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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화해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01 조회수549 추천수4 반대(0) 신고

성경에 나오는 "화해"란 단어는 영어로 "reconciliation"이다. 이는 "화해, 일치,조화, 조정"의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곧잘 남의 잘못을 보고 분개한다. 남에게 잔소리를 할 때가 대개 그렇다. 잘못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남인데 왜 내가 화를 내는 것일까? 아마 남이 나의 뜻대로 해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는 남이 잘 되기를 바라는 척 했지만 사실은 나의 요구가 관철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또는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안타까워서 화를 냈을지도모른다. 어쨌든 나와 남이 같기를 바랐던 것이다. 
 
 자기 본분도 모르고 잘못한(?) 남을 용서해주십사고 하느님에게 청하기도 한다. 이와 꼭 같은 심사를 하느님께도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 우리들이다. 하느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들은 기적만을 바라고 하느님의 말씀을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면서 이 세상의 삶을 살고 있다. 기적을 내려주시지는 않고 바보처럼 살라고 하시는 하느님의 처사가 야속하기만 하다. 내가 하느님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가, 아니면 하느님이 나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가? 나는 하느님의 주인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종인가? 나는 믿는 척하면서, 구약시대와 같은 징벌을 무서워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가? 누구나 천국에 가기를 원하면서 죽기를 원치 않는 것은 하느님을 만나 뵐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닐까? 
 
 화해하는 것은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용서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용서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용서는 가당치도않다. 우선 자기 자신을 바로 알고 남에게 내가 무엇을 바랬던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그 사람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구속하고 있지는 않은가? 화해는 서로의 이해타산을 조정하여 하나의 마음으로 일치시키는 것이다. 하나의 마음으로 일치시키는 유일한 방법이 "사랑"인 것이다.
 
 "여러분은 한때 악행에 마음을 사로잡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분과 원수로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콜로새 1:21-22).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이 당신 몸을 내어 놓으시고 우리들과 화해할 만반의 준비를 마치셨다. 그런데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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