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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26 조회수714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If the world hates you, realize that it hated me first.
If you belonged to the world, the world would love its own.
they will do all these things to you on account of my name,
because they do not know the one who sent me.”
(Jn.15.18.21)
 
 
 
창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중에서)
 
 
한 병실에 환자 두명이 있었습니다
 
한 환자는 창문 쪽에 침대가 있었고 다른 환자는 문 쪽이었죠. 두 환자는 일어설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하지만 치료과정으로 매일 한 시간씩은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침대 위에 일어나 앉을수 있었죠. 창문 쪽 환자는 침대가 창가에 있었기 때문에 일어날 때마다 창문밖의 세상을 볼수 있었죠. 하지만 다른 환자는 문쪽이라 하루종일 밖을 볼수가 없었습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이 되면 창가의 환자는 자신이 보고 있는 바깥 풍경을 맞은편 환자에게 일일이 설명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죠. 창밖엔 호수와 공원이 있었나봐요. 호수에서 수영하는 아이들, 오리와 백조에게 모이를 주는 아이들, 손을 잡고 다니거나 이따금씩 싸우고 또 다시 화해하는 연인들...문쪽 환자는 창가의 환자가 이 모든 풍경을 설명해 줄때마다 즐겁게 들었죠. 오리를 잡으려다 물에 빠진 아이. 매력적인 아가씨들이 여름옷을 입고 활기차게 겅어가는 모습... 창가의 환자가 어찌나 실감나게 얘기하던지 문쪽의 환자는 마치 자신이 직접 보는 것처럼 착각할 정도였죠.
그러던 어느날 문 쪽 환자는 이런 생각을 했죠.
 
'왜 저 사람만이 혼자서 바깥을 내다보는 즐거움과 특권을 누릴까? 왜 나에게는 저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그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그 생각을 떨쳐버릴려고 할수록 더욱더 강하게 질투심이 그를 사로잡았죠. 그는 침대의 위치만 바꿀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창가의 환자가 갑자기 숨을 몰아쉬면서 손을 휘적거렸습니다. 그리고 문 쪽 환자를 보면서 간호사를 불러달라는 뜻 입을 벙긋거렸죠. 하지만 문쪽 환자는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 환자가 숨이 멎을 때까지...
 
다음날 아침 간호사가 창가의 환자가 사망한 걸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그의 시선을 치웠죠.
적절한 시기가 되자 문쪽 환자는 간호사에게 창가 쪽으로 침대를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 병원 직원들은 그를 살며시 들어서 창가 쪽으로 옮겨주었죠, 직원들이 병실을 나서자 마자 그는 고통을 참으며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창밖을 보았죠. 그런데 창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맞은편 건물의 주황 담벼락이 가로막고 있었을 뿐.
 
이렇게 욕심이 많은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직접 자신의 눈으로써 본 후에야 믿으려 하고 그것이 나에게 이로울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든 빼앗으려 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창가의 환자로 인해 꿈과 희망을 얻을수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보고 싶다는 욕십에 그를 죽게 내버려둔 문 쪽 환자처럼 우리들 역시 욕심과 이집과 얕은 생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소중한 것을 잃고 사는지 참으로 알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요?
 
 
 
오늘의 지령
 
'나의 이 마음을 왜 알아 주지 않는거야!'라는 생각보다는 '너의 그 마음을 왜 나는 알아보지 못하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바꾸어 봅시다.
 
 
 
 
액자가 참 아름답지 않소?
(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 중에서)
 
 
어느 노부부가 암스테르담 국립 박물관에서 램브란트의 걸작인 [야경]을 감상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복도를 지나 한참 걸은 뒤에 마침내 그 유명한 걸작 앞에 이르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 걸작을 본 남편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자 봐요 액자가 참 아름답지 않소?"
 
물론 액자가 아름다울수 있지요. 하지만 분명 이 남편은 본질적인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 액자가 아름답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어쩌면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액자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들이 왜 암스테르담의 국립 박물관에 갔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이 그곳에 간 이유는 바로 램브란트의 걸작인 [야경]을 보기 위해서였지요. 따라서 그 세기의 걸작을 보면서 고작 그림과는 아무 상광이 없는 액자 얘기를 한다는 건 참 어리석고 어처구니 없는 행동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역시 이렇게 본질적인 것보다는 그와 상관 없는 부수적인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앞선 이야기에 나오는 그 남편처럼 말이지요
 
세상의 지위나 명예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지금 현재는 이런 것들이 중요하게 보이고 또한 영원한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런 것들은 한 순간의 기쁨만을 가져다 줄 뿐인 액자 같은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을 지키려고 하다보면 더욱더 비참해지고 불행해 지는 경우가 많은 법입니다
정말 중요한 그림을 잃게 되기 때문이지요
 
얼만전 어느 책에서 이런 글을 하나 보았습니다
 
저는 지금 두번째 아내와 살고 있습니다. 두번째 아내는 첫번째 아내보다 나이는 들었지만 더 예쁘도 성숙한 모습입니다. 첫번째 아내와 두번째 아내는 아주 닮아 보입니다. 그러나 첫번째 아내는 액간 욕심이 많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반면 젊고 깨끗한 모습은 많은 총각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저역시 그 중 하나였구요, 저는 첫번째 아내나 두번째 아내 모두 열렬히 사랑합니다
 
여기까지 글을 읽고서 저는 이런 생긱이 들었습니다.
 
'앗 불륜이다.'
 
글의 내용으로 볼때, 첫번째 아내가 사망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혼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두 아내와 다툼 없이 산다는 것, 여러분 이해하실수 있나요?
그런데 그 뒤를 보니 바로 이런 설명이 소개되어 있더군요
 
오해하지 마세요. 한 과학 잡지를 보니, 우리 몸의 세포들은 7년 주기로 신진대사 과정에서 다 소모되어 사라지고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 몸의 조직이 완전히 새로 바뀐답니다. 그러니 사람의 정신이나 생각은 그대로이지만 몸은 7년 주기의 전혀 새로운 몸이 되는 것이지요. 결혼한지 7년이 지났으니 저는 처음 만났던 그 아내가 아니라 전혀 다른 세포로 이루어진 제 2의 아내와 사는 셈입니다. 앞으로 7년 주기로 계속 새로운 몸의 아내와 살게 되겠지요. 만약 70년을 산다면 전혀 다른 세포를 가진 10명의 아내와 살아보는 셈입니다
 
이 글을 보고서 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늘 새로움을 가지고 이 세상을 기쁘게 살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 새로운 마음을 갖지 않고 늘 그 모습 그대로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늘 똑같은 일상 생활을 탓하고 어느 때는 이런 생활이 지겨워 죽겠다고 한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새롭게 살지 못하는 것은 어떤 외부의 탓이 아닙니다. 중요한 본질보다는 부수적인 것에 더 마음을 쏟아 늘 새로운 마음을 갖지 못하는 바로 나 자신 탓인 것입니다
 
 
오늘의 지령
 
자그마한 먼지가 눈에 들어오면 그 먼지 외에 다른 생각을 할수 없습니다. 이처럼 작은 먼지와 같이 불필요한 일들이 내 삶을 바꾸어 놓을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작은 일에 충실한 오늘 하루를 만들어 봅시다.
 
 
 
 

 Josh Groban - To Where You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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