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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제1독서(창세1,1~19)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3-02-06 조회수285 추천수1 반대(0) 신고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제1독서(창세1,1~19)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1~2)

'한 처음에'로 번역된 '뻬레쉬트'(bereshith)천지 창조의 시점, 곧 하느님께서 우주 자체와 우주 만물의 구성 재료가 될 모든 기본 물질들을 무(無)에서 유(有)로 동시에 섬광처럼 생겨나게 하신 원천적 창조 사건이 일어난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뻬레쉬트'(bereshith)'뻬'(be)'레쉬트'(reshith)의 합성어이다.

먼저 '뻬'(be)는 명사들과 결합하여 그 명사와 관련된 특정한 때를 가리키는 전치사로서 영어의 'in'에 해당한다.

그리고 '레쉬트'(reshith)'근원'(창세2,10), '머리'(창세3,15), '꼭대기'(1열왕18,42) 등의 의미를 가진 어근 '로쉬'(rosh)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시작'(창세10,10), '근본'(시편111,10), '으뜸', '우두머리'(욥기40,19) 등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뻬''레쉬트'의 합성어'뻬레쉬트'는 직역하면 매우 단순하게 '시초에', '한 처음에'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뻬레쉬트'가 말하는 '시초'(처음)는 시간이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한 시간의 원점, 시간(時間; the time)의 출발점을 의미한다.

결국 '뻬레쉬트''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바로 그때에'(In the beginning)라는 뜻이다.

인간 역사(歷史)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이처럼 천지 창조는 다름아닌 모든 우주 만물의 존재와 그들 사이에 발생할 모든 사건의 기원을 이루는 원초적 사건이다.

이런 천지 창조의 시점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뻬레쉬트' 천지 창조 사건이 일어났던 '때'시간 자체도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한 '시간의 기원', 곧 '시간의 원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실로 천지 창조는 시간 자체도 이제 막 시작한 때에 바로 그와 동시에 섬광적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만유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계시는 그리고 만유를 뛰어넘어 계시는 유일한 절대 자존자(自存者)요, 초월자(超越者)이시다.

이러한 하느님께서는 공간 뿐 아니라 시간도 초월하여 계신다(시편90,4).

반면에, 우리 인생을 포함한 우주 만물오직 공간(空間; the space)안에서 시간(時間; the time)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은 시공에 얽매인 차원(dimension)에 존재하지만, 이 우주 만물 각각은 물론 이 모든 것들의 존재 양식인 시간과 공간까지 지으신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이곳으로부터 완전 초월하여 계시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에 얽매여 있는 인생을 포함한 피조물과의 관계만 아니라면 하느님께 시간은 의미가 없다.

심지어 하느님 자신의 실존에만 국한해서 볼 때에는 천지 창조 이전과 이후의 구분도 의미가 없다.

한마디로 하느님께서는 시간으로부터 완전 초월하여 시간과는 무관하게 영원히 계시는 분인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천지 만물은 오직 시간의 시작과 함께, 곧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존재할 수 있었다. 또한 역으로 말해도, 시간도 오직 그 시간의 흐름에 의해서만 그 존재 양상이 전개되어 가는 만물들의 존재와 함께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무(無)로부터 유(有)로의 천지 창조(creatio ex nihilo)는 시간의 시작과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시간 또한 천지 만물이 창조되는 순간 필연적으로 함께 창조되었고, 또한 그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편, 우리는 '한 처음에'로 번역된 창세기 1장 1절'뻬레쉬트'를 새 성경에서 그 역시 '한 처음에'로 번역된 요한 복음 1장 1절'엔 아르케'(en arche)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뻬레쉬트'는 하느님의 천지 창조로 이제 막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던 시간의 출발점을 가리키고, 반면에 '엔 아르케'는 시간이 아예 흐르기 이전의 영원한 때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뻬레쉬트'가 무로부터 유가 시작되어 시간이 출발했던 영원과 시간의 접촉점만을 가리킨다면, '엔 아르케'는 근본적으로 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차원 전반을 가리킨다.

'하느님께서'

이 구절은 앞서 '한 처음에' 창조 시점에 제시된 것에 이어서 이제 천지 창조의 주체가 '하느님'이심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즉 앞서 천지가 '언제' 창조되었는지 밝힌 데 이어서 천지를 '누가' 창조하였는지를 밝힌다.

여기 '하느님'에 해당하는 원어 '엘로힘'(ellohim)제1위 성부 하느님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을 경우에는 모두 다 '하느님'으로 번역되었다.

이것은 '권세있다', '힘세다'라는 뜻을 가진 '울'(ul)에서 유래한 것 (2열왕24,13; 시편73,4)으로서 '권세있고 힘있는 뛰어난 분'이란 뜻을 가진 '엘로아흐'(elloah)복수형이다(탈출12,12; 신명32,15).

하느님의 이름이 복수형으로 되어있는 것은 그 가리키는 대상이 분명 단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복수형으로 표기함으로써, 그 대상의 권위와 중요성을 한층 더 강조하는 고대 근동 전반의 수사법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태초의 천지 창조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만물의 존재 자체, 그리고 그들이 서로 얽혀서 빚어내는 모든 역사의 유일한 원초적 기원이다.

따라서 결국 천지 창조의 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모든 만물과 역사의 궁극적 기원이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존재의 기원이시다. 만물은 그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간다 (욥기1,21; 시편90,3; 코헬렛12,7; 로마11,36).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당연히 우리 인생의 궁극적 관심 수밖에 없다. 또한 천지 창조 기사 전체가 오직 하느님만이 온 천지를 모두 다 직접 창조하셨음을 거듭 강조하는 것은 전 우주에 대한 하느님의 소유권과 통치권을 증명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것은 하느님께 대한 전 우주의, 특히 전 우주의 대리 통치자인 우리 인간들(창세1,26)의 하느님께 대한 복종과 경배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한 주체가 어떤 사물을 만들거나 사거나 이를 소유함에 있어서 그 주체 자신이 요구되는 의무를 다하는 것은 그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갖게되는 완전하고도 정당한 법적 근거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천지 창조 기사는 거듭해서 전 우주가 스스로 생겨났거나 다른 그 무엇에 의해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엘로힘 하느님'에 의해서 지어진 것임을 그토록 강조한다.

즉 이것은 전 우주와 인생에 대한 하느님의 소유권과 통치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하느님의 소유권(탈출18,5; 신명10,14; 에제18,4)과 통치권 (탈출15,18; 시편72,8; 다니엘5,21) 사상은 성경 전체에서 나타난다.

'하늘과 땅을'

본문은 창조의 시점, 곧 언제 천지 창조가 있었는지를 밝힌 '한 처음에'창조의 주체, 곧 누가 천지를 창조하였는지를 밝힌 '하느님께서'에 이어서 이제 창조의 대상(對象), 곧 무엇이 창조되었는지를 밝히는 구절이다.

원문은 '에트 핫샤마임 웨에트 하아레츠'(eth hashamaim weeth haarets; the heaven and the earth)이다.

우리말의 '~을'(를)에 해당하는 것으로 직접 목적어임을 표시하는 대격 전치사 '에트'(eth)'그 하늘을'이란 뜻의 '핫샤마임'(hashamaim), '그리고'(과)에 해당하는 접속사 '웨'(we)'에트'(eth)결합된 '웨에트'(weeth), 끝으로 '그 땅'이란 의미의 '하아레츠'(haarets)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하늘' 복수형으로 표기된 것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하늘 개념이 반영된 것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현대 천문학이 말하는 지구의 대기권 및 그 너머에 무한히 팽창하는 공간으로서의 우주에 대해 과학적 개념이 없었다.

그 대신에 하늘에 새들이 날아다니는 눈에 보이는 공중인 첫째 하늘, 그리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을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서 해, 달, 별 등이 붙어 있는 거대한 금속판인 소위 궁창(firmament)과 그 위에 보관된 엄청난 양의 물로 구성된 둘째 하늘, 그리고 그 너머의 순수한 영적 존재들인 천사들이 하느님의 영광의 현현을 매일 보며 머물고 있는 셋째 하늘 등 모두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구약 성경에 420여회 나오는 하늘 모두 다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또한 여기서 '땅'을 말하는 '아레츠'(arets)도 하늘과 대조된 의미에서의 '온 땅', 곧 우리들이 발붙이고 사는 이 '지구'를 가리킬 뿐 아니라, 넓게는 땅 아래의 '지하 세계'(the underworld)까지 가리킨다.

성경에는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시편113,3),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2사무17,11) 등과 같이 양극단을 함께 말함으로써, 그 안에 있는 것이 모두 다 포함됨을 강조하는 용례가 많다.

마찬가지로 여기에 '그 하늘들과 그리고 그 땅을'이라는 원어의 표현은 비단 하늘과 땅 뿐만 아니라 가없는 양자 사이의 공간 자체는 물론 그 안의 모든 물질들, 곧 하늘에서부터 땅 끝까지의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창조의 대상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하셨다'

'창조하셨다'의 원어는 '빠라'(bara)인데, 이 단어의 어원은 불명확하다.

이 단어는 용례상 대략 '자르다'(cut), '새기다'(carve), 그리고 '낳다' 또는 '출생하다'(bear or be born), 끝으로 '먹다'(eat), '양육하다' (bring up), '살이 오르다'(get weight) 등의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빠라'(bara) '만들다', '지어내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오직 하느님과만 관련되어 쓰였다.

그리하여 그 이전과는, 자르듯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시고, 또 있게 하시는 하느님만의 절대 주권적 행위를 나타낸다 (신명4,32; 시편89,12; 이사43,1; 예레31,22).

한마디로 '빠라'(bara)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일을, 이전의 그 어떤 것과도 상관없이 새롭게 있게 하는 절대적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

이같은 절대적 창조 행위는 오직 만물을 초월(超越)하여 자존(自存)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신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인 우리 인간도 우리의 능력을 창조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있으나, 그것은 오직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하여, 즉 과거와의 연속 안에서만 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빠라'(bara)는 실제로 '만들다', '지어내다'의 뜻으로 구약에서 총 44회 쓰였는데, 이때에는 오직 '하느님'을 가리키는 단어와만 짝을 이루어 등장하며,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 창조 행위만을 가리키고 있다.

창세기 1장 1절'창조하셨다','빠라'(bara)는 무에서 유로 광대한 우주 공간은 물론, 그 안의 천하 만물을 구성할 재료가 될 모든 기본 물질들을 동시에 섬광처럼 존재하게 하신 하느님의 절대적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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