에도 평화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참 좋은 선물 역시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입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여기 수도원을 찾는 까닭 역시
‘그리스도의 평화’때문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애당초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우리 공동체입니다.

평화와 더불어 믿음 역시 부활하신 주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이 있어 보이는 현실 넘어 하느님께 영혼의 뿌리를 내리기에
험난한 세상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평정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보이는 현실을 전부로 생각하기에
그리도 여유 없고 각박한 현대인들입니다.
 
완전히 현실에, 돈에, 일에 매여 살아가는 사람들 같습니다.
영적능력도 날로 퇴화해 갑니다.
 
땅만 있고 하늘은 없어 보입니다.
경제학이 전부가 되고 인문학이 날로 퇴보해가는 대학의 현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갖가지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뻐합니다.
시련을 통해 정화되는 믿음으로
마침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찬양과 영예와 영예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토마스는 물론
우리 모두의 믿음을 다시 한 번 점검토록 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셋째, 희망의 공동체입니다.

희망 없는, 비전 없는 공동체는 빛없는 어둠의 공동체입니다.

희망의 빛입니다.
희망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좌우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절망의 현실 같습니다.
사실 많은 이들이 작금의 현실에,
사회 현실, 정치 현실, 경제 현실, 교육 현실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신 참 좋은 선물,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희망을 하느님께 두어라.”

시편 말씀처럼, 부활하신 주님께 희망을 둘 때,
늘 생생한 희망을 선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절망 중에서도 샘솟는 희망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확신에 넘치는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늘에 보존 되어 있는 상속재산 역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의 원천입니다.

바야흐로 하늘 은총 봄비에 촉촉이 젖어 피어나기 시작한 봄꽃들
역시 부활하신 주님이 희망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리에게 끝까지 희망을 걸고 계신,
우리의 희망 부활하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저절로 좋은 공동체가 아닙니다.

날마다 끊임없이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평화를, 믿음을, 희망을 선사 받아 공동체를 리모델링해야 하고,
이미 받은 선물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래서 날마다 함께 우리는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를 드립니다.
 
바로 1독서의 사도행전의 공동체,
교회공동체의 원형으로
끊임없이 공동체 운동에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바로 공동미사의 모습 같기도 하고 수도공동체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의 공동체 신자들은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했다 합니다.
 
 
마치 흥겨운 성체성사 장면 같습니다.

막연한 추상적 공동체가 아니라
함께 하느님의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고, 먹고, 나누고,
친교를 나누면서 비로소 평화와 믿음, 희망의 공동체가 됨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은
성체성사를 통해 성령과 평화로 우리를 충만케 하셔서
평화의 사도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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