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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0주일 가해]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20 조회수448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제20주일 가해] 마태 15,21-28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대로 제대로 되든 혹은 그렇지 않든간에 어쨌든 끝까지 최선을 다해 해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긍정의 의미로 쓰이지요. 그런 태도를 지닐 수 있는 것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실패’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밥을 지으려다 물 조절을 잘못하면 죽이 됩니다. 하지만 ‘죽’이라는 상태를 ‘실패’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요. 소화력이 약한 이는 일부러 죽을 끓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즘엔 죽 또한 하나의 완성된 요리로 받아들여지기에 다양한 죽을 파는 전문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밥을 지으려다 죽이 되어도 망한게 아닙니다. 그것이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소중한 음식이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맛있게 먹으면 되지요. 그런 점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내가 기대하거나 바라던 것과 달라도 나를 위한 것이라는, 나에게 유익한 것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그러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것이 내가 받은 은총을 열매 맺게 하는 방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가나안 부인의 이야기를 통해 당신께서 베푸시는 은총을 받아들여 열매 맺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십니다. 그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시면서 시작됩니다. 티로와 시돈은 이방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우상숭배가 심했던 곳입니다. 갈릴래아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던 예수님께서 왜 갑자기 그곳으로 가셨는지 그 이유가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통해 선포하신 메시지를 통해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크나큰 은총과 사랑으로 모든 민족들을 당신 품 안에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그분 사랑의 품 안에 들어가는데에 특별한 자격 조건은 필요하지 않으며 주님을 진심으로 섬기고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면 누구라도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알려주시려고 한 겁니다.

 

때마침 그런 보편적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기에 적당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한 가나안 부인이 예수님을 찾아가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호되게 마귀에 들려 고통받는 자기 딸을 좀 구해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그녀는 ‘이방인’이었지만 주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예수님을 부른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에서 분명히 드러나지요.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을 해방할 구원자가 다윗 가문의 후손 중에서 나오리라’는 나탄 예언자의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가나안 부인이 예수님을 그 호칭으로 불렀다는 것은 그녀가 예수님을 자신을 구원하실 구세주로 믿는다는걸 드러내는 것이지요. 자신들이 하느님께 특별히 선택받은 민족이기에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긴 유대인들은 교만과 고집으로 예수님을 무시하고 배척했는데, 오히려 이방인인 그녀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믿은 겁니다. 그 굳고 순수한 믿음 하나 만으로도 예수님으로부터 ‘장하다’고 칭찬받을만 하지요.

 

그런데 그녀를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가 너무나 낯설고 의아합니다. 군중들의 배고픔과 고통을 당신 자신의 일처럼 마음 아파 하시고 가엾이 여기시던 마음 따뜻한 예수님이, 당신께 청하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때로는 청하지 않았는데도 필요하다면 알아서, 척척 치유해주시던 예수님이, 남자와 여자, 죄인과 악인, 이방인과 유다인을 차별하지 않고 한결같은 사랑으로 대하시던 예수님이, 당신께 간절히 매달리며 도움을 청하는 여인의 부르짖음을 차갑게 외면하십니다. 당신은 길을 잃고 헤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오셨노라며 이방인인 그녀에게는 ‘선’을 그으십니다. 심지어 유다인들이 이방인들을 개에 비유하여 무시하는 것처럼, 그녀를 ‘강아지’에 비유하시며 당신 은총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차갑게 밀어내십니다.

 

우리 역시 때로 내 기도에 응답해주지 않으시는 주님의 무거운 침묵 앞에서, 내가 청하고 바라는대로 들어주지 않으시는 그분의 냉정한 거절 앞에서 실망하고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 간절히 매달리고 기도했는데도 꼬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힘든 상황이 계속 될 때는 나를 고통 속에 방치하시는 그분이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께로 더 가까이 부르시는 때입니다. 실망과 좌절의 체험을 통해 당신께 더 간절히 매달리게 하시려는 겁니다. 내가 누리는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품게 하시려는 겁니다. 내 안의 욕망, 고집, 교만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깨끗하게 비워내고 당신께서 주시는 충만한 은총을 최대한 많이 담아가도록 준비시키시려는 겁니다.

 

가나안 부인은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렸기에 자못 냉정해보이는 그분의 태도에도 예수님을 원망하거나 그분께 등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처음보다 더 겸손한 모습으로 침묵과 거절마저 주님의 뜻으로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전능하신 주님 앞에서 너무나 작고 약하며 보잘 것 없는 자기 처지를 뼈저리게 절감하고는 더 간절히 주님께 매달리며 그분의 자비에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 맡겼습니다. 그래서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는다’는 철저한 순명과 의탁의 고백을 할 수 있었지요.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물이 귀했기 때문에 식사 때 작은 빵 조각을 비벼 손을 씻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란 이미 음식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마저도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선택된 민족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위대한 섭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주어지는 아주 사소하고 평점한 ‘부스러기’ 같은 은총만으로도 자신과 딸이 참된 행복과 구원을 누리기에는 충분하다고 믿은 겁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야말로 그녀가 은총을 받아누리기에 충분한 준비를 갖추었음을 드러내는 표지이기에 주님은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그녀의 간절한 바람을 이루어 주시지요.

 

참된 믿음은 주님께서 내 바람에 어떻게 응답하시는가에 따라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가벼운 마음이 아닙니다. 주님의 무겁고 차가운 침묵 앞에서도, 언제 끝날지 모를 막연한 기다림 속에서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주님, 그렇습니다.”라며 나를 위해 준비하신 그분 뜻을 긍정하고 수용하며 따르는 진중한 태도야 말로 참된 믿음이지요. 이 미사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이 마음 속에 그런 믿음을 키워가시면 좋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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