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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은 사랑이시다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12 조회수759 추천수11 반대(0) 신고
 
하느님은 어떤 죄인도 사랑하신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마음을 갖게 된다.
하나는 답답한 마음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내가 그렇게 미워하는 그 사람,
실제로 악한 죄인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억울하다.
그저 그 원수를 만인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주거나
지독한 곤란을 당하게 해주셨으면 하는데
그런 원수까지도 하느님은 사랑하신다. 답답하다.
한편 하느님은 어떤 죄인도 사랑하신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커다란 안도감을 느낀다.
나도 많은 죄를 지었고 때론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는 부끄러워 고개도 못들고 다닐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러시다.
그래서 이 세상이 아직도 멸망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소돔을 멸망시키러 온 천사들에게 청했다.
“저 곳에 의로운 사람 50명이 살고 있다면
그 의인 50명도 저들의 악행 때문에 멸하시렵니까?
그들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천사가 대답하였다.
“저 소돔 땅에 의인이 50명이라도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라도 저곳을 멸하지 않겠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다시 청하였다.
“의인인 45명밖에 없다면요?”
“그 45명을 보아서라도 용서하겠다.”
“죄송합니다만 30명밖에 없다면”
“그래도 용서하마”
나중에는 아브라함이 10명의 의인밖에 없어도 되겠느냐고 청하자,
소돔 땅에 의인이 10명이라도 있다면 그 곳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하늘에서 유황불이 떨어져 소돔 땅은 불바다가 되었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는 아직도 의인이 10명은 넘게 있기에
그나마 아직도 망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성령강림 대축일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바로 용서하는 일인 것을 말씀하신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곳에서 예수님은 성령께서는 바람 같은 분이라고 말씀하셨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한 3,8)
그래서 바람처럼 불어와서 제자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채웠다.
그리고는 그 제자들이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외국말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옛날 하느님은 바벨탑을 쌓던 인간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말을 하게 하여 바벨탑을 쌓지 못하게 하셨는데,
오늘 성령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말을 하게 하여
온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이시라고 알려주고 계신다.
이렇게 하느님은 마음대로 하시지만
그 모든 것이 바르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신다.
어쩌면 하느님이 당신 주권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느님과 인간은 같지 않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나 다 옳다.
악인을 벌하지 않고 살려두시는 것도 옳고
의인이 억울하게 당해도 버려두는 것도 옳다.
그렇게 해서 당신이 모든 일의 주권자임을 드러내신다.
그리고 하느님은 의인들의 희생과 고통,
심지어는 죽음을 통해서,
바로 당신 아드님의 죽음,
또 그분처럼 바르게 사는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서
악인들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사실이다.
성령강림날 제자들이 다락방에 숨어지내다가
용감하게 뛰쳐나와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외치는 것도
사실은 그들이 간이 부어서도 아니고 술에 취해서도 아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용서하시는 분이란 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자기들이 받은 그 사랑과 용서의 체험을 세상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하느님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아브라함의 외아들 이사악과 같은 예수님을 죽인 것이 사랑이고,
그 외아들을 죽인 인간들을 그대로 두고 계심이 용서인 것을 체험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잡혔을 때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친 제자들에게
평화를 빌어주고, 다시 제자로 받아주고, 새로운 사명을 준 것이,
사랑이고 용서인 것을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 성령을 받아서 용감하게 신앙을 증거해야 한다.
아쉽게도 마음을 열지 못해서 그 성령을 받지 못하고 있다.
변호사 윤학씨가 어느날 갑자기 생긴 터널로
이동거리가 짧아져서 기분좋게 들어갔다가
통행료로 2천원이나 내고부터는 그 터널을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그동안 자기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어떤 통행료를 받아왔는지 반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성령을 받기 위해선 우리도 그런 반성을 해야 한다.
내 마음 문을 꼭꼭 닫아걸고 있으면 성령께서 오시지 못한다.
가슴 한 쪽이 뻥 뚫리는 아픔이 있어도
내 마음 문을 활짝 열어줄 때 비로소
성령께서 뻥 뚫린 내 마음속을 채워주실 것이다.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당신 마음대로 하십시오
(Dillige, et quod vis fac. = Love, and do what you want)” 라고 했던 아오스딩 성인처럼,
무엇이든지 해도 잘못하지 않을 수 있고,
불 속에 뛰어들어도 무섭지 않을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
성령은 사랑이시다.
“성령을 받아라.” 하신 그 말씀은
“너희 마음을 활짝 열어라, 그리고 그 속에 사랑을 가득채워라.” 하는 말씀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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