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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길 위에서...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19 조회수658 추천수10 반대(0) 신고

 

수련원에서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늘 가던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일부러 찾았다.

"우리가 갈릴리 호수라 이름붙였어요." 하며 맑게 웃던

수련장 수녀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일자로 죽 뚫린 시원한 길보다

조금은 불편해도 먼지가 흩날려도

구불구불 꺾어진 비포장 도로가 더 정답다.

우리의 생을 닮아있기 때문일까?

 

 

 

하늘로 내려가려던 길은 물을 만나 끊긴다.

그대신 물이 하늘을 가득 담고 있다.

 

물과 하늘은 늘 같은 색깔이다.

하늘이 흐리면 물도 흐리고

하늘이 맑으면 물도 맑다.

 

늘 하늘만큼의 마음으로 하늘을 맞는 물. 

하늘이 울 때, 저 혼자만 기쁜 적도 없고

하늘이 기쁠 때, 저 혼자만 슬픈 적도 없다.  

 

 

 

 

갑자기 검은 구름을 몰고와 화창한 마음을 어둡게 만들어도 

저보다 더 큰 세상을 보는 하늘이기에

그럴만한 까닭이 있겠거니 잠자코 받아들일 뿐

변덕스러운 하늘이라고 원망해본 적도 없다.

 

하늘 닮기가 소원인 물은 언제나 그렇게

먹장 낀 하늘마저도 가슴에 품는다.

 

 

 

 

가다보면 길이 막힐 때도 있다.

돌아가면 그뿐이지만, 그 길밖에 길이 없는 듯 사람들은 안달을 떤다.

 

그러나 사실 알고보면 애초에 길은 없었다.

다니다보면 길이 되는 것인데도 자기가 길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애써 닦아놓은 길만을 편히 다니고 싶어한다.

 

 

 

 

어쩌면 더러 더러 막힌 곳이 있어야

방해가 되는 것이 있어야

그 사이사이로 가고자 하는 길이

더 아름답게 더 신비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더 애틋하게 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까?

 

 

 

 

길을 가다가 그곳에서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아름다운 곳을 발견할 때도 있다.

 

그러나 신앙의 길에는 정착이란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하늘 아버지께로 가는 길,

그 길이 바로 신앙의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어떤 분의 글에,

신앙에 있어 자부심을 갖는 사람이야말로

길 가는 도중에 그럴듯한 집을 짓고

거기에 안주하는 사람과 같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끝없이 가야할 길에 들어서 있는 우리.

중도에 집을 짓는 자체가 낙오라고 할 수 있겠다.

끊임없이 모자라는 우리이기에

끊임없이 길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미 어둑해진 길이지만 행장을 갖추고 다시 길로 나선다.

온 길보다 갈 길이 짧은지, 온 길보다 갈 길이 멀고 또 험한지는

가면서 차츰 알아질 것이다.

 

그러니 미리 계산해봤자 소용없는 일,

쓸데없는 두려움일랑 버리고 가쁜한 차림으로 길로 나서자. 

 

 

 

 

이 길이 나 혼자의 길이 아님을 알기에 발걸음 무거울것도 없다.

길을 환히 비춰주는 햇님과 달님과 별님이 있기에 그리 어둡지도 않다.

무엇보다 그림자처럼 따라오시는 분이 있으니 걱정할 것도 없다.

 

아니 바로 그분이 이 길의 임자다.

이 길은 그분이 내신 길.

 

엎드린 그분의 등 위를 무수히 걸어간 그분의 제자들 덕에

이만큼 넓어지고 편해진 길을 오늘 내가 걷는 것이다.

 

 

 

 

그분의 몸으로 놓으신 하늘 사다리 위를

길 위에 떨어지는 꽃비처럼

무수한 사람들이 역사 안에서 걸어갔다.

 

이미 이 길을 걸어갔고 이 길을 함께 동행하고 있고

뒤 따라올 수많은 도반들이 있기에 나도 외롭지 않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분.

진리를 찾아 가는 길,

참 생명으로 이끄는 길이 되신 분.

 

그분의 몸이 사다리가 되었고

그분 위를 걸으면 하늘 아버지께로 올라간다.

 

그 하늘 사다리를 타고 먼저 올라간 이들은 

꽃처럼 아름다운 별이 되었다.

우리가 캄캄한 어둠을 만날 때마다

별빛은 땅으로 쏟아져 우리의 길을 환히 비추어준다.

 

 

사실 이 길은 살아있는 그분의 몸이기에,

움직이는 무빙 로드다.

 

길을 걸어가다가 지쳐도

길을 걸어가다가 쓰러져도

이 길 위에만 있으면 

이 길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는 무빙로드.

 

우리가 걷지 않아도 저절로 움직이는 길이었기에 

우리는 이 길에 들어서자마자 불안했었고 

가끔씩 내려서고 싶었던 것이리라.

 

움직이는 길에 익숙치 않은 우리.

어지러워 곧바로 내려버릴까봐 

길은 든든한 협조자까지 붙여주었다.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주는 분.

그분이 바로 길의 협조자,

길을 고안한 영이셨다.

 

길 위에 있는 우리들.

길을 가는 우리들.

 

이제 우리가 가는 길은 그 목적지가 분명하다.

참 생명으로, 참 진리를 찾아 가는

행복한 여로임에 분명하다.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참말로 축복받은 사람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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