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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4월 26일 야곱의 우물- 요한 15, 18-21 묵상/ 우리는 '보내신 분' 을 모르고 있다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25 조회수467 추천수5 반대(0) 신고
우리는 `보내신 분`을 모르고 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한 15,18-­21)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보내신 분이 누구신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보물 같은 말씀의 뜻을 몰라서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이고 더불어 제자들까지 박해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무엇을 모를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존재는 접어두고 바로 눈앞에 계신 예수님의 말씀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긴 오랫동안 같이 지낸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을 헷갈려 하니 세상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우선 ‘말씀’을 제대로 이해해서 간직하는 것이 ‘보내신 분’을 아는 첩경일 것 같다. 그런데 똑같은 말이라도 내가 하는 말과 남이 듣고 이해하는 말은 다르다.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이 느끼는 태양과 북극에 사는 사람이 느끼는 태양은 다르다. 서로 본대로, 느낀 대로 다르게 이해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좀 더 잘 전달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동물은 동물의 소리를 내고, 사람은 사람의 언어를 사용한다. 같은 장미꽃을 두고도 희랍 말이 다르고 러시아 말이 다르다. 석가는 그 시대의 언어로 자비와 인간의 본질이 텅 비었음을 얘기하셨고, 예수님은 유다의 언어로 사랑과 하느님 나라를 말씀하셨다.
 
얼마 전 우리 신학의 토대를 마련하고 종교 간 대화를 위해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발간한 「대승불교, 그리스도를 말하다」란 번역서를 읽었다. 성공회 사제인 존 키난이 쓴 책이다. 우리 몸에는 불교적 요소가 많이 들어와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익숙한 불교를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해 듣는 것도 ‘말씀’에 쉽게 와 닿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저자는 이 책에서 대승불교 사상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성육화와 삼위일체’ 교리를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외국 여행을 하면 의사소통이 안 되어 불편할 때가 있다. 그래서 외국어 공부를 한다. 세계를 다니지 않고 세계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외국에 나가 봐야 조국을 잘 알게 된다지 않는가. 다른 나라 말을 모르는 나는 내 말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이흥우(인천교구 부평3동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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